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를 찾아서│④ 1980~1990년대 도서관운동

관외대출·개가제·무료입관 … 사서들, 현안에 목소리

2022-02-24 11:43:44 게재

대한도서관연구회, 이동도서관 보급 … 전국사서협회·전국도서관학과학생연합회·도서관운동연구회 등 전문직 단체 시작

"오늘날 우리 공공도서관의 낙후성은 말이 아닙니다. 다만 국민이 그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에 방치되고 있을 뿐입니다. (중략) 근대의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 대중교육기관으로서 정보봉사기관으로서 그리고 문화센터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외대출은 공공도서관의 생명입니다. 학생공부방은 도서관이 아니라 독서실입니다. (중략)

모든 분야에서 선진의 문턱에 도전하고 있는 오늘날 유독 공공도서관만은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사회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공공도서관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도서관인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습니다. 당국은 물론 사회 지도층과 지식층에게 공공도서관의 현실과 개선책을 알리고 일반 국민에게 이해받는 일이 급선무인 줄 압니다. (하략)" (1984년 대한도서관연구회 '오늘의 도서관' 창간호 '발간사' 중)

일본 자동차도서관 제작 공장에서 엄대섭 선생. 그는 1960년대 마을문고 운동을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르러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조직, 공공도서관 운동을 펼쳤다. 사진 한국도서관사연구회 제공


1980년대 공공도서관은 공공도서관 본래 기능인 대출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공부방 기능에 그치고 있었다. 이에 관외대출 허용, 폐가제(閉架制, 열람자에게 서가를 공개하지 않고 일정한 절차에 의해 책을 열람시키는 도서관 운영 제도)에서 개가제(開架制, 열람자에게 서가를 공개해 열람시키는 도서관 운영 제도)로의 전환, 입관료(도서관에 입장할 때 내는 요금) 폐지 등 공공도서관 본래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운동과 함께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서관법·정책 정비 운동이 일어났다.

1960년~1970년대 마을문고 운동에 헌신했던 엄대섭 선생은 1980년대에 이르러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조직해 시민들에게 열린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운동에 주력했다. 비슷한 시기, 전국도서관학과학생연합회·전국사서협회·도서관운동연구회 등 현장 사서와 도서관학과(현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전문직 도서관운동이 나타났다.

◆'오늘의 도서관' 각지에 배포 = 대한도서관연구회는 개가제·관외대출·입관료 폐지 운동을 전면적으로 벌였다.

당시 공공도서관은 대체로 서가를 개방하지 않고 관외대출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학생들이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는 공부방 기능에 치중했다.

1985년 '오늘의 도서관' 4호에서 엄대섭 선생은 당시 공공도서관 상황에 대해 "개관시간 중에도 서고에 자물쇠를 채워둔다" "열람용 목록카드가 없다" "관외대출을 하지 않는다" 등으로 묘사했다.

이어 그는 "재정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공공도서관이 이토록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원인은 무엇일까?"라면서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꼭 같은 조건에서 실시, 성공하고 있는 몇몇 도서관을 본받는 데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대한도서관연구회는 입관료 폐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입관료는 1963년 제정된 도서관법에 명시된 도서관 사용료 규정에 근거했다. 지금의 도서관법에는 폐지된 규정이다.

이에 따라 당시 도서관 이용자들은 50원 혹은 100원의 입관료를 내야 했다. 입관료 폐지 운동이 계속되자 1983년 2월 국립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공공도서관들은 입관료 폐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와 함께 대한도서관연구회는 이동도서관 보급에 나섰다.

이동도서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찾아가 책을 열람하고 대출하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경험을 주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했다.

대한도서관연구회는 이동도서관 전용차량을 개발, 운영했다. 이동도서관 보급운동에는 MBC 등 언론사들과 정부 부처도 함께 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에서 대한도서관연구회는 공공도서관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전국 공공도서관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벌였다. 또 '오늘의 도서관'을 격월간으로 발간해 당시 공공도서관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오늘의 도서관'은 전국 도서관은 물론, 정부 부처, 언론사 등 6000여곳에 무료로 배포됐다.

'한국 공공도서관 운동사'(이연옥/한국도서관협회)는 대한도서관연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도서관운동은 당시 도서관의 상황과 단계에 맞는 아주 구체적이면서 실천적 운동으로서 도서관현장을 근대화하는 실질적 성과를 남겼다. 대한도서관연구회는 1980년대 공공도서관 운동의 거점이며 도서관운영의 근대화를 이끌어간 핵심조직으로 존재한다."

17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용훈 초대 전국사서협회 회장. 전국사서협회 '도서관자료집' '전국사서협회 소식', 도서관운동연구회가 펴낸 '시민과 도서관'과 함께한 모습. 사진 이의종


◆"국민과 함께 하는 도서관 선언" = 이와 비슷한 시기, 현장 사서들이 도서관 문제와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전문직 도서관운동이 시작됐다.

1989년 공공도서관의 정책 소관부서 이관 문제가 논란이 되자 현장 사서들은 도서관 현안에서 현장 사서들의 의견이 소외되는 데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에 현장 사서들은 각 지역에 분회를 가진 전국적 규모의 사서직 전문단체인 전국사서협회를 결성하고 이에 대응했다.

1990년 전국사서협회는 창립선언문에서 "오천년 문화민족의 위대한 업적을 보존, 계승하며 나아가 새로운 21세기 정보사회의 주역이 돼야 할 우리 한국의 모든 사서들은 오늘 전국사서협회의 창립을 선언한다"면서 "이는 국민과 함께 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사서들이 주체로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주와 자유, 평등에 기초한 도서관문화를 건설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만인 앞에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사서협회는 △회원대상 세미나 △'전국사서협회 소식' '공공도서관 자료집' 등 자료 발간 △도서관법안 관련활동 등을 했다. 온라인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 회원들에게 '전국사서협회 통신'을 발송하고 도서관과 관련한 각종 현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갔다. 이에 도서관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많은 현장 사서들의 지지를 받았다.

◆도서관 중심으로 시민과 소통 = 각 대학 도서관학과 학생들도 운동에 함께했다. 1986년 서울 5개 대학(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 도서관학과가 모여 도서관학과연합회를 결성했고 1988년 전국 대학으로 확대돼 전국도서관학과학생연합회(전도련)가 창립됐다.

전도련은 '공공도서관 실태조사' '사서의식 조사' 등을 하면서 예비사서로서 도서관 상황과 각종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나갔다. 이는 전국사서협회가 결성되는 토대가 됐다.

1990년대 도서관운동연구회도 현장 사서들이 중심이 돼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직 중 하나다. 이들은 '시민과 도서관'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면서 각종 도서관 정책과 현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며 도서관 현안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전국사서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용훈 전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은 "해방 이후 도서관법 제정 노력 등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도서관 현장에서 운동성이 줄어들었다"면서 "도서관 정책 소관부서 이관 문제가 생기면서 우리도 이제 한번 나서서 도서관을 개혁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전국사서협회 창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서들의 모임이 많은데 전국사서협회가 지금의 많은 사서들 모임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조직으로 생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를 찾아서" 연재기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송현경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