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③ 하승수 대표

"국민 언어로 정책·비전 전달하고 논쟁 만드는 게 정당 역할"

2023-12-21 10:37:21 게재

"총선 4개월 전 비전·정책 부재 … 정치 양극화에 시민단체도 무력화"

"정치, 문제해결 능력 떨어져 … 근본 문제 켜켜이 쌓여 복합 위기"

"사람 아닌 선거제도 헌법 바꿔야 … 내년엔 풀뿌리 권력 감시 예정"

녹색당 대표를 지냈던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총선이 지금 4개월도 안 남았는데 거대 양당은 물론이고 소수 정당들도 주요한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가 제시되거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 전달하고 그게 논쟁이 되도록 만드는 게 정당의 역할"이라고 했다. "논쟁하면서 해법을 찾아나가는 게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이라며 "우리나라 정치는 비전이나 정책에 대한 논쟁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문제해결 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대증요법, 임시처방에 급급해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후, 저출산, 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여 있다"며 "총체적인 위기, 복합 위기의 이유"라고 했다.

사진 이의종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는 하 대표는 정치 양극화가 시민단체의 무력화로 연결된다고 봤다. 그는 "정치 자체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해버리니까 시민사회가 무슨 제안을 해도 다 튕겨져 나온다"며 "입법을 제안해도 어느 당이 반대하면 안 된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선거 제도나 헌법을 바꾸는 것"이라며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현행 헌법을 가지고 2027년 대선을 치를 것이냐를 고민해야 된다"고 했다. 하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교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진행했다.

■녹색당 대표를 맡는 등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나.

선거제도 개혁이나 헌법 개정 같은 우리나라 정치 제도 개혁과 관련된 활동들을 계속하면서 녹색당 창당부터 9년 정도의 정치 활동을 했다. 한국에도 녹색당 같은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총대를 멨다.

■한국 정치에 비전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많다.

정당들이 비전과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를 해야 된다. 총선이 4개월도 안 남았는데 거대 양당은 물론이고 소수 정당들도 주요한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가 제시되거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 전달하고 그게 논쟁이 되도록 만드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건강한 진보, 건강한 보수 사이의 논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등 생태적 관점에서 기존의 진보 보수를 뛰어넘는 논쟁도 필요할 수 있다. 논쟁하면서 해법을 찾아나가는 게 바람직한 정치의 모습이다. 하지만 논쟁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정책 내용에 대한 갈등이 아니라 증오와 반목의 정치 양극화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거대 양당 중심의 시스템에서는 끊임없이 정치의 양극가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 잘하지 못해도 상대방이 잘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잘하기 위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다당제로 가야 한다. 대통령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게 헌법 개정이다. 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일종의 독재가 가능했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선거 제도나 헌법을 바꾸는 것이다. 그게 국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두환정권을 유지했던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극도로 강화한 헌법과 여당에게 유리한 중대선거구제였다. 1988년 총선을 새로운 선거제도로 치르면서 여소야대가 됐고 군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을 앞으로 누가 잡느냐보다 헌법 개정이나 선거제도 개혁이다.

■지금 비례대표제 논쟁이 한창이다.

현행 제도가 어쨌든 4분의 1 발자국이든 반 발자국이든 나아간 것이다. 더 좋은 선거 제도로 나아가려면 여기서 후퇴하는 건 곤란하다.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첫 번째로 논의해야 되는 게 정치 제도 개혁이다. 현행 헌법을 가지고 2027년 대선을 치를 것이냐를 고민해야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다 알고 있는데 왜 안 고쳐질까.

'권력 잡으면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환상이고 착각이다. 이미 검증됐다. 모두 실패했다. 문제해결 정치나 연합 정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2024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가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정치 제도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권력 잡은 사람은 안 바꾸려고 할 것이다. 87년 헌법 개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당시 헌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국본이라고 불리던 전국적인 운동이었다. 의원들의 초당적 모임은 결국 자기 정당의 이해관계나 정당 지도부 눈치 보느라 성과를 못 내는 게 반복돼 왔다. 국회에 기대해서는 될 게 없다. 국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해결이 쉽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개헌에 나서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실기했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선거제도나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 2018년 3월에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실제로 통과시킬 정치적 의지는 없었다. 당시 대통령 지지율을 볼 때 대통령의 의지만 있었으면 헌법 개정이 가능할 수 있었다.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그 당시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했어야 했다.

■정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시민운동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고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입법과 예산과 정책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정치의 영역이다.

■현재는 문제해결 능력이 약해 보인다.

정치의 문제해결 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기후, 저출산, 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여 있다. 총체적인 위기, 복합 위기의 이유다. 지금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만 일종의 대증요법으로 임시처방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대통령,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 마찬가지다. 사법부가 정치화됐고 입법부는 사법화됐다. 어느 기관, 어느 영역도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외부의 시민단체 활동도 많이 위축돼 있는 것 같다.

정치가 양극화되다 보면 시민단체들도 어려워진다.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정치에서 수용이 되면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건데 정치 자체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해버리니까 시민사회가 제안을 해도 다 튕겨져 나온다. 입법을 제안해도 어느 당이 반대하면 안 된다.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져버렸다.

■진보 정당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소수 정당이 안건 심의 순서를 정하는 테이블에도 못 앉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선거 제도에서는 소수 정당이 원내 교섭단체가 되기 어렵다. '우리가 잘해서 해결할 수 있다'가 아니라 '큰 틀의 제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수 정당에 있는 정치인들은 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빛이 안 나더라도 전력을 다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 진보 정당들도 의제나 정책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바꾸려는 부분에 에너지를 더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실이나 감사원 특수활동비 공개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대통령실의 경우 내년 2월 정도에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임기 중에 대법원까지 판결이 확정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모든 자료가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하기 때문이다. 소송을 빨리 진행한 이유도 윤석열정부 임기 끝나기 전에 판결 받으려는 의도였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100일치를 요구해 놨다. 감사원 특수활동비 공개 소송 역시 내년 상반기에는 1심 판결이 날 것으로 보인다. 공개 대상은 문재인정부와 윤석열정부 모두에 걸쳐있는 2022년 1년치다. 이외에도 법무부 업무추진비도 공개를 요구했다. 내년에 1심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하는 곳은 검찰, 대통령실, 감사원, 법무부 등 4개 기관이다.

■국회를 비롯해 권력기관 중심으로 예산 공개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뭔가.

1998년부터 정보공개법이 시행됐다. 처음에는 업무추진비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소송, 판결이 이어지면서 공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홈페이지에 자동으로 공개하는 데까지 왔다. 지자체는 카드 쓴 시간까지 공개한다. 하지만 일부 권력기관은 시간, 음식점 상호를 빼고 총액만 공개하고 있다. 특히 피감사 기관들은 전부 건별로 사용시간까지 다 공개하는데 감사원은 총액으로 '얼마 썼다'만 공개한다. 다른 기관을 감사하는 감사원이 오히려 더 투명하고 모범을 보여야 감사받는 곳들이 더 조심하고 감사 결과에도 승복할 텐데 감사원은 공개 안 하면서 피감사기관들만 (잘 공개하는지) 감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권력 있는 쪽이 공개돼야 투명해지고 부패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국회를 잡았던 거고 두 번째로 검찰, 세 번째로 대통령 비서실, 감사원, 법무부에 대해 소송을 진행해 왔다. 그동안 경험을 보면 권력기관의 정보 공개가 잘 되고 투명해져야 나머지 기관들도 더 나아갈 수가 있다.

■앞으로 어떤 부분들을 더 들여다 볼 생각인가.

지자체들이 예전보다 정보공개 측면에서 투명성 부분이 개선됐는데 여전히 비리나 부패, 예산 낭비가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권력기관 감시에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풀뿌리 예산과 권력 감시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67개 전국 검찰청의 자료를 다 받아서 검증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다 할 수 없다.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자기 지역의 지자체뿐만 아니라 검찰청, 경찰청, 교육청을 감시해야 한다. 풀뿌리 예산 감시, 권력 감시운동이다. 전국 예산 감시 네트워크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내년에 활성화해 보려고 계획 중이다.

■시민단체 활동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경영학과를 전공해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먼저 땄다. 회계법인에서 잠깐 일을 해보니까 우리나라 기업들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고 기업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공익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1996년 사법연수원 1년차 때 사무처장 인터뷰하러 참여연대를 가봤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시 사무처장이었다. 법률가가 기여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 보였다. 연수원 2년 동안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소액주주 운동, 재벌 감시 운동, 정보 공개 운동 등이 활성화되던 때였다. 1998년 사법연수원 27기로 수료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 같다. 곧바로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시민운동이 공익을 위해서 제일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았다. 시민운동이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검사나 판사보다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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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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