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④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람 바꾸는 정치, 바뀐 게 있나 … 양당 카르텔 구조가 문제"
'못해도 2위' 양당 체제, 정책 논쟁 외면하고 인물 가십만 생산
선 굵은 정치 질서 사라져 … 정치권, '정서적 양극화' 부추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으로 총선을 100일도 남겨 놓지 않고 있는 여의도가 어수선하다. 공천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과 도전자들은 '줄서기'에 바빠졌고 유튜브 등에서는 혐오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정치 양극화' 현상이 정치권에서 불지핀 '정서 양극화'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양당 정치의 고착화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정책 중심의 대결국면이 사람 중심의 가십정치로 변하고 기대했던 초선 의원들이 기성정치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흡수되는 것 또한 '못해도 2위'를 보장하는 양당정치의 폐해로 읽었다.
이 교수는 사람 교체가 아닌 제도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양당구조를 깨기 위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하지만 그 칼자루를 기득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어 '요원한 과제'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제3지대에서 피어나는 신당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한국선거학회 회장을 지냈고 서강대 현대정치연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강대 다산관에 있는 이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국민 닮은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정치에 대한 기대치와 실제 선택과 괴리가 큰 이유는 뭘까.
말로는 국회는 국민들의 축소판이어야 된다라고 얘기한다.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대표이니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좋겠다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뽑을 때는 대학이나 공직 경험 같은 수월성을 따진다. 서울대 출신, 남성, 율사들이 많다. 그러고는 뽑고 나서는 서민의 삶을 모른다고 얘기한다. '나와 같은 국회'를 원한다면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추첨제로 하면 된다. 18세 이상 국민 전체를 놓고 제비뽑기로 300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국회의원이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로마?그리스는 제비뽑기식 추첨으로 민의회를 구성했다.
■'국민 닮은 국회'가 더 국민을 대변하나.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20%정도다. 여성을 더 뽑아야 한다고 한다. 비례대표로 여성이 절반 이상 들어간다. 비례대표로 들어간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면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나와서 당선되기 위해 정당 지도부하고 호흡을 같이 하고 충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이 남성 국회의원들보다 여성의 이익에 더 적극적이었느냐를 보면 의정활동에서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여성을 뽑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여성 국회의원이 여성들의 인권을 좀 더 잘 보장할 것이라는 가정에 의한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잘 반영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여성이 많이 (국회에) 들어가고 적게 들어가는 문제라거나 돈이 많고 적은 사람들이 골고루 있어야 한다라거나 하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느냐, 어떤 활동을 해야 했느냐는 게 문제다.
의원들이 누구를 대표해야 다음에 당선될지 고민을 할 것이고 국민들이 거기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면, 지역구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 다음 선거에서 표를 받지 못한다면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민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유권자가 평가를 할 수 있어서 국회의원들이 그것을 두려워해 국민들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반응성이 높을 때 국회가 누가 들어가는지와 관계없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가.
상대적으로 미국은 이런 '유권자 반응성'이 강하다. 미국은 완전 상향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공천부터 모든 정치 운명들이 정당 지도부나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하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결국 정당 지도부에 묶이게 되고 지지율 30%대의 대통령도 강력한 힘으로 정당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100% 소선거구제를 하면 양당제가 강화되지 않나.
미국의 경우 너무 오랫동안 양당제가 고착돼 왔다. 현직 의원이 90%가 당선되는 나라, 기득권이 얼마나 보장된 나라냐.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하는데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 양당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선거제를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미국 정당 지도부는 공천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지도부가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선거때 가장 중요한 게 선거운동자금 모금 지원이다. 그 때 당의 의장이나 총무 등 정당 지도부가 가면 펀딩이 잘 된다. 여당의 경우 대통령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 의정활동 등에서 맘에 안 들면 안 간다. 눈 밖에 난 의원이 낸 법안을 심의에서 뒤로 미루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미운 털이 박힌 의원의 법안을 다소 보수적인 상임위에 보내 버리기도 하고 대정부질문할 때 빼기도 한다. 소심한 복수 정도가 가능하다. 공천엔 관여할 수 없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겠다.
당론 같은 게 없다. 당론이 없으니 자율성 있다. 야당 의원이 여당과 대통령의 정책이나 법안에 찬성 투표를 던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야당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한다.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는 선거 전략이나 정당 전략들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중도층은 이질적이고 무정형화돼 있다. 이론적으로는 중도층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지만 그들을 효율적으로 설득하거나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들을 '이렇다'고 정하는 순간 곧바로 틀려버리는 거다.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무언가를 뭐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건 그게 아닌 게 되는 것과 같다.
청년층에 대해 규정하는 것도 비슷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들의 상황이 다르고 기대하는 게 다르다. 획일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청년 정책을 보더라도 그동안 실업 문제만 해결하려고 했는데 주택 문제를 포함한 삶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삶은 가치관과 연결돼 있고 획일적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라 더 까다롭다.
그래서 중도층 전체가 아니라 이들 중에서 잠재적인 지지자 집단을 끌어오는 것이 가장 적절한 전략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의 원인을 정치 양극화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지역구 선거할 때는 지역주의만큼 강한 요인이 없지만 지역주의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적다. 정치라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 있어서는 굉장히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일반 사람들의 정신 구조를 지배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피습)행동을 보면서 공감을 하거나 다른 사회생활에서도 분노이나 적대감이 계속 투영이 되거나 확대되지는 않는다.
■일부의 일탈로 보나.
'일부'라는 말도 너무 강하다. 오늘도 살인 사건이 어디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살인 사건을 보면서 그것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같은 경우도 폭력적이고 심지어 조폭이 미화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조폭을 그리워하거나 조폭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오락의 영역으로 둘 수 있을 정도의 자각이 있다. 정치 양극화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옛날과 달리 사람들과 정치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정도다. 정치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의 어떤 인간관계를 맺는 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변화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적대화하는 단계로 가지는 않는다는 거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너무 과잉 해석하고 사회 일반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기우다.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확증편향돼 간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
유튜브라든지 SNS에서 편향적인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전에 없었던 현상이다. 고령층이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층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쇼츠에 정치 내용이 들어오면 싫어한다. 평상시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다가 선거 때가 되면 자기 투표 의사 결정을 위해서 조금 관심 있게 자기가 관심 있는 이슈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20대, 30대들의 표심이 여론조사를 하면 많이 갈라져 있지 않나.
20대와 30대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두지만 다른 이슈엔 별로 관심이 없다. 기대가 없다. 젊은 세대는 국가나 사회 같은 큰 커뮤니티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상당히 약하다. 개인에 대한 사고 중심이 훨씬 더 예민하고 발달돼 있다.
■정치 혐오의 해법은 무엇인가.
정치라는 것은 나와 다른 집단,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이 존재하고 그래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좀더 좋게 말하면 존중을 하고 타협해서 차선책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존중과 타협이라는 단어가 이미 사라졌다. 또 한 가지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정책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의 정치가 됐다는 점이다. 방송에 나와 다루는 게 정책보다는 인물 중심이다. 연예인 가십 다루듯 한다. 정책은 복잡하기도 하고 재미가 없다. 사람은 정치에서는 수단일 따름이다. 정책 논쟁이 예전에 비해서 크게 줄어든 상황은 진영 논리나 양극화로 가는데 훨씬 더 매끄러운 길을 깔아줬다.
■인물 중심의 가십성 이야기가 주로 화제가 되는 이유도 있나.
첫째는 고착화된 양당 제도의 영향이다. 최악의 경우가 '2당'이다. '너 아니면 나'니까 서로 치고받으면서 '국민들이 뭐라고 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국민의 마음을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경쟁이다. 여의도 안에서의 정치다. 소위 카르텔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는 '3김' 이후 관통할 수 있는 굵은 줄기의 정치 질서가 사라졌다. 요즘은 진보와 보수, 이념의 양극화라기 보다는 정서의 양극화다. 호남 사람이 더 진보적이냐, 아니다. 영남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냐, 아니다. '호남 진보, 영남 보수'는 정치인들이 동원에 의해서 만든 정서적인 양극화다. 외국인을 봤을 때에 느끼는 '낯섦'같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우리들만의 집단'을 만들고 배제 집단을 멀리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다. 이런 데서는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사람을 바꾸는 공천혁신 얘기가 나온다.
낙천 낙선 운동이 있었다. 사람을 바꾸려고 노력한 거다. 17대 총선 이후에 매번 총선때마다 40% 이상의 새로운 의원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국회에 대한 실망감은 더 커졌다.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뭘 바꿨나. . 뭐가 달라졌나. 젊은 사람이 더 낫다는 걸 어떻게 보장하나. 정치는 10년 하면 그 경력이 고인물이 되는 건가. 정치 밖에 있는 정치문외한이 비대위원으로 오면 잘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치를 모르는 비대위원들이 정당 개혁과 무슨 상관인가. 새로운 사람들이 잘한다는 그 생각은 어디서부터 근거를 두고 있는 건가.
정치를 할 수 있는 소양의 사람들은 따로 있다. 정치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의 꿈은 다음 선거에서 또 이긴다든지 그걸 포함해서 자기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싶은 욕구가 기본이다. 그걸 부인하면은 우리는 정치를 얘기할 수가 없고 정치인의 행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새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80%가량은 지금 있는 정치인들의 속성과 같고 나머지 20% 다른 것은 제도에 들어오면서 기존 정치인들과 같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현역 교체 여론이 높은 이유는 뭐라고 보나.
기성 정치, 여의도 정치에 부패, 무능의 이미지가 그대로 쌓여 있어서 그렇다. 지역구 의원에 관심이 없다. 지역구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나 본 적 있나. 하지만 불만이 있어서 국회의원을 바꾸려는 것은 더 나은 대안이 검증되지 않은 채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기대했던 초선들이 기대와 달리 줄을 서고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제도의 문제다. 제도가 그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선택하게끔 강요를 하는 거다. 그걸 못 견디면 은퇴하는 거다. 정치인이 돼 선출직에 간 사람의 정치적인 욕구는 두 가지다. 자기가 계속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와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수행하고 싶은, 내가 정치인이 되면 이런 걸 해야지 하는 욕구다. 두 가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원하는 그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현직에 있어야 한다는 욕구가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재선, 3선, 국회 지도부 등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생각한다. 신입사원이 부장, 이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취사선택하는 옵션들을 보면 한국적 구조에서는 누군가에게 줄을 서고 여당이면 대통령의 말에 거역하지 않고 당 지도부에서 명령을 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어떤 제도 문제가 있나.
현재 선거제도는 기존 현역에게 너무 유리하다. 또 공천혁신이 물갈이 비율로 읽히고 있다. 시스템 공천이라고 하지만 세팅된 룰을 그대로 적용하면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선을 치르는 비율이 40%대다. 이기기 위해 확실한 후보자를 전략공천하는 게 암묵적 룰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멋진 공천과 이기는 공천'은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제도를 바꿔야 된다는 건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도 국회 제도에 들어가는 순간 거기에 대해서 그 제도의 규범이라든지 이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가 바뀌면 사람들이 변화한다. 문제는 그 제도를 바꾸는 게 기득권자인 국회의원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도를 바꾸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제3당의 사례가 있었나.
정의당이 가장 적합한 사례다. 정의당 같은 경우 그래서 심정적으로 사람들은 찍지 않았어도 정의당의 존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굉장히 많았다. 정의당이 20석 이상 교섭단체가 됐다면 국회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초선의 불출마선언은 어떻게 봤나.
사람들이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생각을 하는 부분도 있다. 정치는 그게 아니다.
■정치란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학문적으로는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사회적 가치는 유한한데 갖고자 하는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게끔 권위를 가지고 조정하는 것이 정치이고 국가의 역할이다.
정치 현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각 진영들 갈등이 가장 첨예화된다. 선거를 치르기 전에 전제로 하는 게 있다. 선거가 끝나고 우리가 합의한 방식에 의해서 대표자를 뽑으면 그 사람을 대표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다. 갈등이 해소되는 기점도 바로 선거가 끝난 이후다. 패배자 역시 이런 전제에 합의할 수 있는 이유는 차기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제도적 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선거가 갈등이 가장 심해지는 기점이지만 선거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갈등이 해소되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가.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가라는 부분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들이 상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대의 정치에 대한 불신, 어디에서 오는 건가.
야당은 분명히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역할이었는데 그 정도를 넘어섰다. 대통령을 0.7%p 차이로 뽑았더라도 뽑았다면 대통령은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그게 옳지 않다는 얘기다. 당선자에 대해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계속적으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정치 불신이 된다. 그래서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은 정치인들이 갈등으로 일으키는 데서 나온다. 정책적 차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양극화를 가져오는 쪽으로 감성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로 소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이런 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양당제이기 때문이다. 자신들한테 최소한의 것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가 언제든지 어떠한 경우든 어느 정도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당제 폐해들을 고치는 것이 해결점의 한 단초인가.
그렇다. 먼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 지역구를 줄인다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적다면 전체의석을 35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면 된다. 국회의원 50명 늘리면 큰 문제 생기나. 정치학자들은 국회의원 정수에 대해 340~360명 정도가 우리나라에 적당하다고 본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국회의원 수가 적다고 얘기했는데 이 두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다 우리나라보다 국회의원 수가 많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아지면서 북유럽부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지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정치권에서 수용되는 것들이 굉장히 둔감해지면서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핵이나 방사능, 오염수 등 전문적인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조용한 민주주의'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책임성이다. 결정권을 가진 전문가들의 책임성을 어떻게 매길 수 있는가이다. 당원들에 의해 뽑히지 않은 정치권의 비상대책위원회처럼 외부에서 정당 소속도 아닌 학자 등에게 맡기면 생겨나는 게 그 결정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이냐다. 외부에서 온 사람은 공천이 잘못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비대위같은 행태는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정능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그래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양당 체제' 때문이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의석은 가져간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1당은 못 돼도 2당은 된다는 것이다. 정당 카르텔이다.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제 3당의 압박이다. 이러다가 3당한테도 밀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 3당이라는 게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떤 지점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준석신당이 진보 보수라는 그 프레임을 넘어서 다른 관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진보 보수라는 담론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눈에 띄는 광고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선거 기간 동안에 그럴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지난 번(당대표 선거때)과 같이 유쾌해질 수 있다. 선거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 광고라는 게 약효가 그렇게 있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집어 들게 하는 것까지는 100일 정도면 가능하다고 본다. '저거 되게 재밌다'는 식의 사람들한테 약간의 통쾌함이라든지 상큼함을 줄 수 있는 그 효과를 가지면 어느 정도의 의석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원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대중정당은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이다. 대중정당이라는 개념은 엘리트 정당의 반대 개념으로 나왔다. 1960년대까지 진보-보수로 나뉜 영국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나온 게 대중정당이다. 하지만 1970년대 탈물질과 포스트모던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나오자 대중정당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당원 수가 급격히 줄었다. 상당히 좌편향적이거나 상당히 우편향적인 사람들이 핵심지지층에 들어 갔다. 정당이 이들에 의해서 운영되어지면 그 정당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대중정당'이 아닌 '유권자 지지 정당'이라고 한다. 정당 가입 유무가 아니라 그 정당에서 정책적으로도 호감이 있고 그래서 기회가 돼면 그 호감을 표출하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당을 말한다.
■실제 권리당원이 한달에 천원씩 몇 달만 내면 권한을 얻고 전 당원 투표를 해도 투표율이 20~30%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실제 당원 평균보다 더 편향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당이 움직여지면 강성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중도 같은 사람들을 더 놓치게 된다. 지금 대중정당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판단이다. 행동하는 열성당원이 당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사람들은 모든 것에 다 참여를 한다.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전체 당원들의 생각과 괴리가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경계에 있던 지지세력이 빠져 나간다. 강성파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점점 당원 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를 따져봤을 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건 민주주의는 별로 신통치 않은 제도라는 점이다. 하지만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독재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권리를 최소한도로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 경제학에서도 자연 실업률이라는 게 있다. 민주주의도 시끄럽고 비효율적이지만 자칫 민주주의에 효율성의 개념을 자꾸 갖다 대다 보면 그게 획일성을 가져올 수 있다. 다양성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면서 낭비나 비효율성을 받아들여야 되는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