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경제성장과 산업구조변환, 그리고 한국경제의 길

2023-09-15 12:06:39 게재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

최근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연이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0.2%p 상향조정한 반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4%로 낮췄는데 수출부진, 물가급등, 경기둔화 불안감으로 인한 소비 및 투자심리 악화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위기관리와 급속한 경기회복을 이루었던 한국경제가 자국우선주의 중심의 탈세계화(de-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염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경기회복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출주도산업 대상의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정책효과를 기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거 위기 때마다 현실을 직시하고 적절한 성장전략을 마련해 온 것처럼 현재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적·구조적 원인과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변화가 산업구조 변화를 이끈 요인

경제학에서 새로 주목받는 연구분야 중 하나가 산업구조변환(structural transformation)과 경제성장과의 관계다. 제시된 연구결과들은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상황과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산업구조는 생산 지출 고용 등의 관점에서 각 산업이 차지하는 경제활동 비중으로 이를 통해 한 나라의 경제발전상태와 생산력 구조를 파악하며, 산업구조정책을 통해 경제발전 고용안정 국제수지개선을 꾀하는 데 활용된다.

국제표준산업분류에 따른 대표적인 산업분류는 농림수산업, 광공업(제조업), 서비스업이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 및 발전단계에 따라 경제활동 비중이 주요 산업간 재분배되며 구조적으로 변환되어 왔는데 이를 산업구조변환(structural transformation)이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쿠즈네츠에 의하면 산업구조변환은 경제성장 및 발전과정에서 장기적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이며, 경제활동의 산업간 재분배가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경우 정부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구증가 기술진보 등 다양한 산업구조변환의 원인이 제기되었지만, 소득변화로 인한 경제활동패턴의 변화가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증분석연구에서 경제발전 정도는 주로 1인당소득으로 측정하고, 각 산업의 경제활동 비중은 생산측면에서는 고용 부가가치, 그리고 지출측면에서는 소비지출 등을 주로 활용해 경제발전과 산업구조와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1인당소득이 증가할수록 농업부문의 경제활동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서비스업의 고용 부가가치 소비지출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주요국의 장기데이터를 이용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농업비중은 1인당소득이 1000달러 이하인 경우 80% 이상이고, 2만달러 정도가 되면 전체 경제활동의 5% 이하로 낮아진다. 반면 서비스업의 경우 각 소득수준별로 15%에서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도시화 기계화 등으로 인해 농업부문의 경제활동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지만,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주거 교육 보건 외식 여행 교통 금융 등 가정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경제활동을 서비스 구매로 대체하든가 고등교육을 통한 노동생산성 증가로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부문에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기회가 확대되면서 서비스업 비중이 꾸준히 느는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제조업 경제활동 비중은 다른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20%의 낮은 제조업 경제활동 비중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격히 증가하다가 1만달러 정도 소득수준에 이르면 40~50%로 정점을 찍고, 생활수준이 더욱 높아지면 서비스업의 고용과 지출이 급격하게 늘면서 제조업 비중은 다시 20~30% 수준으로 감소하는 역U자 형태를 나타낸다.

경제발전과 산업구조변환의 이 같은 특징적 관계는 경제발전단계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견되는데, 관련연구에 따르면 유일한 예외로서 한국을 지목한다. [그림]은 주요 산업별 경제활동비중과 로그로 표현한 1인당소득을 보여주는데,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발전과정에서 농업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서비스업 비중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체 경제활동에서 제조업 비중은 역U자 형태가 아니라 일정 소득수준을 넘어선 고도화된 발전단계에서도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서비스업 비중은 비슷한 소득을 가진 국가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20%p 이상 낮다. 오히려 최근 제조업 비중의 증가추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서비스업 비중의 추세가 감소 또는 둔화되는 모습이다.

제조업 부문으로 과도하게 경제활동이 재분배된 주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제조업내 세부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몇몇 특정 산업이 제조업 비중의 추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된다. 금속, 화학물질·화학제품, 전자, 전기제품, 자동차 및 운송장비 제조업 부문의 비중은 경제발전 초기단계부터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인다. 특히 2만달러 이상 소득수준에서 수출 중심 제조업 분야의 비중이 급증한다. 미국 일본 유럽국가와 같이 한국보다 먼저 경제발전과정을 경험했던 국가들의 경우 비슷한 소득수준에서 제조업내 모든 산업부분의 비중이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 것과 정반대다.

세계화시대 성장전략 한계에 봉착

물론 경제발전단계에 따른 한국의 산업구조의 변화가 다른 선진국들과 반드시 같아야 할 당위성은 없다. 오히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수출주도형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공업화를 추구해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성취했으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제조업 부문의 세계적 경쟁력과 첨단산업에서의 압도적인 기술수준은 그간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국경이 사라지고 국제규제와 다자기구들이 세계시장질서를 지배하는 세계화 시대에서는 제조업 육성을 통한 수출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성장전략이었으며, 한국은 이를 가장 충실히 실천했던 국가였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전세계가 장기적 경기침체에 빠지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내수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사상 유례없는 국제무역의 감소추세가 본격화되는 이른바 탈세계화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중상주의 사조가 전세계적으로 부활하며 국가 간의 경제문제로부터 자국의 경제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 근린궁핍화 정책을 통해 자국의 경제목표를 달성하려는 일련의 시도는 탈세계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경제환경의 변화가 고착화된다면 한국과 같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전략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전세계적인 경기회복 기조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거둘 수 없는 근본적인 요인인 셈이다. 이제 정부 기업 학계 모두 선별적 산업지원정책을 통해 수출산업에 집중했던 불균형 성장방식에 대한 신화를 버리고, 한국경제의 구조적 체질개선과 자생적 성장동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