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불안감 확대에 글로벌 증시 연일 바닥없는 추락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가격이 동반 하락세
실물경제 위험으로 세계 경기침체 우려 ↑
"기업 신용위험 해소 위한 직접 지원 필요"
글로벌 증시가 다시 대폭락했다. 긴급 금리인하 결정에도 금융시장 불안감은 오히려 확대된 모습이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고 달러 수급이 타이트해지는 현재의 여건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연상케 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실물경제 위험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리인하보다 경기침체 공포 더 커 = 17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전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부양책에도 대폭락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 공포가 더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997.10p(12.93%) 폭락한 20188.52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1.98% 추락, 나스닥 지수는 12.32% 폭락했다. 다우지수는 지난 12일 이후 2거래일 만에 1987년의 '블랙먼데이' 이후 최대 하락률을 다시 갈아치웠다. 뉴욕 증시에서는 또 개장 직후에 거래가 15분간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또다시발동됐다.
유럽증시도 일제히 폭락했다. 유럽의 주요 지수는 2012년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 대비 4.10% 떨어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는 5.31% 하락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5.75% ,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의 이탤리40 지수는 8.35% 떨어졌다.
아시아 증시 또한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일본 증시는 4거래일 연속 급락하면서 3년4개월 만에 최악의 종가를 기록했다. 이날 일본은행이 금융시장에 자금 공급을 늘리기 위해 ETF(상장지수펀드) 매입액을 연간 6조엔에서 12조엔으로 2배 늘리기로 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전장 대비 3.4% 하락, 선전종합지수는 4.83% 떨어졌다. 인민은행이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동결한 것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16일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지며 전 거래일보다 3.2% 떨어진에 이어 17일 4%대 폭락세로 장을 시작했다.
◆금융시장, 양적질적완화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신용위기의 핵심은 기업부채, 구체적으로 서비스업 관련된 회사채 및 레버리지론의 부실이 핵심"이라며 "금융시장은 양적완화(QE)가 아닌 양적질적완화(QQE)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미 연준의 정책이 QQE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미 정부가 부실기업 혹은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적극적인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부도 기업 채권을 정부와 미 연준이 공동으로 매입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사상 유례없는 글로벌 제조업 및 서비스 경기의 동반 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재정정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양적완화는 장기 국채 및 모기지채권 등 정부 보증의 안전자산 매입 정책이라고 한다면 질적완화는 위험도가 높은 자산가격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기 위해 일부 위험 금융자산까지 매입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은행의 경우 국채는 물론 ETF와 리츠, 기업어음, 회사채 등 다양한 금융자산을 매입 중이며 16일엔 그 규모를 더욱 확대했다.
나중혁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 연준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며 "예를 들어 유가 급락이 신용 스프레드 급등세를 초래하는 주된 원인인데 회사채 매입에 관한 언급이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나 연구원은 "저유가 기조가 이어질 경우 미국 에너지 기업의 연쇄 부도 우려가 금융위기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실질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에 직접 자금 수혈 정책 필요 =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빅스(VIX) 지수와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무브(MOVE) 지수 등 변동성 지표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만큼 올라왔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 경제주체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부채의 양적 팽창과 질적 악화가 동반된 기업부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충격 속에 산유국 감산 실패로 유가 폭락까지 가세하면서 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부상했다. 경기 하방 위험이 부각된 가운데 금융시장 불안까지 가세하면서 에너지 산업의 신용 불안은 여타 산업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기업 신용 위험을 나타내는 하이일드스프레드는 10%p 내외로 올랐으며, 에너지 업종이 이를 주도한다. 하 연구원은 "신용 위험이 장기화돼 한계 기업이 파산 또는 디폴트에 처할 경우 실물경제가 추가로 위축될 수 있다"며 "여기에 금융기관 유동성 여건까지 악화될 경우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시장은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 지원보다 직접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 연구원은 "연준의 조치는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기업에 자금을 수혈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하지만 금융시장은 이미 불안에 휩싸여 금융 취약계층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업의 신용 여건을 보강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데 양적완화 대상에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 뿐만 아니라 회사채, CP(기업어음) 등 신용채 매입이 이뤄져야 기업 부문에서 나타나는 불안이 전이되지 않는다"며 "추가로 유동성 경색이 나타나는 산업에 대해 ECB(유럽중앙은행)에서 운영하는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등의 신용 프로그램도 빠르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또한 미국의 회사채 시장 불안 등 신용경색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현재 글로벌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했다. 또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