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으로 길잃은 신기후미래
"에너지전환, 정치구호만 있고 시장신호는 없다"
시장통제 체제하에서 탄소중립 얘기하는 진보의 모순 벗어나야 … 정부와 민간의 명확한 역할 구분 필요
인터뷰 - 조영탁 한밭대학교 교수
18일 조영탁 한밭대 교수(전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생태경제학자인 그는 원전과 석탄의 안정적 축소, 가스발전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경직된 전력산업 및 시장구조에서는 2050 탄소중립이나 에너지전환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력요금에 대한 통제 완화 등 전력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정부와 민간 간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탈탄소사회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 교수와의 인터뷰는 18일 오후 서울 강남 선릉역 인근에서 이뤄졌다.
■탄소중립 과정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 에너지, 전력 수요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다. 탄소중립 2050 시나리오안을 만들 때도 반복됐다.
전력수요 전망은 기온 소득수준 산업활동 등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이상기후로 단기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중장기적으로 미래 경제활동과 산업구조를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로 종전 화석연료가 전력으로 얼마만큼 변화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단기든 중장기든 과거보다 수요예측 불확실성이 커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수급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측 정확성'은 높여야 한다. 하지만 '예측보다 대응이 중요하다'는 주식시장의 격언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는 전력시장 역시 '유연한 대응'이 더 중요해졌다.
수급 불안정시 수요를 줄여주는 절약프로그램이나 가스터빈 양수발전 전력저장장치(ESS)처럼 신속하고 유연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설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발전량 조절이 불가능한 재생에너지가 증가할수록 유연한 자원은 더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나 설비에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전력요금이 정부통제를 받다보니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전력요금과 시장에 대한 통제가 지속되면 누가 그런 프로그램이나 유연한 설비에 참여하고 투자하겠나.
■이런 문제의식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늘 해결이 되지 않는데, 대책이 있나.
전력요금을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요금 문제는 곧바로 정치문제로 비화한다. 이런 체제하에서 불확실성 대응은 물론 에너지전환이나 탄소중립에 가속도가 붙기 어렵다. 높은 비용의 유연한 자원이나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 전력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부가 요금 현실화 얘기를 꺼낼 수 있겠나.
소비자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요금처럼 자신의 소비패턴에 맞는 전력요금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365일 같은 식단으로 식사하는 셈이고 소비자주권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요금체제하에서 어떻게 에너지전환이나 탄소중립에서 제일 중요한 수요자의 에너지절약이나 행위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장기적 해법은 정부가 전력요금을 통제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력시장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요금제를 소비자가 선택하는 체제다. 당장 그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중간단계로 정부와 독립된 규제위원회(가칭)를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규제위원회에서 전력요금을 검토하고 규제하는 식이다. 물론 이 역시 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전력요금이 곧바로 정치문제로 번지는 문제는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력산업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전력이 공공재(public good)란 인식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공공재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공짜로 소비가 가능한 상품을 말한다. 시장거래가 안되기 때문에 정부가 세금으로 전담해서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력은 공공재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소비할 수 없는 일반 상품이다. 다만 일상생활 및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재화다. 필수적인 재화라고 해서 무조건 정부가 전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전력공급이나 판매의 경우 공기업도 일반기업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전력시장은 공기업과 일반기업 등 다양한 성격과 유형의 사업자가 참여하고 소비자는 여러 가지 요금제에서 선택하는 체제가 되어야 수요 절약이나 공급 혁신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복지 강화 △전력요금 및 시장에 대한 공정한 심판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규제라는 고차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일부에서 시장 중심 체제 단점이나 선입견으로 정부주도 및 계획중심의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심판(정부)과 선수(시장)의 역할은 구분해야 한다. 심판과 선수가 구별되지 않는데 경기 공정성과 선수의 경기력 향상이 가능하겠나.
■기존 관성에서 탈피해 급격하게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경우도 있지 않나.
에너지전환에서 정부 역할은 중요하다. 문제는 에너지전환을 전력산업 및 시장 그리고 전력망이라는 '전력체제 전체의 전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만 좁게 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계획상 보급수치만 높이면 에너지전환이 된다고 생각하고 무리한 수치가 등장, 현실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이든 탄소중립이든 전력산업과 시장이 바뀌어야 가능하지 정부계획에 수치가 들어간다고 되지 않는다. 현실은 '정치구호'가 아니라 '시장신호'에 따라 바뀐다.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정치구호와 계획수치는 엄청나게 바뀌는데 전력산업과 시장구조는 요지부동인 것은 그 단적인 증거다.
■최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 에너지전환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다.
(온실가스 감축은 당연히 필요하지만)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과감한 상향은 현시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인 OECD국가와 달리 2.5배(2018년)로 늘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갑자기 유턴하면 위험과 부담이 크다.
둘째,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고 에너지다소비산업이 많다. 획기적인 감축에 필요한 기술들도 2030년 이후에 개발될 예정이어서 수년 내의 감축여력이 적다.
셋째, 전력산업도 이미 석탄설비를 축소하고 가동률 제한 조치를 취한 상태여서 추가적인 감축여력이 많지 않다. 이상의 3가지 이유로 우리나라는 2030년 감축목표 상향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하고 2030년 이후에 감축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것은 여야 혹은 보수진보 간의 정쟁거리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현실문제다. 더구나 탄소중립의 핵심 분야인 전력산업과 시장에 대한 통제체제를 고수하면서 감축목표의 과감한 상향이나 탄소중립을 얘기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학생의 자율학습권은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목표성적은 학칙으로 정하자는 셈이다. 이는 정부계획에 목표수치만 넣으면 현실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연장선상이다.
■에너지 금융 인공지능의 융합 등 예전에는 없던 신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 독려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경직적인 통제 체제하에서는 새로운 융합과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경직적인 통제 체제를 완화하면서 에너지산업 내부에서 전력 가스 열난방 간의 칸막이를 제거해 융합과 혁신을 유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와 다른 분야와의 융합도 보다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다른 나라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에너지 신산업이 활성화되고 많은 일자리도 창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신산업이란 '정치구호'가 등장한 지 십년이 더 지났는데 왜 아직 제자리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