금요진단

2024년 8월 한반도의 여름과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

2024-08-23 13:00:01 게재

8.15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를 전후로 몇 가지 의미 있게 지켜볼 일들이 생겼다. ‘독트린’이라는 명명은 참신하다. 지금은 세간에서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독트린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는 경향이 있어서, 나중에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적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차제에 독트린이라고 작명을 한 김에, 우리 정부가 지향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프로젝트와 조화를 이루는, 좀 더 포괄적인 문제의식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지금처럼 견고한 한미동맹이 전제가 된다면, 일본과 나토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아우르더라도 독트린의 핵심인 ‘방향성’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8.15 독트린' 포괄적 문제의식 담았어야

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 통일 관련하여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정책과 작명은 ‘북방정책’이 아닐까 싶고, 그 출발점은 1988년 여름의 ‘7.7선언’이었다. 물론 역시 작명으로는 손꼽히는 DJ의 햇볕정책도 있었지만, 냉전 종식의 거대한 물줄기를 한반도로 유입시켜서, 그 이후 모든 남북관계의 작용을 가능케 한 7.7선언의 상징성을 먼저 손꼽아야 할 것 같다. 7.7선언의 6개항은 남북관계의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반도를 관통하는 종적 시간과 횡적 공간을 상당히 넓게 잡은 장점이 있다. ‘통일 독트린’ 역시 가치, 정체성 그리고 국제사회라는 포괄성이 있지만, 8.15 광복절이라는 타이밍을 활용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통일’의 포커스는 유지한 채 통합, 정의, 그리고 역사까지 걸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난 8일과 12일 연이은 북한 주민과 북한군의 귀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가 고심 끝에 선택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성과라는 일부 성급한 해석도 있지만, 아직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이고, 이럴 때일수록 진중한 스탠스 유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북한 내부를 관찰하는 전문가들의 전언에 의하면, 현재 북한으로부터 사회문화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생소한 시그널이 일부 포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리고 그러한 시그널이 안고 있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정부가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지, 많은 전문가들은 궁금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한국 시간으로 그저께인 21일 오후 ‘바람의 도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제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한국과 달리 모든 의회 정치는 철저하게 의사당 안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전통을 고려할 때, 전국 대의원들이 모인 전당대회와 공식 절차를 거친 대통령 후보 선정은, 미국 정치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난히도 전례가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고, 훗날 미국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19세기 말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이후 132년 만에 소위 ‘징검다리 재선’에 선공하게 되는 셈이다. 클리브랜드는 구한말 박정양 공사가 조선의 외교관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을 알현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또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대통령 선거 공식 후보로 지명된 여성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듯이 2008년 대선에 당시 힐러리 상원의원이 뛰어들긴 했지만, 민주당의 공식 후보로 선출되지는 못했다. 과거 1884년과 1888년 선거에서 벨버 록우드(Belva A. Lockwood)라는 여성 법률가가 당시 전국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의 공식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미국 정당정치가 확실하게 양분된 점을 고려할 때, 록우드의 기록은 의미가 크지 않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소위 ‘선(sun) 벨트’와 ‘러스트(rust) 벨트’의 문제를 잠시 살펴보자. 남부 및 서부 주의 경우 캘리포니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친 공화당 유권자들이 많아서, 선 벨트는 보수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고,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미시간과 ‘유에스스틸’과 ‘웨스팅하우스’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를 품고 있는 러스트 벨트의 경우도 원래는 공화당 세가 강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적 민감성이 높은 지역으로 변했을 뿐, 현 시점에서 선 벨트와 러스트 벨트 모두 어느 쪽이 장악하고 있다는 설명은 불가능하다.

다만 선벨트와 러스트벨트 모두 정치적 성향이 때에 따라 변화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지역 유권자들의 성향은 보수성에 기반한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매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해리스 부통령이 이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업고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선거일까지 두고 봐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 대목은, 미국 공화당에 이어 민주당 역시 정강(platform)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가 빠졌다는 점인데, 해리스 후보 캠프의 콜린 칼 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이를 의식한 듯,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이 행정부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그래도 4년 전의 민주당 정강 정책에는 들어갔던 북한 비핵화 문구가 삭제된 점에 대해서 향후 다양한 얘기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은 해리스 캠프 측의 설명처럼 당장 한반도 비핵화가 임박했다고 보기 어려우니, 미국 동맹국들의 안보 유지를 최우선에 두면서, 추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에 집중하면 된다는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미국 조야(朝野)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일종의 의사(疑似) 핵군축 유형의 논의가 수면 위에 오를 가능성이다. 필자의 생각을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논의가 수면 위에 떠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논의가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새 행정부와 '이해관계 균형' 맞출 필요

민주당 전당대회 관련하여, 최근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상황 전개가 있었다. 바로 지난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3국이 동시에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대체로 한미일 삼국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계속 강화해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조만간 일본 기시다 총리의 퇴임이 확실시 되었고, 11월 5일 미국에서도 대선이 있으니, 미일 양국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삼국 협력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의 성격이었다고 이해된다.

당연히 한미일 협력은 한미일 이외의 국가를 배제하고자 함이 아니고, 한미일의 어느 지도자도 이렇게 얘기한 적은 없다. 다행히 올 초에 제기되었던 북러 밀착에 의한 신냉전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많이 사라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미일 협력은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더 큰 긍정적 효과를 유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할 경우, 한미일 협력은 여전히 의미 있게 계승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트럼프 전대통령이 승리할 경우에는 전문가에 따라서 전망이 다양하다. 지금의 트럼프 후보는 2016년 처음 당선되었을 때와 달리 국제 문제에 대해 많이 학습이 되었고, 현재 선거에 임하는 트럼프 캠프의 프로페셔널리즘도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며, 더구나 트럼프 캠프 내부 인사들이 한국 측에 여러 차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만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 자체는 이해하겠지만, 2028년 대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트럼프의 입장에서 향후 4년 동안 과거보다 더욱 강력한 트럼피즘 즉,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실천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결국 미국에 어느 행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른 한국의 외교적 스탠스 이동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에 따른 외교적 스탠스 정립이 선행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미국 행정부와 이해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