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한파 녹이는 취약계층 주민들
관악·성동서 잇따라 기부 … 기초수급 생활비 저축해 쾌척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누구보다 힘들 취약계층 주민들이 의료진과 이웃을 위한 기부에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와 관악구 주민들이 기초수급 생계비를 모아 목돈을 쾌척했다.
9일 관악구에 따르면 지난 5일 삼성동주민센터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하고 손에는 장갑을 낀 노인은 너덜너덜해진 봉투를 전하고 곧바로 사라졌다. 황급히 쫓아나간 공무원에는 "남들에 알려질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익명 기부를 요청했다.
노인은 삼성동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지난달 잠깐 외출을 했다가 자가격리 대상자로 통보를 받아 2주간 격리생활을 했던 주민이었다. 관악구 관계자는 "생활고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을 만큼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구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극복했다고 한다"며 "격리기간 구와 동에서 생필품을 가져다주고 매일 전화로 건강과 안부를 챙겨 감사함을 느껴 기부를 결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노인이 내놓은 금액은 100만원. 생계비를 아껴 모아온 돈이다. 주민은 "그간 받은 도움에 보답할 차례"라며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주민 뜻을 반영, 코로나19로 피해가 큰 대구·경북지역 성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생활비도 빠듯할 텐데 수년간 저축한 돈을 선뜻 기부해주셨다"며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는 주민들 뜻깊은 마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성동구 행당2동에는 하루 앞선 지난 4일 휠체어를 탄 뇌병변 장애인이 찾아왔다. 14년 넘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선우 모(60)씨다. 조유진 복지담당 주무관이 방문 이유를 묻자 그는 간호사들 이야기를 꺼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지친 간호사들이 컵라면을 먹는 거예요. 너무 도와주고 싶어서요…. 저도 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들한테 도움을 많아 받았는데 간호사들이 힘들어한다고 그러네요."
선우씨 형편을 잘 알고 있는 공무원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200만원이 담긴 봉투를 건네고 떠났다. 조 주무관은 "얼마 전에는 이름도 밝히지 않으시고 100만원을 주고 가신 주민도 있었다"며 "주민들이 쌈짓돈을 모아 가져오시니 어려운 시기에 감동이 더하다"고 전했다.
성동구는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코로나19 피해 지원'에 기탁할 예정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힘을 모으면 피할 수 없는 재앙만은 아니라는 걸 주민들을 통해서 배운다" 며 "공공에서도 주민들을 지키고 함께 어려운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