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아진 서민금융, 갈 곳 잃은 금융취약층 | ② '법정 최고금리 인하' 후폭풍

"2금융권 조달금리·연체율 상승, 100만명 이상 대출 못받아"

2023-07-06 10:45:46 게재

저금리 시기에 연 20%로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 상한' … 금리 올라가도 변동없어, 저신용자 자금조달 막혀

시장금리 변화에 연동한 '최고금리 탄력 적용' 필요성 커져 … '고정형 최고금리' EU 회원국 중 5개국에 불과

"2금융권의 조달금리가 지난해말 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2021년말 2금융권을 이용했던 100만명 가량의 대출자가 더 이상 2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5일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채연구팀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금리 상승과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2금융권의 연체율 상승이 저신용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팀장은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최고금리 운용방안보고서'에서 2금융권의 조달금리가 2021년말(2.37%, 카드채 3년물) 보다 약 2%p 상승하면 2021년말 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약 69만2000명이 더 이상 2금융권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p 상승할 경우 111만3000명이 2금융권에서 밀려나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연말 6% 이상으로 치솟았던 2금융권 조달금리는 현재 4% 중반으로 하락했다. 따라서 김 팀장의 연구 결과를 적용하면 약 70만명 정도가 2금융권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하지만 연체율 상승이 또 다른 변수다. 김 팀장은 "단순히 조달금리 상승 요인만을 놓고 분석한 결과인데, 연체율 상승이 2금융권의 대출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됐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100만명 이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2금융권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신용대출 영업에 소극적이다. 대부업체들은 조달금리가 10%대로 상승하면서 신규 영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2금융권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어서 대부업체 이용자가 증가해야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대부업체 이용자수는 해마다 줄고 있어서 2금융권에서 밀려나는 순간 제도권 금융 밖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대부업 이용자수는 지난해말 98만9000명으로 지난해 6월말(106만4000명) 대비 7만5000명(7.0%) 감소했다. 2021년말 112만명과 비교하면 13만1000명(11.6%) 줄었다.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 금리 상승기에 치명타 = 2금융권에서 밀려난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도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영향이 크다. 조달금리가 상승하고 연체율이 11.5%(대형 25개사)로 급격히 증가하면서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인 20%를 받아도 손실이 나기 때문에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대부업법에서 정한 최고금리는 연 27.9% 이하 이지만 실제로는 시행령을 통해 연 20% 이하로 제한돼 있다. 2002년 10월부터 2007년 10월 전까지 법정 최고금리는 연 66%였지만, 이후 49% → 39% → 34.9% → 27.9% → 24% → 20%로 꾸준히 낮아졌다.

2012년 3.0% 였던 기준금리는 이후 계속 하락해 중간에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2020년 5월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인 0.5%까지 떨어졌다. 법정 최고금리가 20% 이하로 낮아진 시점은 기준금리 역시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시기인 2021년 7월부터다. 저금리 시대에 법정 최고금리가 너무 높다는 여론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달 후부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올해 1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5%까지 올린 이후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8개월 동안 기준금리는 무려 3%p 상승했다. 연 24%에서 20%로 하락한 법정 최고금리는 기준금리의 급격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변동이 없다.

경영 여건상 금리를 연 20% 이상으로 올려야만 영업이 가능한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 상한' 규제에 발목이 묶였다.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가 금리 상승기에 저신용자의 대출 통로를 막아버린 것이다.

◆유럽 다수 국가 '변동형 최고금리제', 미국 '소액대출 금리' 높아 = 전문가들은 법정 최고금리를 고정형이 아니라 시장금리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시장 연동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시장금리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방식이다.

EU(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국가별로 다양한 최고금리 규제 방식을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채택하는 국가는 5곳에 불과하다. 13개 국가는 변동형 최고금리제도, 9개 국가는 법정 최고금리 규제가 없다.

엄격한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한 국가로 분류되는 프랑스는 이전 분기의 시장 평균금리의 1.33배를 최고금리 상한으로 두고 있다. 신용 종류와 금액에 따라 상한을 12개 범주로 구분해 적용하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2분기 기준 대출금액이 3000유로 이하인 경우 평균 대출금리는 15.83%, 최고금리는 21.11%였다. 대출금이 3000유로 초과, 6000유로 미만은 평균금리가 7.40%, 최고금리는 9.87%로 나타났다. 600유로 이하의 소액 대출은 최고금리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독일은 법률로 최고금리를 정하지 않고 법원 판례를 통해 최고금리를 규제하고 있다. 1990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평균 시장금리의 두 배 또는 평균 시장금리에 연 12%를 더한 이율을 초과하면 고리의 객관적 요건을 충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상한을 넘는 계약에 대해서는 무효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 정부 차원의 금리 규제는 없고 주별로 법적 이자율을 제한하고 있다. 대출규모와 만기별 금리 상한이 다르게 적용되고 대출규모가 클수록 금리 상한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다만 소액대부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페이데이론(Payday loan, 일명 '월급날 대출'로 500달러 미만 단기대출)은 금리 상한이 높다. 주별로 300달러, 14일 만기 기준으로 연이율을 산정한 결과 17개주와 워싱턴 DC에서는 페이데이론이 금지되거나 이자 상한이 연 36% 미만이다. 9개주에서는 이자 상한이 연 100~400%, 23개주에서는 연 400% 가량 된다. 500달러 이상 대출에 대해 13개주의 법정 최고금리는 연 36~60%, 13개는 연 60% 초과, 3개주는 대출금리가 폭리적이지 않으면 허용되고, 2개주는 금리 상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인 연 20% 이하의 법정 최고금리 상한을 두고 있다. 대출금액에 따라 최고금리에 차등을 두는 방식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10만엔 이하는 20% 이하, 10만~100만엔 이하는 18%, 100만엔 초과에 대해서는 15%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 현재 기준금리는 -0.10%에 불과하다. 기준금리가 3.5%로 상승한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금융당국, 시행령 개정으로 27.9% 까지 변동 가능 = 최 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급격히 인상되는 등 국내외 경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탄력적이고 유연한 최고금리 규제방안을 검토해볼 시점"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우리 대부업법은 일률적으로 최고금리를 규정·적용하고 있는데, 대출 금액이나 성격에 따라 규제를 세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고정형에서 '변동형 최고금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금융당국이 연 27.9%까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 현행 대부업법은 최고금리를 27.9% 이하의 범위에서 시행령이 정한 이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최고금리를 20%로 낮췄다. 따라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시장 평균금리에 따라 최고금리가 변동될 수 있도록 하면 27.9%까지 상한선이 올라갈 수 있다.

김미루 팀장은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시장 연동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도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일반적인 신용대출 만기와 유사한 통안증권(1년물) 또는 국고채(2년물)의 금리를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의 벤치마크 금리로 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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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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