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진우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장

도서관서 마을민주주의 꽃피우다

2018-02-05 10:11:26 게재

'한 책 읽기' 사업, 주민에게 예산 결정권 … 공론장에서 민주주의 경험

"월곡꿈그림도서관을 건립할 때 개관 7~8개월 전에 관장과 사서들을 다 뽑았어요. 이분들은 주민, 학부모, 상인 등 37개 그룹, 148명을 만나 '어떤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많은 이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도서관이 지어질 위치는 학교를 마친 청소년들이 학원에 가기까지 모이는 곳이었던 거죠."
사진 이의종


지난달 31일 만난 이진우 성북문화재단 도서관본부장의 설명이다. 당초 그림책 도서관을 목표로 출발한 월곡꿈그림도서관은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7월 청소년 특화 도서관으로 탄생했다. 지난해 12월 아리랑어린이도서관을 개관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초부터 사서들은 완성되기 이전 도서관에서 어린이·주민들과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들의 생각을 도서관에 반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담아낸 도서관들을 만나고 도서관의 이용자, 지지자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성북구는 다양한 사업을 운영, 도서관을 '마을민주주의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내일신문은 성북구 내 11개의 공공도서관을 총괄 운영하는 이 본부장으로부터 성북구립도서관의 성장 과정과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들었다.

'동행원탁' '마을 인(in) 수다' 등의 사업이 독특하다.

지난해 도서관별로 성북구 내 214개 단체, 526명을 만났다. 독서회는 물론 복지관, 상인, 학교 등 다양하다. 이를 통해 마을을 파악하고 관계망을 형성했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망이 모여 1달에 1번 마을의 자원과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를 한다. 이와 같은 활동을 동행원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를 바탕으로 각 도서관들은 마을 인 수다를 진행했다. 동행원탁을 중심으로 맺은 관계들을 기반으로 마을 의제들을 논의한다. 준비 과정을 6개월 이상 들여 마을 의제를 뽑고 사서들은 의제에 따라 책, 신문 기사, 영화, 온라인 사이트 등 컬렉션을 구성, 주민들과 공유한다.

마을 인 수다는 자료실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책을 보러, 혹은 정보를 찾으러 온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공론장에 참여한다. 공론장에서 주민들은 서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한다. 주민들에게 이는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것이다. 성북구 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말하듯 도서관은 '마을민주주의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한 책 읽기' 사업에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13년부터 독서회에 도서관 등록을 권했다. 등록 전 35개 80여명으로 파악되던 독서회는 지난해 130개 1400여명으로 확대됐다. 독서회는 한 책 읽기는 물론 동행원탁, 마을 인 수다의 기반이다.

2016년에는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100명이 모여 타운홀 미팅을 통해 한 책을 선정했다. 최종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가 뽑혔다. 그 책이 선정된 데에는 청소년들의 힘이 컸다. 청소년들은 "오래된 고름 같은 문제는 터뜨려 함께 얘기해 새 살을 돋게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어른들이 감동을 받는 순간이었다.

지난해에는 주민들끼리 '한 책 추진단 운영위원회'를 꾸려 기획부터 실행까지 하도록 지원했다. 도서관은 관련 예산을 공개하고 운영위에 결정권을 줬다. 도서관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야 주민들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협치이며 민주주의다.

지난해 한 책 읽기 사업은 토론회를 8차례 한 이후 대토론회를 거쳐 한 책을 선정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1개의 도서관이 함께 사업을 하는 게 장점이다.

도서관본부가 있기 때문에 각 도서관들이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또 도서관본부장이 구 현안회의 등에 참여해 구의 정책 방향을 알 수 있고 이에 발맞춰 도서관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예컨대 마을 인 수다의 경우 성북구의 마을민주주의 정책과 연계해 도서관본부에서 제안했다.

매월 직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 등을 직원들과 공유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에서 주민들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나.

도서관은 지역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들이 만나는 장을 열고 주민과 주민을, 주민과 정보를, 주민과 지
역을 관계 맺게 할 수 있다. 여러 활동을 통해 관계망이 두터워질수록 주민들의 관심은 '나' 로부터 마을로,마을에서 지역으로 확장된다.

특히 도서관은 자료와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안정적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주민들은 공론장을 열고 토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예컨대 성북정보도서관의 경우, 잘쓰이지 않는 공간이 있었는데 한 예술단체가 이 공간을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하자고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했다.

이와 관련, 도서관 로비에서 주민,이용자, 예술가들이 관련 공론장을 열었고 준비단을 꾸려 공간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기획 단계부터 함께 하고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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