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와 다이먼(JP모간 CEO) '어제의 동지'에서 '내일의 적'으로?

2019-01-07 11:53:57 게재

WSJ "양사 힘의 균형 바뀌어 … JP모간, 아마존 금융업 진출 우려"

월스트리트저널(WSJ) 6일자 보도에 따르면 JP모간체이스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2017년 연구팀을 꾸렸다. 한동안 그를 괴롭혔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다. '아마존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다. 해당 팀은 아마존이 금융업에 진출할 경우 JP모간을 어떻게 위협할 것인지 경우의 수를 따졌다. 아마존이 은행업에 진입한다는 시나리오는 오래 전부터 미 월가가 두려워하던 것이다.

JP모간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

제약에서 물류까지 산업계 곳곳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아마존 효과'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마존이 특정 분야에 진출한다는 소식만 들려도 해당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추락하고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지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온라인 기반 소매기업에 불과했던 아마존은 전방위적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공룡기업 아마존과 미국 최대 은행 JP모간은 다양한 부문에서 특수관계를 자랑해왔다. 아마존이 인터넷을 통해 책과 CD를 팔던 때 JP모간과 신용카드 거래를 맺으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JP모간은 현재 아마존과 함께 다양한 금융벤처 서비스를 협의중이다. 그리고 아마존에 거액의 대출을 하고 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와 아마존, JP모간은 지난해 초 헬스케어 회사를 공동설립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3사 직원 50만명에 저비용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또 JP모간은 아마존의 경영기법 일부를 모방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다이먼과 아마존 창립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는 지난 20여년간 친구처럼 지냈다. 사업적 이해관계가 충돌한 때가 가끔 있었고, 개인적 성향이 다르긴 해도 우호적 관계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었다.

올해 62세가 된 다이먼은 금융계에서 커리어를 쌓은 인물이다. 다이먼은 JP모간의 재무상태 건전성을 칼같이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다른 거대 은행과 달리 위기에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디테일에 강하다. 특히 비용 절감에 신경 쓰는 다이먼은 호주머니 속에 할일을 적은 메모지를 넣고 다닌다.

54세인 베이조스는 1994년 아마존을 창업하기 전 사모펀드 운용사인 'D.E. 쇼'에서 금융업을 잠시 맛본 바 있다. 그는 작고 독립적인 팀제를 선호하는 인물이다. 직원들에겐 늘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행동하라'고 강조한다. 베이조스는 CEO로서 할 일이 중요한 몇가지 결정을 제대로 내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양사, 그리고 CEO들의 관계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힘의 균형은 아마존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현재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7700억달러로, JP모간의 3350억달러를 압도한다. 한때 미 산업계의 거물이었던 JP모간은 아마존이 정착한 방법, 아마존 효과에 희생양이 되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느라 바쁘다. 이를 위한 JP모간의 전략은 단순하다. '아마존을 더 많이 닮자'이다.

JP모간은 베이조스의 '고객집착'(Customer Obsession) 주의를 채택했다. 2017년 9월 JP모간은 아마존 중역이었던 마부 브라운을 영입했다. 소매금융, 자산관리 부문에서 고객만족을 지휘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베이조스는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발표를 금지한 대신 기승전결이 담긴 6쪽 분량의 산문식 발표를 지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야 임직원들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6쪽 문서에는 보도자료와 '자주 묻는 질문'(FAQ)도 첨부해야 한다. 18개월 전부터 JP모간도 고객관련 부서에 아마존과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부사장이자 공동 COO인 고든 스미스가 추진 책임을 맡았다.

JP모간과 아마존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2002년까지 거슬러오른다. 양사는 공동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출시했다. 2년 뒤인 2004년 다이먼이 JP모간에 합류했다.

그보다 몇해 전인 90년대 후반, 베이조스는 다이먼을 아마존 사장으로 영입하려 했다. 당시 다이먼은 씨티그룹에서 해고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이먼은 완곡히 거절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아마존의 매출은 폭증했다. 그에 따라 영향력도 커졌다. 아마존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마존 프라임 고객을 대상으로 한 '리워드 비자 시그니처 카드'다. 이는 JP모간과 아마존이 공동 발급하는 2장의 카드 중 하나다. 고객이 아마존에서 해당카드로 구매할 때 5%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카드다.

JP모간 중역들은 해당 카드로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발급 초기엔 오히려 손해가 날 것이 뻔했다. 내부의 오랜 찬반 논쟁을 거친 뒤 JP모간은 결국 아마존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다이먼은 눈앞에 이익보다 아마존과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다며 5대 고객기업인 아마존과의 거래를 택했다. 2017년 연휴 시즌 아마존 매출이 급증하면서 해당 카드의 캐시백 때문에 JP모간은 적자를 볼 뻔했다.

아마존과 JP모간 사이에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는 건 언젠가는 아마존이 직접 금융서비스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과 맞닿아 있다. 아마존은 현재까지는 월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당장 금융업에 진출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베이조스와 아마존의 중역들은 오래 전부터 금융서비스가 회사의 성공을 담보할 지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아마존의 핵심사업인 온라인 소매업 부문과 관련해서다. 사업 초기 아마존 경영진은 오프라인 소매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상품을 대는 업자들은 아마존이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이유를 들어 수수료를 깎기 일쑤였다. 이들은 오프라인 소매기업에 내는 수수료보다는 더 적게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은 수년 동안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미래의 지불거래 방법을 발전시킬 방안을 연구했다. 베이조스는 경영진에 금융서비스와 결제 수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아마존캐시가 도입됐다. 고객들이 은행이 아닌 아마존 계좌에 현금을 넣어두고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은행 계좌를 트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 고객을 겨냥한 것. 인공지능 기반 음성지원 비서 서비스인 아마존의 '알렉사'가 고객에게 지불 방법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미래에는 지급결제 방식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아마존은 또 '아마존대출기구'(Amazon Lending Arm)를 설립해 자사와 거래하는 중소기업에게 30억달러 이상을 대출하고 있다.

전자지불 시스템의 한 종류인 '아마존페이'를 만든 것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고객들은 아마존페이를 통해 아마존을 이용하지 않은 협력업체에서도 물건을 살 수 있다. 조만간 애플페이를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폭넓게 사용되는 아시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룡 기술기업 사이에 펼쳐지는 거대한 경쟁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마존과 애플, 구글 등은 소비자 결제시스템 시장에 진입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페이팔의 무료 송금 및 결제 앱인 '벤모', 주요 은행들이 연합해 만든 '젤러' 등 기존 사업자에 도전장을 던진 것.

아마존은 자산규모가 커지면서 JP모간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JP모간은 아마존이 원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 광범위한 지급결제 인프라, 미국 가정의 절반과 연계된 금융망이다.

베이조스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사업과 관련해 롤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JP모간의 다이먼을 지목했다. 그는 "내가 JP모간의 대주주라면 매주 월요일 아침 빵과 커피를 사들고 그에게 가서 '행복? 기분은 좋니?'라고 물을 것"이라며 "다이먼은 매우 복잡한 금융회사에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는 CEO라고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아마존은 아마존페이를 확장하기 위해 JP모간과 협력중이다. 아마존페이는 JP모간의 결제네트워크인 '체이스넷'에 연동된다. 아마존 고객이 아마존과 계약하지 않은 일반 기업에서 쇼핑을 할 때 아마존페이와 연동된 체이스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해당 기업은 체이스 신용카드를 받을 경우 다른 카드와 달리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 이는 일반 기업들이 아마존페이를 받아들이는 이유다.

JP모간도 얻는 게 있다. 은행계좌가 없어 아마존캐시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예금 또는 당좌계좌를 홍보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JP모간은 아마존의 광범위한 고객에 접근하길 원한다. 아마존 프라임 고객은 수천만명에 달한다. 반면 아마존은 자사 플랫폼에서 쇼핑하고 책을 읽고 비디오를 보는 고객들에게 금융 관련 서비스를 폭넓게 제공하면서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한편 아마존과 JP모간의 윈윈 관계가 지속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마존 인공지능 기반 음성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는 양사의 관계에서 미묘한 지점이다. 캐피털원파이낸셜코프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US뱅코프 등의 은행들은 아마존의 알렉사를 통해 고객들에게 금융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JP모간은 프라이버시 우려 때문에 참여를 망설이고 있다.

JP모간은 몇해 전부터 알렉사를 통한 음성지원 서비스에 대해 아마존과 논의했지만, 지난해 이를 중단했다. 아마존이 알렉사로부터 얻은 자료를 임의로 사용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최근 알렉사는 고객과 주고받은 대화를 녹음해 고객의 지인들에게 무단으로 발송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아마존은 알렉사를 통해 얻은 민감한 정보를 개발업자가 삭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편 △철저한 보안 점검 △대화 내용 암호화 △획득한 정보를 광고나 제품 추천 등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여전히 JP모간의 의구심을 해소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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