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28 | 'K-금융 길을 묻다'-(3)금융권에서 멀어지는 서민들

법정 최고금리 인하·대출규제 겹치며 저신용자에 직격탄

2021-10-15 11:01:56 게재

금융업권 대부분 다중채무자 증가 … 대부업체는 3년 6개월 만에 45.1% 줄어

올해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낮아졌다. 대출금리가 낮아진 만큼 서민들은 고금리 부담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부업체들이 적자를 이유로 사실상 대출을 중단하면서 저신용자들이 이용하던 제도권 금융의 문이 닫혀 버렸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저신용자들은 결국 초고금리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불법사금융 이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정책서민금융을 확대하고 있지만 시장 기능을 살리면서 정책금융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기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을 시작으로 제2금융권으로 번진 금융당국의 대출규제가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맞물리면서 저신용자들이 점차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고 있다.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업권 전체적으로 다중채무자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부업체를 이용하던 다중채무자들만 급감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이 NICE신용정보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를 이용한 다중채무자수는 올해 6월말 현재 63만6863명으로 2017년말 116만1769명과 비교해 45.1% 감소했다. 대출잔액도 올해 6월말 7조426억원으로 2017년말 13조3183억원과 비교하면 47.1%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은 257만명에서 303만명으로 증가했고, 저축은행도 100만명에서 117만명으로 늘었다. 카드사 다중채무자도 증가했고, 보험과 캐피탈, 상호금융은 다소 줄었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보험과 캐피탈의 경우 차주수는 줄었지만 대출잔액은 오히려 늘었다.

대부업계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진 7월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2018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24%로 인하된 이후 상위 20개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규모는 반토막이 났다.


최고 금리가 24%로 내려가자 일부 대형 대부업체들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 비교적 조달금리가 낮은 대형업체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금리가 20%로 내려가자, 대형 대부업체조차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주면 적자가 날 수 있다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대부업체의 조달금리는 평균 6~7%, 연체율이 7~8% 이상이라는 점과 인건비 등 일반관리비, 임대료, 여기에 중개수수료를 빼면 금리 수준이 연 20% 보다 낮을 경우 수익이 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선 대부금융협회 이사는 "대부업체가 문을 닫고 시장에서 철수하면 저신용자들은 불법사채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며 "서민들을 위한 정책금융은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정도여서 대부업 시장 전체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대출 규제로 고신용·중신용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발을 돌리면서 저신용자들은 더더욱 설 곳이 없게 됐다. 저축은행의 경우 고·중신용자 대출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회사들의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면서 대부업체에 담보대출 쏠림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신용·중신용자들이 대출을 받으려고 오는데, 연체율이 높아서 대출을 해주면 손실이 날 수 있는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단체인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그동안 매월 70건의 대출이 나갔지만 올해 8월 처음으로 100건을 넘었다.

◆정책서민금융 확대하는 정부 = 금융당국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정책서민금융을 확대하고 있다. 정책서민금융상품은 △근로자햇살론 △햇살론17(7월 이후 햇살론15로 변경) △햇살론 유스 △미소금융△사업자햇살론 △새희망홀씨 등이다. 올해 상반기 저소득·저신용자 41만명에게 4조6823억원을 지원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인원은 5.7%, 금액은 11% 상승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정책서민금융 공급 규모를 9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신용평점 20% 이하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햇살론17은 전년 대비 지원 인원이 줄었고 미소금융은 지원 인원과 대출규모 모두 감소했다. 지원대상도 10만명을 넘지 못했다. 신규로 투입되는 자금 규모도 근로자햇살론 1조원, 햇살론유스 1000억원, 안전망 대출Ⅱ 3000억원, 햇살론뱅크 3000억원 정도다.

정책서민금융의 신규 공급 규모를 확대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햇살론 이용자들의 신용등급은 대출시점부터 미이용자에 비해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2년 후부터는 채무조정 신청 확률이 미이용자 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 위원은 "기존의 정책서민금융 공급의 긍적적 효과는 단기에 그쳤으며 대출자가 이후 다시 고금리 대출을 증가시키는 행태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대출공급과 더불어 개별 채무자의 신용개선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부업계 고비용 구조 개선 과제 = 대부업계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 대부시장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6~7%에 달하는 조달금리를 낮춰야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대부업체들이 비교적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8월말 21개사를 '서민금융 우수 대부업자'로 선정했다. 이들 대부업체들은 은행으로부터 차입이 가능해져서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다만 시행 이후 자금조달에 성공한 업체는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한 곳 뿐이다. 하나은행에서 연 3% 후반의 금리로 500억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러시앤캐시의 경우 기존 대부업체들 중에서도 특히 조달금리가 낮았고, OK금융그룹 산하의 OK저축은행과 하나은행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등 기존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자금조달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대부업체들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와함께 온라인 대출중개 플랫폼을 통한 대부상품 중개서비스가 시작되면 대부업체들은 기존의 중개수수료를 1%p 낮출 수 있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조달금리와 중개수수료가 낮아지면 저신용자 대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력적인 '최고금리 정책'과 '민·관 협동 모델' = 일각에서는 법정 최고금리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금융연구원은 "획일적 규제가 아닌 시장별(초단기시장 등), 기관별(예금 수취, 예금 비수취), 상품별(원리금을 분활상환하는 '일수' 상품의 경우 상한금리 탄력적용 등) 차등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서민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단기자금은 발등의 불을 끄는데 쓰이기 때문에 한달 또는 3개월 이내 자금의 경우 금리를 탄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며 "정부의 대출규제 역시 생계형 대출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규제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장기적으로 정책금융의 확대가 시장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정책금융과 시장기능이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상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도 미국의 지역개발금융기관기금(CDFI) 사례를 제시했다. CDFI기금은 서민층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지역개발금융기관으로 지정된 금융기관에 간접적으로 지원, 이들 기관들이 서민금융 취급을 확대하도록 유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민금융지원 대상 적격기관 인증을 받으면 최대 200만달러 한도 내에서 지분투자, 기금지원, 대출, 보조금 등의 형태로 지원이 이뤄진다. 해당 기관은 지원금액과 동일한 금액을 자체자금으로 매칭해서 서민금융에 지원해야한다. 이 때문에 정책금융의 공급이 보다 더 큰 지원 효과를 발생시킨다. CDFI 적격 서민금융기관은 기금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을 금융소외계층의 창업지원, 낙후지역의 주거시설 공급, 저소득자의 금융서비스 제공 등의 용도로 사용한다.

손 전 원장은 "저금리의 복지적 성격이 강한 정책서민금융은 지금보다 시장기능에 보다 충실할 필요가 있다"며 "서민을 상대로 정책금융이나 소액신용을 취급하면서 그동안 축적된 서민금융에 대한 노하우는 최대한 시장에 확산돼 여타 기관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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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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