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감정을 배제한 의사결정이 가능할까

2023-07-18 11:00:00 게재
전지원 가톨릭의대, 뇌과학

중요한 의사결정시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적어도 성인이라면 다른 외부 요인들의 방해나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이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만큼은 올바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에서 정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뇌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이러한 생각은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실생활의 어려운 의사결정 상황에는 도덕적 판단이 요구되곤 한다. 전통적으로는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 의사결정에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인지적 과정과 감정적 과정이 모두 중요하고 때로는 상호경쟁적인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보인다.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뇌 활동을 관찰한 여러 연구들에서는 정서 처리 정도에 따라 도덕적 딜레마를 판단하는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도덕적 판단은 자신이 관여된 것과 관여되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개입된 도덕적 판단은 다수의 생존이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직접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개입해 개인을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물론 개인의 개입 여부에 대한 판단에는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보통 자신과 관련된 도덕적 판단 조건에서는 의사결정시 지연된 행동반응이 나타났는데 이는 정서적 간섭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의 행동반응에 이러한 간섭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개인과 관련된 도덕적 딜레마에 의해 생성된 감정적 반응이 커질수록 도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판단에는 이성과 감정 모두 작용

미국의 뇌신경과학자 조슈아 그린과 조나단 코헨의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자신과 관련이 없거나 덜 관련된 도덕적 판단에는 순수한 인지처리 과정과 관련된 배측 전전두엽에서 상대적으로 더 크게 활성화됐다. 그러나 자신이 관여되는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사람들은 정서 및 사회적 인지와 관련된 뇌 영역인 내측 전전두엽에서 더 많은 활성화를 보였다.


전두엽 안쪽의 아랫부분은 정서적 판단 시 활성화되는 대표적인 영역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격적인 측면을 형성하는 부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48년 25살의 젊은 철도 건설현장관리자 피이너스 게이지는 철로 폭발물 작업을 하다가 쇠막대기가 왼쪽 광대뼈 아래에서 두개골 앞쪽으로 관통하는 큰 사고를 당한다. 끔찍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사고 직후 그는 의식이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뇌에 박힌 뼈조각을 제거하는 치료과정에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정신적 신체적 기능이 잘 회복되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게이지의 성격이 사고 이후 극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 게이지는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하며, 불손한 태도에 욕설을 사용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쇠막대에 의한 게이지의 전두엽의 상해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요한 정서조절에 손실을 가져왔다. 가장 많은 손상이 있었던 영역은 안와전두엽으로 정서적 판단에 관여하는 복내측전전두엽과 맞닿아 있다. 게이지의 사고는 사회적 인지와 의사결정 상황에서 내측 전두엽의 역할이 개인의 성격과 행동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첫번째 증거를 제공했다.

이후 연구자들은 게이지의 부상을 재구성하고 손상된 영역을 추정했다. UCLA뇌영상 연구팀은 쇠막대기의 경로에 대한 새로운 디지털 모델을 제시했는데, 전두엽에서 대뇌피질의 4%와 전체 백질의 11% 이상이 손상되었으며, 정서를 조절하는 것과 관련된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의 연결들이 손상되었음을 나타냈다.

마이클 코니그스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에서 사회적 감정을 정상적으로 생성하는 데 필요한 뇌 영역인 복내측전전두피질에 국소적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공리주의적' 판단을 내리는 패턴, 즉 정서적으로 매우 불편한 행동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강력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는 복내측전전두엽이 자신이 개입된 도덕적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정서적 처리가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전 연구를 뒷받침한다.

또한 공리주의적 판단을 위해 개인과 관련된 도덕적 위반을 하게 되는 경우, 예를 들어 기차 선로 위에 있는 다섯명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을 단행할지 결정해야하는 풋브릿지 딜레마(Footbridge dilemma) 상황에서는 갈등을 탐지하고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과 함께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된다. 우리 뇌의 전대상피질은 다양한 갈등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의사결정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보다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갈등을 주시한다. 갈등상황에서 전대상피질의 활성화는 우리 뇌에서 인지적인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정서적 반응에 반하는 공리주의적 판단, 즉 정서적 불편감을 무릅쓰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판단을 할 때 정서조절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 된다면, 이러한 판단에 대한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경우 뇌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서적 불편감을 무릅쓴 공리주의적 판단이 적절하다고 평가하는 경우에는 부적절하다고 평가하는 경우에 비해 인지처리와 관련이 있는 배외측전전두엽의 활성화가 높아진다.

어떤 판단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직면하는 어려운 판단에는 감정적 요소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 어렵다. 삶은 다채롭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하며 밝음은 어두움을 수반한다.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패턴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추측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판단을 내리든 끝까지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다수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위험을 감수하는 판단을 내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