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를 말하다 | ① 기획 좌담 - 재보궐선거 한 달, 20대는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반대정당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어"
2021-05-04 00:00:01 게재
김나영 "우리는 '세월호' 세대다.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백윤성 선거 후 사면 주장에 "내 손가락 분질러버리고 싶어"
여인서 "엄마만큼 노력한다고 그만큼 벌 수 있는 시대 아냐"
윤호준 "남녀 편 가르기 하는 것 말고 청년정책 자체가 필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백윤성(백) - 의과대 본과 1학년 다니고 있다. 2년 정도 전에는 정의당 당원이었는데 몇몇 일들 때문에 환멸이 느껴져서 탈당했다. 지금은 학교 공부로 바쁘다. 26살이라 조만간 입대할 것 같다.
김나영(김) - 경영학 전공 4학년째다.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보수 성향은 아니다. 취업준비 중이다.
윤호준(윤) - 영화과 재학 중이다. 프리랜서로 촬영과 연출하고 있다. 유튜브도 찍는다. 코로나19 때문에 한 학기 휴학 중이다.
여인서(여) - 방송영상 전공이다. 정치활동 경험은 없고 고등학생 때 페미니즘 활동을 했었다.
지난 재보궐선거는 어떻게 봤나.
김 - 좀 놀랐다. 사실 선거철에 교내 온라인 게시판에 오세훈 후보 지지하는 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다.
후보들 공약을 정리한 뉴스레터를 읽었다거나, 정치성향을 분석해서 후보 골라주는 앱을 썼다는 후기에서도 오 후보를 찍겠다는 글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게시판 여론은 안 믿는 편이었는데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질 줄은 몰랐다.
윤 - 난 서울시민은 아니지만 여자친구와 누구 찍을지 얘기하곤 했다. 난 오세훈 찍을 것 같다고 했다. 탄핵 후에 차별 없고 공정한 세상 만들겠다며 들어선 게 이번 정부인데 까놓고 보니 이전 시절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비리가 해소된 것도 아니고 공정해진 것 같지도 않고.
여 - 청년층이 이제야 자기 목소리 낸 것처럼 보는 어른들이 많다. 그동안 586 기성세대가 우리 얘기 안 듣고 있다가 자기들 생각과 엇나가니까 그러는 것 같은데 기만이다. 성폭력 사건 때문에 생긴 선거인데도 여야 모두 눈에 차는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거대양당을 찍지 않은 (20대 여성) 15%에 집중해야 한다.
김 - 국민의힘에는 차마 손이 가지 않아 민주당을 찍었지만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다.
민주당이 성추문을 일으킨 박원순 전 시장을 끊어내지 않고 지키려는 모습에 실망했다.
지금 삶에서 가장 간절한 문제는.
김 - 취업과 '불확실성'이다. 특히 대학 입학 후에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불안하다. 아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모르겠고, 앞으로 어느 직장에 들어가려면 뭘 해야 하는지 확실치 않다. 준비를 계속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어찌어찌 취업을 해도 집이 너무 비싸 못 살 것 같다.
윤 - 공감한다. 뭘 해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지가 고민이다. 불확실한 만큼 내 노력이 지금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여 - 난 엄마한테 얘기하곤 한다. "엄마가 열심히 살아온 건 '리스펙(존경)'. 하지만 내가 그정도 노력한다고 엄마만큼 돈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좀 양해를 해달라…."
백 - 나도 불안감 때문에 의대에 지원했다. 친구들 보면 이제 인턴·레지던트 많이 들어가는데 고민이 '어디서 살지'다. 옛날엔 의사로 30년 일하면 빌딩도 샀다는데 지금은 전세나 벗어날 수 있을까 싶다.
'이대남·이대녀(20대남녀)' 논란이 한창이다.
백 -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보니 이준석(국민의힘 전 최고위원) 같은 사람이 호응을 받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논쟁할 필요 없이 그 사람 페이스북에 '따봉(좋아요)' 하나 눌러주면 편하니까. 남초문화 속에서 살아서인지는 몰라도 내 주변에선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보다 이준석이 더 공감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민주당이 페미니즘 정당이라서 이번에 이대남 표를 못 받았다고 보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한 게 없지 않나. 당장 차별금지법부터 말뿐이었고.
여 - 온라인이 여론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못할 말이 없다 보니 작은 문제도 크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뭔가 불평등하고, 불안을 안고 살다 보니 누구에게든 화살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김 - 오프라인에서 얼굴 내놓고 온라인에서처럼 싸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들 이렇게 숨기고 사나' 싶어 공포도 느낀다. 겉으론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론 날 보고 '꿀 빨고 있네'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각자 사정이 다 다른데…. 이준석씨는 이제 말 그만 꺼냈으면 좋겠다. 공감은 안 바라는데 우리 처지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저렇게 확신에 차 있는지. 아픈 사람한테 '너 안 아프다'고 하면 병이 낫나.
선거 후 정치권에서 군 가산점, 여성 군입대 얘기도 나왔다.
여 - 20대 남성이 겪는 불평등 문제를 풀려고 화살을 또래 여성에게 돌리는, 잘못된 접근이다. 우리가 힘들게 사는 건 누군가가 '독식'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게 20대 여성은 아니잖나. 가산점 문제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표를 잃으니까 정략적으로 얘기하는 거 같다. 꼴 보기 싫은 심정이다.
윤 - 이대남이 보수 찍었다니까 나온 것 같은데 이런 걸로 우리 마음을 잡으려는 발상 자체가 안일하다. 제3정당에 투표한 여성 15%은 어쩔 건가. 남녀 편 가르기 하는 것 말고 청년 자체에 대한 공약이 필요하다. 선거 때 청년공약들을 찾아봤다. 박영선·오세훈 모두 '통장' 만들어주겠다더라. 상당히 부실했다.
백 - 여성 군입대는 제한적으로 고려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간에서도 성폭력으로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데 군이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산점은 찬성한다. 대신 여성·면제자도 대체복무 방식으로 어느 정도 받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김 - 군대 얘기가 왜 지금 나오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정책이 필요해서 나온 얘기가 아니라 선거 졌으니까, 별 고민 안하고 던지는 얘기 같아서 자존심도 상했다. 우리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들인가.
나는 당장 급한 게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다. 취업해서 돈 벌어서 집 살 수 있을까 그런 문제가 더 급하다.
군대 문제보다 20대가 부모에게서 독립해 살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에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조국사태 이후 '공정'이 화두다. 얼마나 와 닿았나.
백 - 나를 포함해 의과대 친구들이 조국(전 법무부 장관) 딸에게서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난 수능 보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 사람은 비교적 편한 방법으로 진학했다. 난 유급하면 잘렸는데 그 사람은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더라.
여 - 막 대단하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회지 싶어 허무했다. 우리는 당장 알바 할 때, 학교 수업에서 느끼는 불공정이 더 아프다. 그런데 조국을 둘러싼 공정 논란에선 그런 얘기가 없었다.
윤 - 조국 딸이 의전원 합격하고 이런 거 보면서. 잘못됐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때는 처벌을 어떻게든 받겠지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들리는 게 별로 없다. 더 글렀다고 생각한 건 추미애(전 법무부장관) 아들 휴가 연장 의혹이다. 군필자로서 이게 진짜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어머니는 '휴가 더 나간 게 뭐가 문제냐' 하시는데 나는 '엄마, 나는 아파도 못 나왔어' 했다(웃음).
김 - 기대가 별로 크지 않아서 실망도 크지 않았다. 정치공방이 하도 치열해서 뭐가 맞는 얘긴지 알 수 없었다. 채용 비리, 입시 비리 이런 일이 흔해지다 보니까 정치권에서도 흠결없이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주장은 어찌 보나.
백 - 난 서울시민이었다면 이번에 2번을 뽑았을 거다. 오세훈에게 유리한 정보도 3000명이 보는 SNS에 계속 올렸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김종인(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죄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다. 이재용이 없으면 나라가 안 돌아간다는 식의 주장에도 반대한다.
여 -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이었으니까? 경제에 중요한 사람이니까? 비민주적이다.
윤 - 사면론이 왜 나오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자기들(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것도 아니고 사면하자고 오세훈 뽑은 게 아니잖나. 자신들이 지지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투자활동을 하고 있는지. 가상화폐(코인)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윤 - 평생 벌어도 집을 못 사니까 가상화폐나 주식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인정은 안해주면서 세금 걷고 규제하겠다는데 누가 이해하겠나. 차라리 제도 안으로 넣던지 하나만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
백 - 한때 코인(투자)을 했다. 친구 중엔 도지 코인 2원일 때 들어갔는데 350원으로 뛰어서 억단위로 번 애도 있다. 지금도 하는 친구들 물어보면 다들 '많이 벌어서 집 사겠다'는 생각이다. 규제하면서 세금까지 물리는 건 최악의 발상이다. 불안감 잡아서 코인 안해도 되는 사회로 가야지 불안감은 놔두고 규제하는 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 - 투자는 잘 모른다. 그런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쉽게 돈 벌어 온 사람들은 계속 있었다. 기성세대에겐 부동산이었고 지금 세대에겐 가상화폐라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년 대선에서는 어느 정당을 찍을 것 같나. 이재명(경기지사)·윤석열(전 검찰총장)이 유력한데
윤 - 대선 때도 야당이 이번처럼 이길 것 같진 않다. 사면론 들고 나오는 걸 보면. 민주당이 지난 선거 과정에서 잘못한 거 사과하고 바로잡으면 투표할 것 같다.
이재명은 정치적 통쾌함을 준다.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다. 윤석열은 정권심판 이미지. 두 사람 다 장점이 있다고 느낀다.
여 - 두 사람 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 아니다. 다만 이재명은 기본소득 실험했던 게 의미 있다고 느낀다. 경기도민 친구가 청년수당으로 도움 받은 걸 봤다. 하지만 당이 문제다. 민주당이 부동산 문제, 성폭력 문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난 여전히 다른 당을 찍지 않을까.
백 - 20대 표심은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하기 나름이다.
이재명 때문에 피해 본 친구가 있다. 경기대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 격리 시설 만드는 문제로 쫓겨나다시피 해서 한 동안 갈 데가 없었다. 그때 이 지사가 먼저 보도자료 뿌려서 여론을 조성했는데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석열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게 없다. 굳이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려고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김 - 예전엔 반대정당이 싫어서 혐오투표를 했지만 이제는 내게 도움만 되면 반대정당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재명은 효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 같다. 윤석열은 모르는 사람. 누가 우리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지 보고 뽑겠다.
자신이 바라는 대선 시대정신은
백 - 공정과 불안감 종식.
김 - 계층이동 사다리를 회복할 공정한 기회. 그리고 다양성.
유 - 미래, 그리고 공정. 진보라도 중국과 북한에게 '노'라고 할 사람, 보수라도 미국에 '노'라고 할 사람이 필요하다.
여 - 정치적 허무주의를 깨 줄 수 있는 후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여 - 귀를 잘 기울이고 우리 얘기를 잘 들어달라. 언론은 군가산점, 여성 군입대 이상한 얘기 하면서 논점일탈하는 정치인들에게 편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 - 20대를 더 이상 어린애취급 하지 말아 달라.
윤 - 연기 중에 가장 좋은 연기가 안 보이는 연기라는데 그런 정치 해 줬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 말고 정치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김 - 20대 표가 보수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우리는 '세월호' 세대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같은 나이 대 친구들의 참사를 지켜본 세대다.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어느 쪽에서도 우리에게 안심하거나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대끼리 싸우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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