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국가책임제 내실화 | ④ 네덜란드 노인돌봄에서 배운다
노인 욕구충족·삶의 질 유지에 '최우선' 서비스
2015년 고령화·고비용 극복 위해 정책 전환 … 지역 민간·대학·기업·자자체 협력이 키워드
# 네덜란드에 치매 노인들의 길 찾기에 도움이 되는 나침반이 나왔다.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원하는 곳으로, 가야할 곳으로, 집으로 바로 콕 집어 전자기기에 깔린 앱처럼 안내하는 게 아니였다.
그냥 나침반 기능이 갖췄을 뿐.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치매 노인이 찾아가야 했다.
치매 노인의 잔존능력을 유지해주고 인지공간능력을 키워주는 배려가 담긴 제품이다.
# 한 노인이 집에 들어와 쉬는 동안 약 복용 알림이 울린다. 노인은 냉장고를 열고 약복용을 한다. 냉장고 열림 센서 기능으로 가족에게 약 복용 사실을 알린다. 가족은 핸드폰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 노인이 잠자리에 들면 센서가 작동한다. 침대에서 잘 자고 있는지, 혹 방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장치는 배회 성향이 있는 노인에게 야간에 밖으로 나갈 경우 배회로 인한 불상사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될 수도 있다.
# 어느 치매케어센터에 부드러운 인상을 띠고 있는 여성 사진이 있다. 밤잠자리 복장을 하고 있다. 이 사진 속 여성은 센터 야간 근무자이다. 그 복장은 잠이 깨 시설에 돌아다니다 마주칠 경우 노인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함이다.
지난 8월 28일∼30일 사이 방문한 네덜란드 치매관련 전문기관(비탈리스 페퍼레드, 빌란스)들에서 확인한 내용들이다. 여러 사례에서 치매 노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기술적 배려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2015년 치매노인을 포함한 노인에 대한 돌봄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저출산고령사회로 늘어나는 노인관련 비용이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치매노인 등이 시설에 머무는 것보다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원하는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다.
◆약물 줄이고 자존감·행복감 높이기 = 8월 28일 네덜란드 보건복지스포츠부에서 만난 라이니르 코펠라르(Reinier Koppelaar) 프로젝트 매니저와 자클린 호헨담(Jacqueline Hoogendam) 치매정책 선임연구자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스웨덴 다음으로 노인돌봄에 비용지출을 많이 하고 있다.
지속적인 보호와 돌봄 정도가 심한 5∼6레벨에 있는 노인들에게 전문가나 돌봄 비용이 많이 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 가운데 92%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나머지 요양시설 등에 있는 노인 쪽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비슷하다. 이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관련 알츠하이머협회가 정부와 파트너십으로 △고령화(Ageing in Place) 및 치매관련 정책에서 치료와 예방을 위한 R&D 강화 △돌봄 분야에서 삶의 질 제고, 비용효율성을 위한 혁신 △치매친화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혁신이라는 세가지 관점을 세웠다.
이런 방향에 따라 네덜란드는 노인들이 기관에서 지내는 것보다 거주지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헬스케어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불필요한 치료나 약물 복용을 줄이고 비약물적 프로그램, 원격진료를 확산했다.
삶의 질 유지 개선하는데 정책적 방점을 두고, 치매환자와 가족을 지원하는데 관심을 집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참여 폭을 크게 열었다. 사회적 케어 개선(Senior care pact)을 위해 참여기관을 모집해 요양원협회 보험회사 슈퍼마켓 은행 자원봉사 단체 등 40개 기관으로 시작했고 현재 200개 기관이 협력 중이다. 이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지역에 따라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에는 최대 27만명 정도의 치매환자가 있는데 이들이 거주공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매프렌드 25만명을 양성했다. 치매인식을 높여 치매포용적 지역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단위로 케이스매니저가 있어 돌봄정보를 안내 받을 수 있게 했다. 이 서비스는 난민들도 받을 수 있다.
◆여가생활·건강관리· 안전에 ICT 결합 = 네덜란드 치매 노인들에 대한 정책전환에서 돋보이는 것은 치매노인의 일상 여가생활, 건강관리 등에 ICT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8월 29일 방문한 아인트호벤지역의 비탈리스 페퍼레드 혁신케어기관에는 정서적 불안할 경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이 펼쳐지는 영상이 천장이나 벽면에 보여지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 나비 새 물방울 등이 담긴 영상이 테이블로 내려 비춰지고, 치매노인들이 톡 건드리면 다른 자연물로 바뀌는 등 노인들의 여가에도 인지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장치도 있다.
그 유명한 '나침판'을 개발한 렌스 브란카르트(Rens Brankaert) 폰티스대/아인트호벤공대 교수는 "이용자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에 맞는 돌봄제공을 통해 그들의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이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8월30일 방문한 빌란스(장기노인돌봄 연구기관) 헨크 허먼(Henk Herman) 선임연구원은 "2015년 장기노인돌봄에 대한 정책전환으로 중앙집중, 공급자 중심에서 지역중심, 이용자중심으로 서비스가 방향을 잡았다"며 "특히 이헬스(eHealth)의 진전으로 돌봄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거노인들과 대화하는 로봇, 반려 로봇, 스마트기저귀, 야간케어 도모틱, 매직테이블 등이 개발되고 있다고 덧붙었다.
이와 관련 같은 날 네덜란드 현지를 방문한 서정주 한국에자이 부장(나우사회공헌네트워크 기획자)은 "네덜란드는 오래 전부터 리빙랩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시스템 전환을 시도해 왔다"며 "치매국가책임제나 커뮤니티 케어 등으로 한국 정부는 고령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실용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서 치매극복에 관심이 높은 다양한 기관과 사용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 사회문제는 정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전사회적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결가능하다"며 "이제 정부와 전문가·공급자 위주의, 중앙에서 지역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정책, 연구개발, 복지 등 관련 서비스 전달체계를 앞으로는 최종 수요자 중심으로, 민-산-학-연-관의 협력적 모델로, 실생활 중심의 개방형 혁신 플랫폼의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