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심각' 법조계도 비상

2020-02-27 11:46:32 게재

다음달 전국 법원장 회의, 화상회의로 전환 … 법원, 의심증세에 불출석 피고인 구속영장 취소

감염 우려로 구치소 수용자 첫 형집행정지 석방 … 검찰, '삼성 합병 의혹' 관련자 소환도 미뤄

'코로나19' 심각단계에 들어서면서 법조계도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전국 법원장회의를 화상회의로 전환하는가 하면 코로나19 의심증세에 법원이 불출석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취소했다. 또 검찰은 감염 우려로 구치소 수용자에 대해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했으며, 삼성합병 의혹 관련자 조사도 미루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법원도 '한산'│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림에 따라 24일 전국 법원에 휴정을 권고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공지 글을 올리고, 긴급을 필요로 하는 사건(구속 관련·가처분·집행정지 등)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의 재판 기일을 연기·변경하는 등 휴정기에 준하는 재판기일 운영을 권고했다. 사진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내부.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온라인 법원장 회의 처음 = 우선 대법원은 다음 달 6일 열릴 예정인 전국 법원장 회의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온라인 화상 회의로 전환했다. 전국 법원장 회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재연 법원행정처 처장(전국 법원장 회의 의장)은 26일 '대법원 코로나19 대응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전국 법원장 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장 회의를 1박 2일 행사에서 하루짜리 행사로 축소한 바 있는데 감염병 확산세가 가라앉지 않자 아예 온라인 회의로 전환한 것이다. 혹시 모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비상시국에 법원장들이 회의 참석을 위해 소속 법원을 벗어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주재하는 전국 검사장 회의도 코로나19로 연기된 바 있다. 당초 전국 검사장 회의는 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선 검사장들이 관할 지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관련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잠정 연기됐다.

◆재판 불출석 피고인 구속영장 취소 = 법원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피고인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피고인이 코로나19 증세를 보이자 영장을 취소하는 사례가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 재판부는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 A씨가 최근 별다른 이유 없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자 이달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검거된 A씨는 발열이 있고, 최근 대구를 방문한 이력이 있는 등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검찰과 협의해 이달 24일 A씨에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렸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에 별다른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지만, (A씨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돼 담당 판사가 구속취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A씨는 검사 결과 코로나19 음성으로 판정됐다. 법원 관계자는 "(A씨는) 현재 불구속 상태로, 향후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구치소 수용자 첫 석방 = 또 코로나 19의 확산여파로 구치소 수용자가 석방되는 첫 사례가 발생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검은 지난 22일 대구지방교정청 대구구치소에 수감중이던 수용자 A씨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결정하고 석방했다.

절도죄로 복역 중이던 A씨는 발목 치료를 받기 위해 외부 병원 진료를 받았다. 이후 같은 병원 간호사가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교정 당국은 감염을 우려해 A씨의 형집행정지를 결정했다.

형집행정지란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가혹하다고 판단될 때 검사의 지휘로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처분이다.

형집행정지 동안 A씨는 가족이 머무는 집으로 주거가 제한된다. 교정 당국은 한달 정도 A씨의 건강과 코로나 19 전파 상황 등을 지켜본 후 형집행정지 연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모를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형집행정지 결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자제 =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26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이 일선 검찰청의 수사 업무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검사들은 공소시효나 구속수사 기간 만료가 임박한 사안이 아닌 이상 사건 관련자를 직접 조사하는 일을 삼가고 사무실 내에서 수사의 내실을 다지는 쪽에 방점을 두고 있다. 압수수색을 비롯한 강제수사 착수 시점을 가급적 늦추면서 수사 일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서울의 한 검찰청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조사 필요성보다는 감염 확산 방지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긴급하지 않은 조사를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요 사건에도 코로나19 확산세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들어 삼성 전·현직 간부들을 잇달아 소환하며 속도를 올리던 '삼성 합병 의혹' 수사가 대표적 사례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 조사를 당분간 늦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한 경우가 아니면 소환을 최대한 자제하는중"이라고 했다. 그는 "조사를 받기 위해 외출하기가 꺼려진다는 참고인들도 늘었다"며 "서면조사 등 다른 수단을 먼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발열이나 기침 증상이 있다며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는 피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조사 대상자가 피의자 신분이라고 해도 공소시효가 큰 변수가 아니라면 출석을 거부했을 때 강제수사로 대응하기보다는 당분간 조사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변협, 대구·경북에 마스크 1만장 지원 = 한편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26일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대구·경북 지역에 마스크 1만장을 지원했다.

변협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코로나19 특별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지역 주민과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대구지방변호사회에 마스크 1만장을 전달했다"며 "효과적인 방역 관리를 위해 마스크는 먼저 지역사회 의료현장에 기증됐다"고 밝혔다. 변협은 "전국지방변호사협의회와 변협은 이번 마스크와 성금 지원이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를 막고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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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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