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에 '실시간' 경제통계 절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통계를 들여다보는 게 많은 미국 가정들의 일상사가 됐다. 숫자로부터 위안을 얻는 이도, 경각심을 갖는 이도 있다.
어떤 이가 감염곡선의 평탄화에 안도한다면, 또 다른 이는 검진 수의 부족에 따른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러나 지금보다 통계가 더 중요했던 때는 없다는 공감대가 크다. 보호장구와 인공호흡기를 어느 곳에 배치하느냐, 언제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게 안전하냐 등 생사를 가르는 정책 결정을 이끌기 때문이다.
BBW는 "그런 맥락에서 경제현황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지표들은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연방준비제도(연준)에서 월가에 이르기까지, 실시간 피해를 찾아내고 구조활동을 안내하기 위한 새로운 데이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더 잘 준비해야 하는 것뿐 아니라 그로 인한 급속한 경제침체에도 제대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장들은 지난 3월 초 국제결제은행(BIS) 주최 정기 컨퍼런스콜에 참여했다. 이 회의에서 일부 중앙은행장들은 경제지표가 현실보다 한참 늦게 나오는 통에 눈을 가리고 정책을 짜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노동통계국(BLS) 월별 통계보고서는 시장의 향방을 좌우하기 때문에 꼼꼼히 검증된다. 3월 보고서엔 미국에 71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했다고 돼 있다.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의 현황을 담았기 때문인데, 이 기간은 미국 주요 도시와 주에서 의무적인 봉쇄와 격리조치를 취하기 전이었다. 반면 주간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보면 3월 1일부터 4월 4일까지 17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숫자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전역에서 실업수당 웹사이트가 마비되고 전화가 불통일 정도로 신청이 몰려들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또 매사추세츠주와 오리건주의 경우 자영업자와 기그노동자(gig workers)를 포함한 모든 근로계층에게 '당분간 실업수당을 청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일자리 통계의 품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연준 소속 경제학자들은 급여정보 제공업체인 ADP의 데이터를 활용해 자체적인 고용지수를 만들었다. ADP는 미국 기업 20%에서 고용관련 일일 통계를 생산한다. 그 통계에 따르면 3월 단 2주 동안 순 일자리 손실은 1300만개에 달했다. ADP는 "계산법을 달리한다면, 순손실은 2300만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전문가들도 경제산출량 축소를 정확히 예상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예상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경제는 약 3% 위축될 전망이다. IMF는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각국이 자가격리 등 비상조치를 취하면서 올해 연간 노동일수가 평년 대비 약 8% 줄어들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3% 위축을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 연간 평균 근무일수는 250일 안팎인데, 8% 줄어들 경우 230일 정도가 된다. 하지만 잃어버린 20일은 봉쇄조치가 발동된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과소평가된 것이다. BLS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의 약 1/3이 재택근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전례없는 속도와 규모를 자랑한다. 통계전문가들도 경제가 얼마나 더 악화될지 자신할 수 없다. 일부는 아예 전망을 포기했다. 필라델피아연방은행은 최근 주단위 경제지표 생산을 무한정 보류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실직 충격이 워낙 커 향후 6개월 동안을 내다보는 믿을 만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전문가들은 역사적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은행과 신용평가사 전문가들의 최근 예상은 마치 널을 뛰는 모습이다. 20여명의 전문가들은 올 2분기 미국 GDP 전망에 대해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65%, 최선의 경우 플러스 0.4%로 점치고 있다. 편차가 커도 너무 크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면,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 더 쉬워질 수 있다. 미국 GDP를 측정하는 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과학적 기법이다. 평상시라면 경제분석국(BEA) 전문가들이 서두르지 않는 점을 수긍할 수 있다. 4월 29일이 되어야 올 1분기 추정치가 나온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말고는 분기를 특정하는 게 별다른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현재의 상황은 7월말이 돼야 통계로 나온다. 그때는 지금 당장 시급한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기엔 너무 늦은 시기다.
따라서 시의적절한 데이터가 절실하다. 공개주기가 더 촘촘한 대안적 지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은 식당과 호텔, 항공예약, 전기사용, 신용카드지출 등 모든 것을 검토하고 있다. BBW는 "달리 말하면, 우리 모두가 요즘 또 다른 리커창이 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2010년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전문을 공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2007년 3월 당시 랴오닝성 당 서기였던 현 리커창 총리는 중국의 경제통계를 믿지 않았다. 클라크 랜트 주중 미국 대사를 만나 "중국의 GDP 통계는 인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승진에 목을 맨 간부들이 베이징 중앙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치를 부풀려 왜곡한다는 것이었다.
리커창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데이터를 신뢰했다. 전기사용량과 철도화물량, 은행대출 등 지표다. 그는 랜트 대사에게 "GDP 통계를 포함한 모든 다른 지표들은 단지 참고용으로만 쓴다"고 말했고, 랜트 대사는 이런 정보를 본국에 전보했다.
이런 폭로 이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 블룸버그 등 언론사들은 '리커창지수'로 불리는 자체적인 지표를 만들어 중국 경제현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경제분석 기구들이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지표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물론 대안적 지표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는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나쁜 정책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당시 로버트 맥나라마 국방장관과 선임 간부들은 1일 적 사상자 수치에 집착했다. 실제로 지고 있던 전쟁이었지만, 워싱턴 정가에선 이기는 전쟁으로 착각해 기나긴 수렁에 빠지게 한 원인이었다.
당시의 문제는 앞선 중국의 사례와 비슷했다. 미군 전쟁 지휘관들은 명령계통의 긴 사슬을 통해 적의 사상자 숫자를 부풀리면서 자신의 전과를 홍보하려 했다. 데이터에 대한 맹신도 있었다. 지금은 '맥나라마 오류'로 불린다. 정책결정자들이 양적 수치에 매몰될 경우 더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미국 정책당국도 대안적 지표에 비중을 두고 있다. 3월달 미 전역에 실직 대란이 벌어지는 것과 관련해 한 백악관 참모는 사석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용카드 회사들로부터 소비지출의 실시간 현황을 브리핑 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이후 애틀랜타연방은행은 'GDP나우' 지수를 공개한다. 소비지출과 기업재고 등 새로운 경제데이터가 나올 때마다 즉각적으로 GDP를 업데이트한다. 하지만 애틀랜타 연준도 대강의 추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늘 신중하게 다뤄진 것도 아니다. 백악관 경제자문 래리 커들로는 3월 초 GDP나우 지수가 상당히 양호했던 것을 근거로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에 제한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뉴욕연방은행은 자체적으로 만든 '위클리 경제지수'를 공개한다. 소매판매, 실업수당 청구, 1일 소비심리, 철강생산, 전기사용량 등을 종합한다. 뉴욕연은은 "대안적 지표는 경제상황에 대한 유익한 신호로만 봐달라"며 "지표 자체는 단지 그같은 신호를 협소하게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의를 요한다.
BBW는 "하지만 현재 필요한 건 다양하고 풍부한 지표"라며 "글로벌 무역과 공급망에 대한 생생한 현실을 담은 지표, 위기의 시대 보다 믿음직하고 유용한 데이터는 전 세계 각국 정부들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물론 그런 데이타가 현재 위기에서 경제적 고통의 곡선을 신속히 평탄화하는 데 충분한 것은 아닐 수 있다"며 "하지만 다음 위기에는 믿음직하고 유용한 데이터가 위기대처에 도움이 되기를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