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①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여소야대·4당(13대·20대 국회) 체제'때 5공 청문회·박근혜 탄핵 해냈다"
"대통령·국회의장도 다당제가 수월 … 교섭단체 3개 이상"
"탄핵·특검·거부권 등 정치쟁점 살아날수록 민생쟁점 뒷전"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후퇴한 시기, 정치민주화 시급"
"윤석열·이재명, 통합·공존·다양성 등 '시대정신'에 역행"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는 한국 정치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시간으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가치나 진보적인 대의명분은 실종되거나 소진돼버린 상태"라며 "언론도, 한때 존경받았던 종교인들도 진영에 포섭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거대양당의 독과점 정치와 팬덤에 의존하는 정당 문화를 직격했다. "대기업들의 독과점은 그렇게 강도높게 지적하면서 막상 자신들의 독과점 문제는 그대로 놔둔다"며 "지금은 정치 민주화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정치 주류 그룹에서 팬덤에 의존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팬덤에 당의 주류가 의존하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된다"고도 했다. 결국 이러한 정치 행태는 "정치적인 쟁점을 부각시켜 버려 민생 의제가 살아나기 어렵"게 만드는 꼴이 됐다.
김 교수는 "국회가 살아난 것은 '여소야대'일 때였고 13대와 20대 4당 체제에서 5공 청문회와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고 환기시키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에게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더 좋다"고 했다. 그는 "국회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정당 중심 기호제를 바꿔 양당 기득권을 없애야 한다"며 "통합의 방식은 공존, 공생, 다양성 등의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리더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18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 국회입법조사처장 등을 지냈다. '전환시대의 국가체제와 정치개혁' '새로운 리더십 분열에서 소통으로' '포퓰리즘의 정치전쟁, 종교화된 진영정치' 등의 저서가 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내일신문 본사 1층 카페에서 진행했다.
■비례대표제 선출방식과 관련해 병립형과 연동형을 놓고 논란이 많다.
연동형비례대표가 병립형에 비해 더 민심을 반영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민주적인 제도라는 정합성도 없다. 세계 39개국 중에서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32개 국가가 왜 병립형을 택했겠나. 나머지 독일 등 7개 국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은 100% 비례대표제 역사를 배경으로 소선거구제를 혼합한 것이다. 우리와는 정반대 배경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가 소선거구제의 사표를 해결하려는 것인데 연동형을 도입한다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구의 사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소수 정당이라든가 신생 정당이 살아날 틈이 없다는 게 소선거구제의 딜레마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그 정도는 양해할 수 있다. 연동형이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적합성이 없는 것이지만 대기업들이 골목 상권을 조금 할당해 준다는 차원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소수정당이나 신생정당의 사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거대양당의 기득권, 특혜를 없애는 게 핵심이다. 기호투표제를 개선해야 한다.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거대정당 중심으로 기호를 매기면 인물이 아닌 정당만 보고 찍게 된다. 당연히 거대양당에 유리하다. 정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찍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요즘 말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기호를 무작위로 매기면 무작정 찍지 않고 인물을 보게 될 것이다.
■민생이 외면 받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적인 사안을 부각시켜 버리면 민생 의제가 살아나기 어렵다. 정치적인 쟁점을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민생 쪽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측의 민생 부분은 어떻게든 돌아간다. 여야가 얼마나 민생을 주목받게 하느냐가 과제다. '민생'은 여야 정당들의 문제다. '87년 이후 민주화'는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의 자율적 기능 회복'을 특징으로 한다. 지금은 민주화 이후에 가장 후퇴한 시기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민주화 점수 매기는 지표 중에 하나로 '의회가 얼마나 자율성을 가지고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척도가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8단계 떨어졌다. 하락요인은 진영 정치 때문이었다.
■적극지지층, 팬덤의 압박으로 민주당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 같다.
'독주'가 성공한 게 있나. 입법 독주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쉽게 했다. 타협과 절충점을 찾는 게 아니라 세게 밀어 붙였다. '올 오어 나씽'이 되면 아무것도 진전이 안 된다. 노무현정부 시기에 국가보안법 개정시도가 있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박근혜 대표도 고무찬양 7조 부분에 대한 수정에 동의했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보안법을 통째로 없애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여당이 '수정'에서 '폐기'로 돌아섰다.
■팬덤정치가 과거에도 있지 않았나.
어느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이라면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 팬덤은 경쟁자나 상태에 배타적일뿐만 아니라 공격적이다. 연예인 팬덤들이 적대적 행동을 한다면 연예인들은 극도로 자제시킬 것이다.
■팬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 주류 그룹에서 팬덤에 의존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SNS와 결합해 국민 다수의 의견이 아니면서도 세몰이를 하는 포퓰리즘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 당의 주류가 팬덤에 의존하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된다. '빠시즘'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유사 종교화'된 현상이다. 마치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있었던 파시즘 동원과 거의 비슷하다. 당시에도 대중들에게 내재된 심리적인 문제를 동원하는 리더십의 문제가 지적됐다. 민주화 이후 가치나 진보적인 대의명분은 실종되거나 소진돼버린 상태다. SNS라는 도구를 가지고 소수에 의해 다수가 장악돼 있다. 과거 로마 시대 때도 포퓰리즘을 동원한 쪽은 원로원이 아닌 황제였고 이 황제는 백성 전체보다는 홍위병과 같은 우호적인 세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치 양극화가 강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언론도 정치 진영화에 빠져 있다. 한때 존경받았던 종교인들도 진영에 포섭돼 있다. 2년 전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에서 세계 경제 선진국 17개 국가의 다양성과 갈등을 조사했는데 한국과 미국에서 정치적인 소속감에 따른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응답한 게 90%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독과점 체제를 깨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들의 독과점은 그렇게 강도높게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독과점 문제는 그대로 놔둔다. 경제 영역의 불공정 기준으로 현재 정당 독과점을 한번 보자. 말도 안 되는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 거다. 담합으로 경쟁에서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다. 소선거구제가 승자독식을 더 극단화시키고 있다. 정치 민주화를 이뤄졌으니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정치 민주화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대통령제에서 과연 거대 양당구조가 깨질 수 있느냐, 다당제가 적절하냐는 얘기도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다. 대통령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당제의 경향이 생기는 것이지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양당제가 적합하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대통령 입장에서 다당제가 더 좋을 수 있다. 다양한 세력들이 대통령한테 의견을 말하고 대통령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국회의장 역시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국회를 운영하기 편하다. 양당이 서로 협력을 잘하면 편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당으로 있을 때 조율 역할도 많아지고 한쪽이 오기를 부릴 수도 없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당이 다수일 때 국회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국회가 살아난 것은 여소야대가 된 뒤였다. 1988년 이후 13대 초반에는 민정당 평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4당 체제, '3김 1노' 상황에서 5공 청문회를 했고 2016년 총선 이후 20대땐 국민의당이 등장, 3당 체제가 됐고 유승민의 바른정당까지 더해진 4당 체제에서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현재도 '여소야대'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민주화 이후에 최악의 국회가 되고 있다. 민주당 1당만으로 '야대'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중재하는 정당도 없다.
■지향해야 하는 곳은 다당제인가.
최소한 교섭단체 3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섭단체 기준을 현재 의원 20명에서 15명 정도로 낮출 필요가 있다. 양당 독과점을 만든 가장 큰 것은 기호 순번제와 정치 자금이다. 정당이 아닌 이름 위주로 기호를 바꿔야 한다. 또 정치 자금은 정당에게 n분의 1로 골고루 나눠야 된다. 선거 자금의 공영제를 확대해야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통합의 원리'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통합의 방식은 공존, 다양성 등의 방향으로 가야한다. 생물도 발달하면 할수록 다양성이 확대되는 것 아니겠나. 다양성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리더십은 이러한 시대정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치인의 덕목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가치는 공생 원리를 찾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포용성 있고 배려적인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가' 이런 기준으로 보면 어떨까. '책임의식이 얼마나 있는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독선이 아닌 겸손한 의식을 갖고 있나', '정치적인 자질과 판단 능력이 얼마나 있나' 등의 기준으로 정치인, 정당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