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충격, 금융위기 뛰어넘을 수도
다우존스 사상 최대폭 급락 … 전문가들 "2008년과 달리 실물경제 위기 동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서는 경제적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은 27일(현지시간) 또 다시 급락했다.
이날 미국 월가 다우존스는 1190포인트 급락했다. 절대수치로는 역대 최대 낙폭이었다. 다우지수는 이번주 월~수요일 이미 2000포인트 이상 하락한 터였다.
영국 FTSE100 지수도 3.5% 하락했다. 이번주 들어 계속 내리막을 타면서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최악의 한주를 보내고 있다. 런던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은 이번주 1500억파운드(약 235조원) 이상을 허공에 날렸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매도세가 지속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잇따라 실적 악화를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조만간 진정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상황에 몰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팔, 스탠더드차터드 모두 연초 세운 계획보다 실적이 크게 부진할 것임을 예고했다. 페이스북은 캘리포니아에서 개최하는 연례개발자회의를 취소했다. 페이스북은 해마다 이 자리를 빌려 수천명의 엔지니어와 기업가에게 새로운 상품을 공개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코로나19가 올해 미국 기업의 이익을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고급스포츠카 제조사인 애스턴 마틴은 매출 하락과 공급망 붕괴를 예측했다.
부동산기업들이 다음달 프랑스 칸에서 예정된 '세계 최대 부동산박람회'(MIPIM)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알리고 있다. 버드와이저 모기업 AB인베브는 이미 1억7000만달러의 이익이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글로벌 홍보사 WPP는 아시아 출신 직원들을 격리했고,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8만6000명 직원에게 여행금지 지시를 내렸다. 신발제조사 크록스는 아시아시장 붕괴로 매출 3000만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과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코로나19 손실을 대폭 반영했다. 나라를 불문하고 여행산업과 항공산업, 자동차산업도 깊어질 위기에 대처하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영국 경제분석 컨설팅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감염증(팬데믹)이 될 경우 무역과 금융시장, 외환시장 충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당시 전 세계 GDP는 0.5% 하락했다.
가디언은 "실물경제가 급속히 악화되고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지만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이를 완화하기엔 거의 무기력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중앙은행 부총재 존 컨리프는 최근 "공급망에 완전히 부정적인 충격이 가해진다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할 일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공급망 충격은 상품 생산과 서비스 공급이 와해돼 상점과 공장 등이 문을 닫는 것이기에 통화정책으로 이들을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코로나19 대처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재닛 옐런 전 의장은 트럼프 발언 직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도 "코로나19가 더 확산한다면 미국 기업들의 올해 이익은 제로가 될 것"이라며 옐런 전 의장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향후 글로벌 경제활동의 부진을 예상한 듯 국제유가는 13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 금융가 씨티의 투자자들은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중국 내 제조업 공급 부족은 이미 소비 수요의 급감과 맞물리면서 기업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각국 기업들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글로벌 주요 은행들도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총부채는 전 세계 GDP의 두 배 이상인 188조달러를 넘었다. 주요국 기업부채 역시 전고점이었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영국 런던에 상장해 아시아권에 영업을 집중하는 스탠더드차터드는 "올해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총 손실을 지금 예측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거듭 경고해온 IMF는 "특히 중국의 경우 경기 침체시 기업부채의 40%는 차환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최근 은행권을 상대로 스트레스테스트를 시행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4.15%로 하락할 경우 30대 은행 중 17곳이 도산할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6.1%로 1990년 이래 가장 낮았다. 미중 무역전쟁이 상품과 서비스 수요를 둔화시켰기 때문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돌려봐도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3%로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거대한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보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로렌스 코틀리코프는 미 의회 전문매체 '더 힐' 기고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리먼의 파산은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실제 생산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리먼의 파산으로 기업의 임직원 중 누구 하나 죽거나 건물 또는 장비가 파괴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미국과 글로벌 경제의 생산성은 온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급락했고 계속 하락했다. 2009년 3월 미국 증시는 2년 전 최고치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땐 두려움 그 자체가 유일한 문제였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무언가를 갖고 있다. 그것이 실시간으로 경제적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나라 전역을 봉쇄한 게 대표적 사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대응들은 고도로 연계된 상호의존적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수십억명의 투자자와 소비자를 패닉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간스탠리 글로벌투자전략 수석인 루치르 샤르마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중국 내 16개 도시의 격리는 경제활동에 거대한 충격을 드러낸다"며 "도로와 철도, 공항에 차와 기차 비행기가 줄었고, 극장과 공공장소에서 사람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통계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비공식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며 "도심 교통에 대한 위성사진, 홍콩의 스모그 정도, 중국 검색엔진의 트래픽양 등 비공식 자료들은 중국 경제가 거대한 충격을 받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충격은 국가마다 다양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해당 국가가 쓸 수 있는 부양책에 달렸다는 것. 중국은 기준금리를 내린 한편, 은행들에게 대출을 적극 늘릴 것을 독려하고 있다. 샤르마 수석은 "중국 내 투자자들은 '당국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이 덕분에 중국이 코로나19의 진앙임에도 금융시장이 다른 개발도상국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이탈리아가 경제적 타격 고위험군으로 꼽혔다. 샤르마는 "엄밀한 의미에서 일본은 이미 불경기에 진입했다. 하지만 경제에 어느 정도 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본은 올 여름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하기 위해 코로나19를 막는 데 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확산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진행중인 반글로벌화는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샤르마는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국가들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력과 상품, 자본의 국경간 이동은 점차 둔화됐다"며 "코로나19 감염의 두려움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자기확신을 강화시킨다. 이들은 수입과 이민, 문화 영향력 등을 국경에서 봉쇄하는 장벽을 세우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화를 향한 흐름은 진행중이다. 기업들은 지역적으로 더 생산하려 하고 소비자들은 지역 브랜드를 더 구매하려 한다"며 "가장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벗어나려는 제조업체들은 저임금 국가, 보다 기업친화적 국가를 찾아나서면서 그같은 흐름이 거세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