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 세계경제, 모르니까 더 무섭다

2020-04-17 11:40:24 게재

NYT "글로벌 상호의존성 재고 불가피"

경제적 격변이 일어나면, 파문은 수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뻗어간다. 2007년 미국 교외지역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디폴트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2010년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일으킬 것이라 예측한 이는 없었다. 멀리는 1929년 뉴욕증권거래소의 주가 급락이 1930년대 유럽 내 파시스트를 대거 등장시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

뉴욕타임스 선임 기자 닐 어윈은 16일 "세계 경제는 매우 복잡한 상호의존의 그물"이라며 "각자의 인간은 직접 볼 수 있는 일련의 경제적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상점, 우리에게 보수를 주는 고용주, 우리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은행 등"이라고 지적했다.

방호복을 입은 중국 노동자들이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항구에 정박한 중국원양해운(COSCO) 소속 컨테이너선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그는 "하지만 관계가 2~3단계를 넘어서면, 그같은 연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신을 갖고 말하기 어렵다"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전 세계 사람들을 불안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어윈은 '승자독식 세계에서 승리하는 법'의 저자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향후 수년 동안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와해시킬 수 있다. 수백만 연결점이 한꺼번에 붕괴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경제는 지난 수십년 유지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컬럼비아대 경제사학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광범위한 파문효과를 서술한 '붕괴'(Crashed) 저자 애덤 투즈는 "우리는 위기 이전의 일상적 경제활동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제 겨우 문제가 시작되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투즈는 "지금은 매우 불확실한 시기다. 우리가 알던 그 어떤 것보다 규모가 크다"고 덧붙였다.

닐 어윈은 "이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세계 경제질서가 5년 뒤, 아니 단 5개월 뒤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 경제적 격변의 사례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위기 이후의 거대한 파급효과가 장기간 방치한 문제점들의 결과라는 점이다. 위기는 호황 때 망각하기 쉬운 약점들을 전면에 부각시키곤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파급효과를 받게 될 첫 번째 후보는 글로벌화다. 기업들은 글로벌화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곳에 생산기지를 옮긴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여행한다. 자본은 가장 높은 회전율을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흘러들어간다.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미국에서 세계경제라는 개념은 이미 와해되고 있었다. 중국의 급부상, 미국 내 국수주의의 확산이라는 환경에서다.

코로나19는 그같은 변화를 가속화하고 강화시킬 것이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의 선임연구원인 엘리자베스 이코노미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얼마나 많이 의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것이 근본적으로 글로벌화의 종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기가 닥칠 경우 미국 내에 중요한 기술과 자원, 여분의 제조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사고방식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화의 지지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례는 많다. 프랑스 재무장관은 최근 자국 기업들에게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하는 공급망을 재고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특정 의료물자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미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며 중국이 보유한 미국채를 무효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만약 그레이엄 의원의 제안이 현실화한다면 세계 금융시스템의 기반인 달러의 역할을 위태롭게 만드는 조치가 된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글로벌화에 대한 경계심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글로벌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절정에 달했다가 이후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은 다국적 기업들이 기존의 사업활동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파트너인 수전 런드는 "기업들이 글로벌 상호의존성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본다"며 "어느 정도까지 분기별 실적을 포기하고 장기적 회복탄력성을 선택할 것인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글로벌 무역에서 전면 후퇴한다기보다 지역 내 무역협정을 중시하고 공급네트워크와 관련해 여분의 용량을 남기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도 향후 의약품이나 의료장비 등 특정 부문의 경우 자국내 생산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경제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저가의 제조국이 아니라 항공기나 통신장비 등 첨단기술 제조국으로 전환하는 게 목표다. 때문에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중국에서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침해를 우려해서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서유럽 동맹국들과도 긴장관계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코로나19 이전에도 각국은 글로벌화에 역행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코로나 위기가 이를 강화시키는 상황이다.

모간스탠리투자운용 수석 글로벌전략가인 루치르 샤르마는 "이같은 위기를 겪은 후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포스트 코로나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지 예측한다"며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전에도 그런 흐름은 진행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1차 세계대전과 1918년 스페인독감 확산기, 글로벌 무역은 위축됐고 금융시스템이 재편됐다. 영국 파운드화는 기축통화 지위를 잃었다.

그런 일이 이번에도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초기신호는 반대방향을 가리킨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달러의 입장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4개국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해당국 금융시스템에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는 차원이다. 또 미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주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이런 조치는 달러유동성 부족으로 세계 경제가 마비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영국중앙은행 전임 총재인 마크 카니는 지난해 8월 전 세계 중앙은행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현재의 국제통화, 금융시스템은 달러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 지속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는 각종 모순을 가진 달러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애덤 투즈 교수는 "달러 시스템은 내재적으로 불안정하다. 하지만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역시 그렇다"며 "자전거나 달러나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숙련된 라이더라면, 자전거는 매우 유용한 존재다. 연준은 달러패권이라는 자전거를 능숙하게 조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닐 어윈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2년 간을 보면, 1918~1939년 시기를 재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1세기 전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붕괴했고 독재국가들이 등장했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경제강국이 부상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전염병이 있었다"며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전 세계 경제나 기타 다른 부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앞날이 어떤게 전개될지 모를 때 역사는 확실히 공포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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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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