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스빌둥의 최저임금제
독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기술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고도의 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경제 발전 뒤에는 오랜 중세 길드 전통에서부터 비롯된 도제식 직업훈련인 아우스빌둥제도가 있다. 아우스빌둥을 통해 기업현장 학습에 의한 질 높은 직업훈련이 진행되고 여기에서 배출된 양질의 전문기술인력들이 산업수요에 맞춰 적시적소에 원활하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아우스빌둥이 이러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노사 자율성을 통해 직업훈련시장의 훈련생 수급이 효율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깨질 경우 아우스빌둥에 의한 직업훈련은 오히려 노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고용악화라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2004년 노동시장 개혁 후유증, 최저임금제 도입
독일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충격에 따른 경제침체, 인구·산업구조의 변화, 실업자 증가, 저임금 외국인노동자의 유입 등으로 인해 고용 위기를 맞았다. 이에 2004년 사회보장 축소와 고용 유연성 확대를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고용상황은 개선됐으나 임금격차 심화, 저임금 취약노동자 증가, 노동자의 빈곤화 등 후유증이 발생했다. 이는 직업훈련시장에도 파급돼 저임금 업종들을 중심으로 아우스빌둥을 중단하거나 회피하는 직업훈련생이 늘어나 기술인력 공급 부족, 생산성 저하,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독일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장 개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노사정 협의를 거쳐 2015년에는 일반노동자에 대한 법정 최저임금제를, 2020년에는 아우스빌둥 훈련생에 대한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기술훈련생, 노동자의 1/3 최저임금
아우스빌둥 최저임금제가 별도로 도입된 것은 훈련생의 임금이 근로 보수 외에 훈련생 지원, 인력양성 투자 등 추가적인 요소와 함께 규정돼 노동법이 아닌 직업훈련지원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아우스빌둥 훈련생의 최저임금은 훈련생의 근로 보수와 기초생활비, 기업의 수용능력 등을 고려해 일반노동자 최저임금의 1/3 수준으로 결정되고 훈련기간 동안의 생산성 향상을 반영해 단계적으로 올리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아우스빌둥 최저임금제는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이미 노사간 단체협약 또는 기업의 독자적인 근로계약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 경우에는 이를 우선해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켜 노사 자율로 훈련생의 보수가 보장되도록 했다.
독일은 아우스빌둥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훈련생 임금격차 완화, 훈련생 증가, 훈련생 빈곤율 감소 등과 함께 직업훈련시장이 안정세로 돌아서 아우스빌둥 본래의 기능이 회복되고 있다.
일학습병행법, 별도 훈련생 최저임금 도입해야
독일의 아우스빌둥 최저임금제 도입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이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는 일학습병행제에 속한 직업훈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일반노동자 최저임금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직업훈련생에 대한 별도의 최저임금제는 없어 기업이 직업훈련생을 고용할 경우 일반노동자의 최저임금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훈련생을 고용하는 기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들이 훈련생의 정식 고용을 회피하거나 고용을 피할 수 없는 경우 정부 관련부처에 분산된 다양한 직업훈련 지원조치들을 활용해 변칙적으로 훈련생 임금 부담을 상쇄시키는 왜곡된 상황이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제도는 정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규제의 성격 때문에 직업훈련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훈련생들에게는 최저임금 적용 여부에 따라 임금격차를 심화시켜 훈련생간 상대적인 박탈감과 훈련 회피·중단을 조장하고 있다.
직업훈련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정 직업훈련생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훈련생의 최저임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훈련생 최저임금 수준은 훈련생의 생활비, 인력투자, 훈련비용 등을 고려하고 훈련생의 생산성과 기업의 수용능력을 반영해 결정하되 노사 자율의 임금결정을 우선적으로 보장해 최저임금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데 따른 충격을 예방하고 지속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