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여학생과 비교 당하던 남학생, 성차별 이해 못해"
2019-07-22 15:16:53 게재
눈높이 맞는 언어로 교육 … 극단적 목소리가 전체처럼 왜곡
젊은 부모도 성차별적 사고 여전 … '딸바보 현상' 문제 많아
'문화적 타자성(다름)을 고려하는 시스템의 부재.'
20대 남성들의 젠더(성) 갈등 심화 문제에 대해 나윤경(53)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남학생들 기억 속의 여학생들은 열등하거나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다른 성차별적 담론들과 마주했을 때의 괴리감은 상당하다는 것.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원장과의 인터뷰는 18일 서울 불광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에서 이뤄졌다.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양평원은 양성평등 교육 및 전문 강사 양성이 주요 업무다.
■ 우리 사회의 여성차별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오히려 20대 남성들 사이에 높다. 때로는 여성 혐오의 날을 세우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8~18세 남자들은 학교생활에서 끊임없이 여학생들과 비교를 당했다.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말을 잘 듣는 여학생들과 호흡이 맞는 경우가 많다. "남학생 A에게 여학생 B처럼 좀 잘하라"고 말을 하거나 아예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이 잘 따라오지 못하니까 교사 대신 도와주라고 '보살핌 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수행평가에서도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남학생들 기억 속에서 '여성'은 차별받거나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취업 준비 등을 하는 시기가 돼서야 여성이 차별 받는 현실과 마주한다.
자신의 경험과 반대되는 담론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게다가 당장 자신의 문제와 직결되는 여학생들과 달리 남학생들에게 성차별 문제는 미래 얘기다.
여학생들은 계속 담론을 파고들어 지식의 알고리즘을 견고하게 만드는 반면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점점 더 여성 차별 담론을 싫어하게 된다.
이처럼 남학생들은 제도권 교육 안에서 문화적 타자로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교육 시스템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남학생들이 갖는 문화적 타자성에 대해 이해를 하고 교직을 이수하는가. 이런 고민을 깊게 해볼 필요가 있다.
■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남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설명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에는 이른바 '할아버지 제도'가 있다. 학교에 덕망이 있는 할아버지가 있도록 해 남학생들이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도 성인지적으로 훈련된 남자 보조 교사를 두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교사 대부분이 여성인 현실과 대학교수 다수가 남성인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한 성이 지배적으로 많아짐으로써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의 문화적 소외감을 방치하면 안 된다.
나 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한 뒤 연령 직군 상황 등 다양한 맥락을 고려한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성평등 교육 문화 확산을 위해 양평원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은 기본이다. 학교 교육부 등을 신설해 성평등한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학교 성평등 교육 확산을 위해 유기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성인지 관점의 연수 운영 △성평등 및 폭력예방교육 등 연수 및 콘텐츠 지원 △성평등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컨설팅 및 자문 등 다양한 협력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남녀 갈등 구도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백래시 현상(페미니즘에 대해 반발) 등으로 페미니즘 약화를 걱정하기도 한다.
남녀가 극단적인 대결 구도를 가진 적이 없다. 왜 일베는 일부 남성의 의견이라고 하고, 워마드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극단적인 목소리들은 화력이 좀 강할 뿐이다. 언론이 잘못한 측면이 크다. 왜 언론은 극단적인 목소리에만 확성기를 대는지 모르겠다. 진지하고 성찰적인 목소리도 잘 전달해야 한다.
■ 이른바 '영페미'들은 선배 세대들과 다른 방식의 운동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종전 페미니즘과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누구든 성장하기 위해 전 세대를 부정하는 때가 있다. 자식도 부모를 부정하는 시기가 있지 않나. 이후 부모와 화해를 한다.
운동의 생태계 같은 구조라 생각한다. 후배들한테 부정당하지 않는 선배가 뭐가 그렇게 행복할까 싶다. 스승의 이론을 비판하고 반박하지 않는다면 학문은 발전할 수 없다. 기존에 나온 생각들과 똑같은 얘기를 하면 뭐가 달라질 수 있나. 저를 비판하고 새로운 이론을 얘기하고, 논쟁을 벌이고…. 이런 게 제자를 길러내는 보람이다. 영페미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앞선 세대들의 계보를 찾을 때가 올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큼 여성주의적 활동이 활발한 곳도 없다. 미투(#me, too_ 나도 말한다)만 봐도, 상대적으로 일본은 조용한데 한국은 목소리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의 젠더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역량은 뛰어나다. 유엔여성기구 유엔위민(UN Women) 산하 유엔위민훈련센터(UN Women Training) 아시아 지부를 국내에 유치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획재정부에 예산 10억원을 요청했는데 쉽지는 않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해 예산이 100억원 정도 인데 10%에 달하는 금액이 필요하니 어려울 수밖에. 그래도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다.
양평원은 유엔위민훈련센터와 협업으로 8월과 10월 아시아권 젠더 트레이너 양성 교육을 한다. 젠더 트레이너는 성평등 교육을 전담으로 하는 전문 인력이다. 양평원은 한·중·일을 포함한 아시아 14개국 지원자를 대상으로 젠더 트레이너 교육을 하게 된다.
■ 다시 시스템 얘기로 돌아가면, 젠더 감수성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젊은 부모인데도 성차별적인 행동이나 말을 할 때가 많다. 우리가 성 평등하게 자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딸 바보' 현상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녀를 성별에 따라 덜 예뻐하고 좋아하는 건 달라져야 한다.
우리보다 성평등한 국가에서는 성별을 묻지 않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 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한국이 진정한 성평등한 사회로 발전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면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더디 가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런 게 인간이 성장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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