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혼전 양상' … 청와대 '신중'

2020-11-05 11:46:39 게재

공식 반응 없이 선거 결과 예의주시

문 대통령, 오늘 외교안보장관회의 소집

선거상황 점검, 시나리오별 대응방안 논의

개표 장기화땐 한반도 불확실성 증대 우려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가 혼전 양상을 보이며 당선자 확정이 늦어지자 청와대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 대선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5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문재인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잇따라 열어 미 대선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5일 "미 대선 결과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액션'을 취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개표 진행상황을 주시하면서 여러 가지 경우에 따른 대응방안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하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강경화 외교부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하는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한다. 이 자리에서는 미 대선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시나리오별로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과 대응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점검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가운데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대북 정책의 기본 목표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서 실장은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 대선 결과가 대북정책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기본적인 목표는 같고 접근 방법에 있어서만 차별화가 돼 있는 것"이라며 "미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떤 정부와도 한미동맹의 긴밀한 협력 하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또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대응방안을 미리 준비해 놨느냐'는 질문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놨다"며 "트럼프 대통령 측과는 이제껏 많은 논의를 해와 공조 기반이 있고, 민주당 정부가 수립되더라도 많은 협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떻게 이른 시일 안에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느냐가 한미 공동의 숙제"라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변함없이 미국과 충분히 소통해 목표를 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는 외교와 무역 등 대외정책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왔기 때문에 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양측이 승패를 인정하지 않고 우편투표 등을 놓고 법적소송으로까지 이어져 장기화되는 경우다. 트럼프 대통령이든 바이든 후보든 당선자가 확정되면 그동안 우리 정부가 준비해온 방안에 따라 대응할 수 있지만 선거 결과 확정이 늦어지면 대처하기가 곤란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 경합주에서 바이든이 앞서 나가자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 중단 소송을 내고 재검표를 요구하는 등 소송전을 예고한 상태다.

통상 미 대통령이 확정되면 청와대는 축전을 보내고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일정을 잡는다. 하지만 최종 개표 결과 바이든이 이겨도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 선언을 하면 축전이나 통화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의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되면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결선에 진출해 있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 있다. 유 본부장은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게 득표에선 밀렸지만 미국의 지지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유 본부장이 유리해지지만 바이든 후보가 이기면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미 대선 결과가 늦어지면서 유 본부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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