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② 이원정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총괄팀장

"정답 주장보다 해답 만들어야 … 민생이 데코레이션인가"

2023-12-11 10:41:59 게재

"'민생중시 정당'이라고 말할 때 활용하는 '데코레이션 위원회'"

"86세대, 민주주의·통일 관심 … 민생문제에 절박함 떨어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여의도 정치권에서 민생에 가장 가까이 있는 조직이다. 지난 2013년 5월에 남양유업 대리점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져 벌써 10년을 넘게 '을'과 함께 부대끼는 여정을 이어왔다. 10년 동안 줄곧 총괄팀장을 맡아온 이원정 국장은 당직자-의원-보좌진-시민단체와 협업을 통해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최전선에 있었다. 이 국장이 현장에서 체험한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물었다. 이 국장은 "국회의원 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뭘 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정답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해답을 만들어가는 정치로 바꿔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민생정치'를 장식품으로 여기는 여의도 세태와 민생문제를 뒷순위로 돌려놓은 '86세대'의 실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직격했다.

이 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 3층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진 이의종


■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10년을 넘어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롯데백화점, 세븐일레븐, 롯데마트 등 롯데 유통 계열사가 불공정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적이 있다. 피해자들이 을지로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을지로위원회를 만든 2013년의 11월이었다. 롯데 유통계열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계약서를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고 롯데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롯데 사내 변호사와 참여연대·민변의 변호사들이 16종의 계약서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내부 저항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요구하고 회사에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저항이 줄고 공정한 계약서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계기로 롯데 사내 문화가 많이 바뀌었고 요즘엔 롯데가 불공정하는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을지로위원회가 사내 혁신까지도 이끌어내는 효과를 낸 것이다. 이는 '을'들이 을지로위원회를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 국회를 든든하게 생각하는 등 정치적 효능감을 많이 느끼게 됐다.

■ 반대로 아쉬웠던 경험도 있었을 것 같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께서 범정부 을지로위원회를 만든다고 공약했다. 당선 후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갑을 관계를 해소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 직속 을지로위원회를 신설한다라는 보고서까지 냈다. 하지만 정부가 구성된 후 공정위를 중심으로 관료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핵심 세력들의 초심과 의지가 약해졌다. 결국 범정부 을지로위원회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훈련된 보좌진, 당직자 등의 협업체계로 성과를 내온 을지로위원회는 많은 문제해결 사례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정부 개혁의 동력으로 쓸 수도 있었다. 정부 위원회의 좋은 행정개혁 사례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럴 여지가 사라진 게 가장 아쉽다.

■ 국회의원들이 직접 갑을관계의 현장에 들어가 중재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갑질한다'는 비판도 있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출범 10년을 맞아 내놓은 '녹서'인 '민주당 재집권전략 보고서'

을지로위원회는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곳이다. 권익위 공정위 등을 다 거친 후 오게 되는 마지막 종착지다. 이때 정치의 본질은 조정과 타협이다. 을지로위원회는 직접 중재하기도 하지만 대화를 성사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한번 대화를 해보세요'라거나 '정부 부처도 한번 이걸 검토해 보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하며 대화를 하거나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그러면 타협할 부분이 보인다. 홈플러스의 경우도 자기들이 이렇게 불공정한지 몰랐다고 하더라. 경영이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다보니 자기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다. 을지로위원회와 대화도 하고 국회도 오면서 자신을 살펴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혁신의 계기로 삼기도 했다.

■ 갑을이 만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달라지나.

을지로위원회는 동등한 입장에서 테이블에 앉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 경영진과 마주 앉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앉아서 대화하면 많은 오해가 풀린다. 시간, 업무량 등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언어가 많다. 그래서 교섭이 아닌 대화 창구 간담회라고 얘기한다. 서로의 언어와 인식을 맞추는 시간이다.

■중재보다는 입법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권에 오는 민원은 악성이다. 정말 해결이 어렵다. 만일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면 사법당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부처를 통해 해결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위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있거나 입법적 미비 때문에 발생한 것도 많다. 그래서 민원 속에서 입법적 과제를 찾아내려고 했다. 입법 발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진영 간 갈등이 심하고 이해가 너무 첨예했다. 입법적 성과가 나기 어려운 구조다.

■ 정부나 정당들이 '민생' 우선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에서도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제1노선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가 데코레이션위원회 아닌가' 하는 얘기를 많이 한다. 민생정치가 필요할 때는 (을지로위원회에서 성과를 낼 때) 가서 (현황판에) 꽃 달아주고 (책임 국회의원이나 '을'들에게)꽃을 주면서 '민주당은 민생을 중시하는 정당입니다'라고 하는데 활용되는 데코레이션 같은 위원회가 아닌가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 86세대들이 사회경제적 이슈에 다소 관심이 적다는 지적이 있다.

86세대는 민주주의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다. 87년 민주항쟁을 통해서 성취를 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헌법적 가치 중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 반면 사회권적 기본권이나 생존권적 기본권에 대해서는 다소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86세대들은 졸업을 하면 거의 취업을 할 수 있는 세대였다. 민생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떨어진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 한다. 86세대와 97세대가 다른 경제적 조건에서 사회 진출을 했다는 남인순 의원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우리 당을 주도하고 있는 86세대는 좋은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지면 여타의 문제 즉 사회경제적인 문제도 잘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더 치열해지고 있다. 불평등 과제는 점점 더 쌓여가고 차별은 더 심화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좋은 정치 환경을 만들면 이런 문제도 다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거 같다. 그런데 유사 이래로 좋은 정치적 환경이 있었나.

■ '을'을 지원하고 이들과 손을 잡는 '민생 연대'는 가능할까.

정당 이론에서 보면 세 단어가 자주 나온다. 비전, 밸류, 얼라인먼트다. 이중 얼라인먼트는 정당과 지지자 연합 체제다. 누구와 정치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공정한 세상을 바라고 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세력과 함께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사회 약자에게 힘이 되는 정치를 만들어 가야 되는 것이 정치이고 정치의 본질이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50년간 공화당이 집권하고 50년은 민주당이 집권하는데 그 전환기는 뉴딜연합이었다. 노동자, 유색인종, 사회적 약자, 여성의 문제들을 전면화하면서 연대가 이뤄졌다. 우리 정당사를 보면 거대한 연대를 보기 어렵다. 민주와 반민주 싸움만 50~60년 했다. 지금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됐느니, 안 됐느니 얘기할 정도다. 민생 연대는 우리 사회에서의 사회적 약자, 우리나라 사업체의 90% 이상이 되는 중소기업, 700만 소상공인, 1000만의 노동자들의 정책으로 연대하고 그 힘으로 집권을 하자는 것인데 쉽지는 않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을지로위원회와 카드수수료 문제나 제로페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연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공동 프로젝트 같은 것도 좀 만들어 가려고 한다. 노조할 권리, 교섭할 권리, 대화할 권리 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처리면서 연대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을지로위원회 10년 경험에 비춰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여의도에 있으면서 '국회의원이 하고 싶어요'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지만 '정치를 통해서 뭘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한국의 정치 문법이 정쟁 중심이다. 문제 해결형 정치가 아니다. 정답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해답을 만들어가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 을지로위원회와 같이 솔루션을 중요시 여기고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을 고민하는 것이 정치를 바꾸기 위한 한 측면일 수 있다. 과거 한나라당에도 을지로위원회와 같은 '손톱밑 가시뽑기 특별위원회'가 있었는데 얼마 못 가 사라졌다. 아쉽다. 민생에는 여야가 없다.

정치는 칼로 하는 게 아니다. 말과 대화로 한다. 상대방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화가 상실된 정치는 국민들을 불행하게 한다. 강성 지지자들은 비판자들과 대화하는 것조차도 막 뭐라고 한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조정하고 그 속에서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 현재 여의도에 필요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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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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