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② 서정주 나우 기획자

"암경험자 자발적 혁신활동, 사회적 가치 높다"

2020-01-06 12:11:14 게재

암진단상담부터 사회·직장복귀까지 멘토 필요 … "사회정책논의·결정 과정에 이용자 참여 필수"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오늘도∼ 내일도∼ 함께라 고마워요. 바싹 마른 땅 위로 꽃비가 내릴거야. 서로 사랑하자∼ 행복은 미루지 말고∼ 일분이라도, 한뼘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서로 마주보자∼ 행복이 달아나지 않게.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 둘, 암파인 땡큐∼"

지난해 12월 24일 인천 한 정신과병동에서 '나를 있게 하는 우리'(나우사회혁신네트워크)의 룰루랄라 합창단원인 박인선 김민주씨가 환자들에게 훌라춤을 선봬고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인천의 한 정신과병동에 '암파인 땡큐' 노래를 배경으로 '나를 있게 하는 우리'(나우사회혁신네트워크)의 룰루랄라 합창단원인 박인선·김민주 씨가 하와이 훌라춤을 살랑살랑 부드럽게 선뵀다.

목장주인으로 알려진 김원섭씨가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인천의 한 정신과병동에서 노래공연 중이다.


노년반격 실버그래스 맴버이자 '목장주인'으로 알려진 김원섭 씨도 훌라춤 공연 앞뒤로 흥겨운 요들송과 가요, 팝송 공연을 이어갔다.

입원 환자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끝나고 공연자들에게 다가가 감사의 악수를 나눴다.

암경험자인 박인선 씨는 "암이 재발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장애인, 요양원어르신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밝은 모습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막 노래봉사를 마친 김원섭씨는 또 괴산지역에서 공연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다.

서정주 나우 기획자

◆나우, 암경험자 자발적 혁신 플랫폼 = 이날 '나를 있게 하는 우리' 기획자이자 암생존자 리빙랩 '온랩'의 코디네이터인 서정주 씨를 만났다.

서 기획자에 따르면, 나우는 가수 이한철(대표곡 : 슈퍼스타)이 총감독을 맡고 2015년 장애인식개선 위한 곡 '가까이'를 시작으로 2016년 고령화 사회에서 미래의 시니어모델상을 제시하기 위해 진행한 '노년반격'을 통해 실버그래스팀의 '첫 번째 가출', 바야흐로팀의 '이 나이쯤에'를 발표했다. 2017년에는 뇌전증 인식개선을 위해 뇌전증어린이와 가족, 쉼표합창단을 구성해 'Have a Good Time'과, 노년반격 시즌2로 민들레 트리오의 '외출하는 날'을 발표했다.

2018년에는 룰루랄라 합창단 1기와 암경험자의 사회복귀를 응원하고자 '암파인 땡큐'를 발표했다.

2019년 시즌5에서는 룰루랄라 합창단 2기와 공동창작한 노래 '안녕, 나의 하루'를, 알로하하하 어르신들과 사월과 오월의 '장미'를 함께 발표했다.

서 기획자는 "나우는 음악 중심의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 감독님이 한 가운데에 계시고, 참여하는 많은 분들이 각자의 조직 안에서 사내기업가처럼 활동하다가 여기 모여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의논하고 대안을 찾고 하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어도 흩어지지 않고 또 다른 활동을 같이 해 나가는 플랫폼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활동과 사업들도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격차, 평등하고 안정적인 사회로 해소 = 서 기획자의 사회혁신활동은 그녀가 몸담고 있는 회사 한국에자이의 휴먼헬스케어(hhc)라는 독특한 조직철학에서 비롯됐다. 회사는 직원들이 근무시간 1%를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누는 활동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독려했고 그 일을 조직하는 게 자신 업무의 하나였다.

이것을 20년 가까이 진행하는 가운데 많은 사회적 문제를 목격하고 연구하게 됐다.

서 기획자는 "질병이 비단 의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생활전반의 다양한 사회문제와 결부돼 있고, 환자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려면 사회문제를 같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서 기획자는 암경험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온랩'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암경험자의 치료 복지 예방 돌봄과 교육이 통합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지금 온랩에서는 암경험자들의 진단상담부터 직장이나 사회적복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 시스템, 정보 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중점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랩은 2020년 여러 활동가들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포함한 페스티벌을 기획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자이랑 아름다운재단를 통해 기금지원이 이뤄져 재밌는 프로그램을 선뵐 예정이다.

또한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랩 모임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올해 안에 전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암생존자 리빙랩 '온랩' 사람들이 지난해 12월 정기모임에 참석한 후 기념 촬영..왼쪽부터 정승훈(윤슬케어) 양세은(sey.it) 박지연(박피디와황배우) 서미경(온랩) 서정주(에자이부장/나우 기획자) 유정윤(암파인니팅클럽) 조진희(디자인생선가게) 백진희(한국신장암환우회) 황서윤(박피디와황배우) 김주연(온랩) 김민주(룰루랄라합장단).


◆환자가 자기 삶의 스타일 유지할 수 있는 환경 디자인 필요 = 서 기획자는 암경험자를 위한 통합서비스 제공은 이용자 중심의 민관협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을 경험한 사람들이 환자들의 마음과 세밀한 요구를 제일 정확히 알기 때문에, 암경험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지역별로 다른 암환자를 돕는 암멘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이것을 커뮤니티케어랑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 기획자가 바이블로 여기는 마이클 마멋의 '건강격차' 책에 따르면, 같은 수준의 소득을 가지고 있더라도 더 평등하고 안정적인 사회에 사는 여부에 따라 수명이나 건강지표가 차이가 난다.

서 기획자는 "포용 사회라는 것은 위기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수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암이나 치매에 걸려도 자신의 삶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사회환경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기획자는 해외 견학 경험을 소개하면서 "몇 년 전 일본에서 치매환자와 미팅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치매라는데 골프도 잘 치고 생활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여 의아했다"며 "나중에 소개한 의사가 말하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치매환자를 자연스럽게 대하고 생활을 돕는 분위기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환자의 치매증상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고 덧붙여 많이 자극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또 네덜란드 보건복지스포츠부의 공무원이 '치매예방을 위한 연구개발 및 돌봄 분야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사회전체가 사람중심에 두고 치매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사회혁신이 중요하다'고 밝힌 것에도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 기획자는 정부에게 "커뮤니티케어 등 전국적인 보건복지정책을 펼칠 때 전문가위주로 논의되고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용자가 논의구조에 참여하고 같이 기획하고 대안들을 만들어나가며 평가도 하는 정책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에 민관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할 수 있도록 예방과 사람 중심의 보건복지 시스템 전환 맵을 '민관학연산'이 협력해서 그려 달라"고 요구했다.

끝으로 서 기획자는 10년 후 자신에게 "즐겁게 지나온 걸음처럼 그대로 걸어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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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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