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김경범 교수의 공공장(Public Factory)
수능 '문·이과 유불리 논란' 부질없는 짓
지난 1월 11일 교육부 장관이 나서서 수능에서 문과생이 불리한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하면서 서울 소재 12개 대학 입학처장에게 대책을 주문했다.
장관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일회성 행사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부와 대학이 정말로 대책을 만들려고 한다면 간신히 봉합한 현 수능 체제의 온갖 문제들이 쏟아져나오게 된다.
정부나 대학이 어떤 대책을 만들더라도 이는 또 다른 왜곡과 꼬임을 낳고 결과적으로 현 수능 체제의 복잡함과 불투명성만 더할 뿐이다. 뭔가 새로운 대책을 찾지 말고 여기서 멈춰야 한다.
수능 미세조정? 혼란만 키우다 사라질 것
설령 새로운 대책이 나오더라도 당장 시행할 수 없다. 학생에게 주는 영향 정도에 따라서 그 대책은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2027학년에 적용될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변화라면 2026학년 대학 입시에 적용할 수 있으나 올해 고2 학생이 대학에 가는 2025학년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고2는 벌써 (비록 존재하지는 않지만) 문·이과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른바 SKY대학이 아닌 어떤 대학에서 문과 학생이 자연 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수능 응시 지정 영역을 없애더라도 실질적인 영향력은 사실상 없다.
더구나 이미 새로운 2028학년 수능 체제와 대입 제도가 논의되고 있고 대입 제도의 큰 변화를 가져올 내신 전면 절대평가 여부와 고교 체제도 2월 말에 발표한다고 정부는 예고했다.
이 와중에 2022학년부터 시작된 현 수능 체제를 정부가 다시 손본다면 이는 매우 단기적인 임시방편에 그치고 학생들과 학교 현장의 혼란만 더 키우다가 곧 사라질 대책이 되고 만다. 대학들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수능 응시 지정 영역 폐지 등을 고려할 수 있겠으나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이과 폐지는 시대적 당위이자 정부 정책의 일관된 흐름이며 수능에서 수학을 더 잘하는 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공정하다.
이 상황은 새로운 수능 체제를 만들어 해결해야지 시작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그리고 어차피 2028학년 대입에서는 없어질 현 수능을 '미세조정'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정부가 대책을 만들려고 한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과거 수능처럼 문·이과를 구분해 수학 응시 영역을 설정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 결정은 지금까지 진행된 교육과정에서의 문·이과 폐지와 학생의 교과 선택권 확대, 교육과정과 연동된 수능 체제라는 가치와 명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배반하는 결정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나서서 현재의 수능 체제를 고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수학 공통 과목 문항의 난도를 낮추고 선택 과목 사이의 난도를 조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점수 산출 방식을 다시 바꾸면 어떨까. 뭔가를 했다는 생색을 낼 수는 있지만 사실상 효과가 없다.
차이는 줄일 수 있어도 높은 점수를 낮추고 낮은 점수를 높일 방법은 없다. 정부가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학생을 골라 뽑을 수 있는 대학이라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수능 '미적분'을 응시하지 않아도 대학에서 공대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대학이 문과생을 위한 기초수학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학생이 힘들어도 꾸준히 따라갈 의지가 있다면 그렇다. 하지만 공대는 '미적분'을 이수한 학생을 선호한다. 지식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 사회 경영대학 등 인문 계열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적분'을 이수하지 않아도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적분'을 이수한 학생을 일부러 내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수능에서 '미적분'을 이수해 높은 성적을 얻은 학생에게는 더 넓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결할 방법 없는 사안, 새 수능 체제에 동력 집중해야
공통 과목으로 인해 낮은 점수를 받은 문과 학생은 소수의 대학에 가려는 학생으로 한정되는데 그 소수의 대학은 굳이 수능 문·이과 유불리를 해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과 학생이 인문 계열 대학으로 넘어오는 것을 금지하거나 감점할 수도 없다.
인문 계열 대학에 들어온 이과 학생이 대학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도 그 학생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이 소수의 대학이 수능 응시 영역 기준을 풀어서 문과 학생이 의대와 공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수능 유불리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그 소수의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낮아서 실제로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대학이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실효가 없다.
교육부가 예산 지원을 내걸고 대학에 뭔가 대책을 만들라고 요구한다면 대학은 아무 실효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응시 영역 기준을 풀 수는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차마 웃을 수 없는 '몸 개그'를 보게 될 것이다.
수능 문·이과 유불리 이슈는 해결할 필요도 없고 해결할 방법도 없는 사안이다. 우리는 이 문제보다 '새로운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된 새로운 수능 체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