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SEC(증권거래위원회), 바이오기업 '내부통제 감사유예'
코로나19 백신 주력 주문
"피해는 주주들이" 비판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바이오 기술 기업 등 소규모 상장기업들에 대해 내부통제 감사를 유예하는 규정을 승인했다. SEC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백신 개발 등에 바이오 기업들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회계 부실로 인해 주주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SEC는 연간 매출이 1억달러 미만이고 시가총액 7억달러 미만인 기업에 대해 내부통제와 관련된 회계시스템과 안전장치 검사를 유예하는 규정을 승인했다. 이들 기업들은 내부통제 감사를 위해 별도의 감사인을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의 내부통제 감사규정은 2000년 초반 엔론과 월드콤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이후 생겼다.
SEC는 이같은 규제 완화가 기업을 장려하기 위한 폭넓은 조치의 일환이며 규정 적용 대상은 373개 기업으로 추산했다. SEC 위원인 헤스터 피어스는 성명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을 위해 힘쓰는 기업 등이 자원과,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도, 경영진의 시간과 관심을 내부통제 감사보다는 필요한 일에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피어스 위원은 이같은 규정 개정을 지지하는 기업들로부터 의견수렴을 거친 후 승인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의견수렴 기업 중 하나는 제약회사인 텔리전트(Teligent)다. 텔리전트의 최고재무관리자인 다미안 피니오는 "해당 규정으로 국가의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고품질의 경쟁력 놓은 제품을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디애나 대학교 회계학 교수인 조 슈레더는 감사유예 규정에 찬성 의견을 보낸 기업 중 적어도 10여개 기업이 자체적인 회계문제가 드러났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몇몇 기업은 이같은 문제로 수익보고서를 재수정했고, 또 다른 몇몇 기업은 재무보고 내부통제와 관련해 감사인이 '중요한 취약점'을 발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텔리전트의 경우 SEC에 찬성 의견을 보내기 전, 제출된 연례보고서에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과 관련해 합리적인 확신을 획득하기 위한 광범위한 추가적인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공시했다. 텔리전트는 새로운 회계 시스템을 실행할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입장이고, 2017년 중반 이후 텔리전트의 주가는 97% 하락했다.
슈레더 교수는 "감사인이 취약점을 지적한 기업들이 '사실상 우리가 회계문제를 가지고 있고, 회계시스템을 향상시키라고 요구하는 규제를 없애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SEC 의장인 제이 클레이튼은 새로운 규정의 대상이 "불필요한 규제 비용으로 영향을 가장 극심하게 받고 있는 소규모의 매출이 낮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해당 규정 승인에 대한 표결은 3대1로 통과됐고 SEC 위원 중 유일한 민주당 의원인 앨리슨이 반대표를 던졌다.
앨리슨 의원은 "규정 최종안은 기업들에게 얼마 안 되는 추가 비용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많은 기업들이 상장하도록 장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은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이 클레이튼 의장은 "기업 임원진이 여전히 내부통제의 효과성에 대해 평가를 해야 하고 이를 공시했음에 대해 증명을 받아야 한다"며 "기업들은 재무제표에 대해 검증 받기 위해서 독립적인 감사인을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슈레더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SEC에 서한을 보내 "11개의 기업(개정된 규정으로 혜택을 보는)이 2018년 총 순이익에서 6500만달러를 재수정했다"고 지적했다. 슈레더 박사는 "이러한 수정으로 2억9400만달러의 피해를 주주가 보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SEC가 새로운 규정 실행으로 인한 기업의 비용 절감액 규모를 5036만달러라고 예측한 것에 비해 주주의 피해액이 훨씬 많은 것이다.
SEC는 기업이 내부통제와 관련한 감사를 수행하는데 드는 평균 비용이 13만5000달러로 보고 있으며 회계전문가들은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금액이라는 입장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 비즈니스스쿨 다니엘 타일러 교수는 "기업들이 더 많이 상장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접근방식을 규제당국이 찾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자본시장의 핵심인 감독기준을 낮추는 방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