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수는 '기득권', 진보는 '눈앞 민생' …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2024-01-15 14:17:16 게재

과거에 매인 '향수 이데올로기'에 '일사분란한 80년대 시스템'으로 돌아가

국가간 생존전쟁 돌입했지만 정치권은 갈라져 '성장담론' 등 국민 합의 못해

선거 탓에 개혁 못해 … "권력투쟁은 제로섬·승자독식, 체질에 안 맞았다"

오랫동안 '미래'를 천착해온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불출마선언을 한 이유는 '미래'를 말하기 어려운 정치권 구조 때문이었다.

사진 이의종


홍 의원은 '권력 쟁취'를 제 1 목표로 앞세우고는 미래를 애써 외면하는 현상을 목도했다. 과거의 향수에 매어있는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당장 눈앞에 있는 민생해결에 주력하느라 '미래'는 뒷전에 미뤄뒀다. 달라진 사회구조를 얘기하고 팽창사회의 종말과 수축사회의 시작을 알렸지만 자기 주장이 강한 정치권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전 세계가 생존을 위한 전쟁에 들어갔는데 우리나라는 이념을 내세우거나 네편내편 편가르기에 정신이 없다. 결국 홍 의원은 밖으로 빠져 나와 '경보'를 울리기로 했다. 권력투쟁의 제로섬 승자독식 사회를 뒤로 하고 눈 앞의 고통만 잊게 해주는 '진통제 처방'만을 내놓는 정부 정책을 경고하면서 대안을 내놓을 생각이다. 그는 국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리더그룹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위기 속으로 들어가는 '한국호'를 선수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 419호인 의원사무실에서 가졌다.

■총선 출마 불출마 선언문에서 “지난 4년간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4년간 아무 일도 못한 이유는 뭔가.

집단적으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살기 어려우니까 좋았던 시절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측면이 굉장히 강했다. ‘향수 이데올로기’다. ‘그때가 참 좋았다’, ‘열심히 하면 잘 되는 시대였다’는 향수 이데올로기로 탄생한 게 윤석열 정권이다. 윤석열정부 정책이 과거형 정책들이다. 또 완전히 일사불란한 80년대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었나.

우리 사회를 예측 가능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명적인 개혁 조치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사회 구조가 완전히 바뀐 거니까. 피라미드 인구구조로 인류가 살아왔는데 지금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됐다가 나중에는 역피라미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역삼각형 체제로 바뀌게 되면 당연히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부분들을 고쳐야 된다. 사람들의 미래가 예측 가능해지면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가 있고 사회가 안정적이고 살 만한 행복한 사회가 되는 거다.

바꿔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저출산 대책이다. 그 다음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로드맵이다. 국민연금 개혁이라든가 건강보험 개혁, 교육개혁, 국토 균형발전 등 큰 정책들을 지난 4년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할 수 있냐, 앞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불출마한 가장 큰 이유 중엔 ‘현 체제 안에서는 그러한 역할들을 해낼 수 없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 ‘후진적인 정치 구조 한계’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국회나 관료, 우리 사회 리더 그룹이 고령화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람들이 향수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고 기득권을 갖고 있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남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다. 어떤 정책을 얘기하고 왜 해야 되는가를 얘기 했지만 생각 차이가 컸다. 연금 개혁 같은 것은 민주당에서 오랜 기간 얘기를 했지만 이게 안 되는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선거를 하게 되면 연금 개혁 때문에 근로자의 부담이 늘어나서 투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이게 근본적인 생각들이다.

그런데 근로자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1년에 90만 명씩 60세를 넘는다. 은퇴자들이다. 이들이 제일 관심 있는 게 국민연금, 건강보험, 교육 개혁이다. 이런 걸 과감히 했을 때 오히려 더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더 못하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한계를 계속 느껴왔다.

국제 질서와 같은 경우도 마치 중국을 때리면 애국자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기본도 안 된 생각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 위치에 대한 기초 인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나라’다. 중국이 패권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는 중국에 붙어야 되는 거고 반대로 미국이 이겨서 중국이 완전히 초토화되면 우리나라에도 피해가 엄청나게 오는 것이다. 중국에서 난민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왜 안 하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굉장히 높아질 수도 있다.

또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많은 부분들의 공급이 안 된다. 중국의 불안 상태가 되면 김밥집 단무지나 김치마저도 공급이 안 된다. 이는 정치 문제를 넘어서 개인한테도 다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의원들한테 많이 해줬다. 언론에도 백날 얘기했는데 한 줄도 안 실어주더라. 그래서 차라리 (국회) 밖에 나가서 직접 사람들한테 이런 걸 설명하고 강의하는 게 낫다고 봤다.

수축사회가 온 것을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꾸 옛날 방식대로 갖다 쓴다. 그게 정치권이 가장 심하고 경제계도 마찬가지다. 태영 건설 원인도 IMF 전에 하던 것들이다. 당시 동아건설 대우그룹 기아 한보 우방 우성건설 등과 똑같은 사례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제도권 안에서 정책을 만들고 법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지금 입법은 미세처방이지 근본대책들이 아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 권력 투쟁이 항상 끼어있다. 법이 공정함과 먼 미래를 향한 어떤 혁명적인 법안이 나올 수가 없다. 나의 주장이 당의 생각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야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그런 거 아닌가.

민주당도 초기에는 여당이었다. 관료들의 관료적인 관료주의가 너무 세졌다.

우리나라 한국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관료들이다. 이들이 선봉에 섰다. 지금은 관료들이 수비형으로 다 바뀌었다. 고위 관료들은 그만두고 갈 자리만 찾고 있다.

■왜 수비형이 됐을까.

과거엔 팽창 사회였고 한국사회 엘리트 계층이 다 관료 사회로 갔다. 이머징 국가들엔 똑똑한 관료 집단이 선두에 있고 군부가 있었다. 군부가 똑똑했던 나라는 성공했다. 우리는 군부뿐만 아니라 정통 관료들도 일을 잘했고 새로운 것도 잘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전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교수, 학계도 마찬가지다. 자기 것을 지키는 데 주력한다. 리더 그룹 전체가 이런 상황이 되니까 여당에서도 뭘 할 수가 없다. 여야 문제가 아니라 시대 문제다.

■밖에서 한다 하더라도 그게 쉬운 건 아니지 않나.

그래도 밖에서 하는 게 낫다. 개인적인 성향이긴 한데 선거라는 것, 정치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권력 획득이 제1의 목표가 되는 것이 걸린다. 대우증권 사장때 ‘너 꿈이 뭐야?’ 물을 때 ‘사장이요’라고 하는 사람은 뽑지 않았다. ‘우리 회사가 아주 잘 되기 위해서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회사도 잘 되고’라고 대답하는 사람, ‘나도 잘 되고 잘 되는 방법이 뭔데’라고 물으면 ‘이렇게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을 말하는 사람을 뽑았다. 그런 사람은 평상시에 행동이 다르다.

지금 국회의원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국회의원 돼서 어떤 정책을 쓴다거나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국회의원 하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마어마한 일을 많이 했다. 당시 왕이 누구였는지 아나. 모른다. 관심이 없다. 다빈치가 그렸던 예술적 성과나 학문적인 성과만 남아 있다.

기억나는 국회의원이 있나. 인생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큰 잣대로 직위를 노리지 않고 뭘 할 것인가를 봤다. 직위는 중요하지 않고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정치가 권력 투쟁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제로섬이다. 남을 찍어 눌러서 없애버려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승자독식구조다. 이게 체질적으로 안 맞았다. 싸워서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 하나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세 번째는 나를 속이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게 숟가락 얹기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도 같이 한 것처럼 홍보하려고 노력한다. 가식적인 행동들이 너무 잘 보였다. 정당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자기 이권 때문에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것도 눈에 보이더라.

■지역구 관리가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지역구는 아주 쉬웠다. 지역민들이 질문하면 그 자리에서 다 답변해 주고 해결도 해줬다. 잘못 생각하면 이건 이렇게 해야 된다고도 한다. 예를 들어서 레고랜드 사건이 났을 때 (지역)상호금융 대표들에게 ‘외형을 키우지 말고 대출도 늘리지 말고 회사를 안전하게 BIS 등 비율관리를 잘 하라’고 조언하면서 ‘1~2년 지나면 회사가 더 클 수가 있다’고 했다. 2주전에 신협 이사장을 만났는데 고마워했다. 지역 관리를 이런 식으로 했다.
상갓집이나 결혼식에 찾아다니지 않았다. 세종시는 젊은 도시다. 공무원이 많다. 만나는 것을 꺼린다.

3개의 면에서는 같이 얘기하고 노래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농사일이나 나무 얘기도 같이 했다. 지역에 있는 기업 방문도 굉장히 많이 했다. (과거 증권사에서 리서치 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업종에 대해 얘기를 해주고 이렇게 하시라고 해주면 기업 오너들이 팬이 된다.

■바깥에서 외치는 시민단체에서는 국회로 들어가 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한다.

정책이나 예산은 국회도 만들지만 행정부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정부는 결국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예산안 편성은 정부가 하고 국회는 심의 의결만 한다. 국회에서 예산을 깎을 수는 있어도 늘리지는 못한다. 깎아봤자 겨우 4조다. 이걸 갖고 의원들이 지역사업을 배정받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밖에서 어떻게 하려고 하나. CEO 등 오피니언 리더들과 얘기하면서 행정부 등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나.

행정부 기업인 시민단체 리더들과 많이 만날 예정이다. 시민단체는 시각이 좁다. 모든 것은 상호 의존적인데 이걸 이해 못 한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도 예산과 관련돼 있으니까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졌다. 아직 3년 남았다. 변화가 가능할까.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사회의 이중 구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수로 대변되는 기득권 계층의 일부와 여기에 동조하는 중산층의 일부, 대기업과 대기업 기득권을 가지는 사람들과 나머지와의 갭이 굉장히 빨리 벌어지고 있다. 상위 계층들은 본인들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 것이고 특히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라이센스를 가진 ‘사’자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갭은 자꾸 빠르게 벌어져 가고 있다.

두 번째, 실질적으로 경제적으로 벌어지는 게 가랑비 옷 젖듯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정부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모두 포퓰리즘이다. 이런 한시 정책들은 일종의 진통제다. 올해 중반을 넘기면 지금 쓰고 있는 진통제 효과가 사라지고 우리 사회가 분화되고 있는 부분들이 더 극렬하게 나올 것이다.

■안개가 걷히면서 실제 상황이 보이는 건가.

이번에 쓴 책 이름이 ‘닫힌 세계와 생존 게임’이다. ‘닫힌 세계’는 열린 세계로 표방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에서 닫혔다는 의미다. 이제 신자유주의도 세계화도 아니다. 지금 국가 간의 충돌은 국가 간에 생존 게임이다. 국내적으로 보면 ‘이데올로기 갈등’이라고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이념 대결이나 낡은 이념 같은 용어를 쓰면 웃기지도 않는다. 생존 이권을 사이에 둔 본격적인 이익 패권 전쟁이 국내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회계사와 세무사가 싸우고 공인중개사와 변호사가 싸우고 의사와 간호사가 싸운다. 수축사회가 되니까 살기 어려워지고 지방과 수도권이 싸운다. 우리 국민들은 2~3개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닫혔다고 하는 것은 이익 집단들끼리 닫아놓고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찾으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보면 친목회 같은 것들이 많이 있다. 굉장히 폐쇄적으로 바뀌면서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우리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한다. 이런 것들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하지만 이들은 병원에 잘 안 가니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제도나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면 어떤 부분인가.

우리나라에서 성장 담론이 사라졌다. GDP 대비 정부 부채, 가계부채 등 이런 비율은 분모인 GDP가 늘어나면 해결된다.

여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지금 안 돼 있다. 보수에서는 무조건 규제 완화한다며 대기업 중심으로만 흘러가게 한다. 진보에서는 중소기업, 사회적 약자 중심에 서 있다. 둘 다 중요하다. 둘 다 해야 한다. 정당이 너무 갈라져 있다. 수축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싸우고 국가 간에도 싸운다. 전쟁 중이다. 뭔가를 해야 된다. 다른 나라 하는 것을 우리도 해야 한다.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미래차등 국가 전략 기술에 대한 세액공제를 굉장히 주도적으로 통과시키는 노력을 했다. 민주당은 세액공제율을 10%이상으로 할 용의가 있는데 기재부가 8%를 갖고 왔다. 국민의힘은 아무 의견이 없었다. 8%에서 통과됐고 대통령이 난리쳐서 결국 15%로 결정됐다.

진보 진영에서는 부자 감세라면서 삼성전자가 100조의 현금이 있는데 세금을 왜 깎아주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 지금은 생존 위기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인데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수출을 못하게 돼 있다. 너무나 뻔한 것인데 재생에너지 얘기만 나오면 진보, 좌파, 퍼주기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은 대통령이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정당인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중립적이라는 인식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말이 정쟁용, 공격용으로 인식된다.

■현 상황에 대한 국민적 합의 왜 안 되나.

이중 구조화되다 보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겐 현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부 구조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의 삶이 중요하다. 정치가 먼 미래를 보고 비전을 제시하며 가야 되는데, 국민들한테 설득을 해야 되는데 이 설득 작업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여야가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쓴 경제와 관련된 건 ‘민생 경제’라는 용어다. 기득권은 이대로가 좋고 하부구조는 당장 살기 어려운 ‘민생’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저 멀리 우리가 자손들을 위해서 해야 될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요즘 전문가들은 팽창시대 전문가다. 수축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자기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걸 자기도 모르는 거다. 전문가 중에서 요즘은 이공대 계신 분들이 오히려 사회과학으로 많이 막 나오더라. 이들은 팽창 시대의 논리를 모른다. 새로운 것으로 무장돼 있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공학 전공자가 철학과 역사에 대해 글을 쓰는데 더 현실을 잘 보고 앞서가는 경우도 있다.

정치에서는 AI가 주는 함의를 ‘가짜뉴스’ 정도로 본다. 본질이 아니다.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게끔 알고리즘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고 이미 필터를 다 만들어놓았다. 본인만 모른다. 그래서 AI가 작동한 실질적인 최초의 선거가 이번 선거가 되는 거다.

총선 전략을 짜면서 ‘당신이 믿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강성 지지층만 낳고 중도는 싸우는 것에 지쳐 있어서 투표율이 안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I에 사람들이 지쳐 있다. 알고리즘에 지쳐 있다.

■경제 원리도 옛날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나.

AI가 생각하는 모든 정부는 과거의 정보이기 때문에 전혀 안 맞을 가능성이 크다.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올라가고 그래서 경기가 궁극적으로 침체하게 된다는 식이 일반적인 경로다. 20년 전부터 앞으로는 유동성 함정이 일반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돈을 풀고 금리를 움직여도 물가는 꼼짝도 안 할 것이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것과 우리가 이래야 된다는 당위론의 갭이 많이 벌어져 있다. 옛날 같으면 SNS를 잘해야 된다고 그러는데 아닐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모임은 정치적인 말을 거의 못하게 한다. 카톡방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겠나. 자기들끼리만 하게 될 것이다. 서로 자기 확신만 강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만들고 어떤 선거 전략을 짤 건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것을 요구한 건가.

청년 정책 내야 된다고 하는데 20~30대가 70대보다 적어졌다. 1년에 90만 명이 은퇴하는데 그 사람들이 뭘 제일 궁금해 할까. 자기 노후 아니냐. 건강보험, 노인 일자리에 대한 로드맵이 뭐가 있느냐다. 지난해 연말에 금융권에 피의 숙청이 있었다. 주민번호 6자로 시작한 사람들 다 구조조정된 회사도 있다.

선거 전략도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 700만~800만명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 청년 하면서 내놓은 청년 정책이 뭐냐. 돈 주는 것밖에 더 있었나. 근본적인 게 없다. 청년들도 결국 예측 가능해져야 된다. 본인의 부모님이 직장 다니다 허무하게 잘리는 걸 보면 사회에 대해서 무슨 애정이 가겠나. 회사 그만두는 분에게 회사에서 나름대로 은퇴식도 열어주고 노하우를 활용해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한다면?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외국인 고용촉진법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안 가고 외국인만 들어간다. 은퇴자들로 중소기업 인력문제 해결할 수 있다. 터놓고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답을 내놔야 한다.

핀란드 같은 경우는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정책과 법을 최종 공표 전에 살펴보도록 하고 ‘미래’에 맞지 않으면 실행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노력을 꽤 오랜 기간 해왔다. 이런 식의 구조적인 전환이 안 되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권이 이런 소통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강성 지지층만 남아 있기 때문에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부담될 것이다. 잘못하면 자기 진영에서 오히려 배척을 당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직접 소통하면서 미래학 연구를 더 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나의 견해를 알리기 위한 뉴스레터를 보낸다든지 강의나 언론사 기고를 하고 책도 낼 거다. 이렇게 2~3년 하다보면 대선이 있으니 대선 주자들에게 준비된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더 쉽다.

■생각해 놓은 정책이 있나.

15년 정도 후의 한국 상황을 보자.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이 되고 현재와 같은 속도로 한국의 산업 구조를 가져가고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교육을 계속 한다면 15년이나 20년 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까. 냉정하게 한번 보자. 인구 연구한 사람은 인구 얘기만 한다. 산업 구조 얘기하는 사람은 산업 구조만 얘기하고 국토 균형 발전 얘기하는 사람은 그거만 얘기한다. 이걸 통합으로 섞어서 2030년 2035년 2040년에 한국이 어떨까를 보게 되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굉장히 비관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제로섬이다. 다른 나라는 더 심하고 엉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똑똑하다. 조만간 학습이 될 것 같다. 대통령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의 리더 그룹이 집단 지성 형태로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된다.

미국의 리더 그룹이 중국 견제에 대해서는 정당의 차이가 없다. ‘중국한테 지면 미국은 끝’이라는, ‘달러 패권도 끝이고 미국은 큰일 났다’는 것에 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를 시킨다. 모델이 형성된 거다. 미국이 중국한테 경제적으로 밀리게 되고 달러 패권을 잃게 되면 미국은 물가도 많이 올라가고 정말 어려워진다. 또 미국이 과학기술의 패권을 놓친다든가 그리고 미국의 세계 경찰자리를 놓쳤을 때 미국의 영향력이 줄게 되고 미국은 더 암담해진다는 것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다.

반대로 중국 입장에서는 만약에 중국이 미국을 엎어버린다면 위안화가 국제화 형태로 되고 지금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전 세계로 진출하게 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컨센서스가 중국의 또 공산당원들의 상위 그
룹에 있고 그런 것이 집단 지성 형태로 풀어나간다는 거다.

우리나라 역시 안보 문제 등 모든 곳에서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집단지성을 막는 걸림돌은 무언가.

냉정하게 봤으면 좋겠다. 인류 역사는 팽창 시대의 역사에서 수축 시대로 넘어가다 보니까 팽창 시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렇지 그러나 나는 달라’라거나 ‘맨날 하던 얘기다’, ‘나는 내 방식대로 갈래’ 등을 얘기한다. 진짜 바뀌는 게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을 해야 진짜 바뀐다. 30년 전을 생각해 보자. 당시 인구가 줄었나, 기계가 얼마나 발달했나, 스마트폰 있었나. 인정하라는 거다. 달라졌는데 방식은 과거형이다. 과거 중국이 우리나라에 수출한 게 뭐가 있었나.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매일매일 확인하면서도 본인의 사고와 행동은 옛날식을 유지하고 현재 자기가 유지하는 스탠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 아니냐. 그게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거다. 우리 사회 지도층들이 집단 지성으로 자기기만에서 벗어나게 바꾸고자 했을 때 다른 나라도 엉망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당연히 이길 수 있다.

■충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집단적으로 바뀌는 게 가능한가.

앞으로 IMF와 같은 충격의 시대는 오지 않는다. 2년 전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번에 코로나 끝나면 어려워진다’고 했다. 왜 가랑비냐면 소나기보다 더 태풍처럼 오는데 암에 진통제를 투여하듯 대증요법을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빗줄기가 약하게 느껴지는 거다. 비를 맞아도 진통제 때문에 추운지 잘 모른다. 나중엔 내성이 생겨 진통제가 잘 듣지도 않는다. 진통제 계속 맞다가 결국 죽는다.

빅 히스토리라는 학문이 있다. 빌게이츠도 이 학문에 영향을 많이 받고 기부도 많이 하게 됐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 리더 그룹들 중 일부가 우주의 큰 역사부터 지금 현재의 인간의 뇌 구조까지 들어가며 발달사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읽다 보니까 이주입마(마가 내 몸을 치고 들어왔다)와 같이 우주에서 인간은 먼지의 먼지의 먼지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아등바등 사는 게 내가 보기에는 좀 그렇다.

‘무조건 재선되는데 왜 그만두냐’고 하는데 사실 빅히스토리를 어떻게 얘기하나. 기계가 인간을 추월하는 순간이 이미 상당 부분 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뭐 가 달라지겠나. 오히려 해법을 잘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도 어려운 결단이다.

나는 기득권을 내려놓은 거다. 평상복 입고 백팩 메고 다니고 전철 타고 다니면 되는 거다. 기사 있는 차 탄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전철 타면 책을 볼 수가 있다. 승용차 타고 책 보면 눈이 안 좋아진다. 생각을 그렇게 바꾸면 된다. 오영환 이탄희 의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개인적인 성향이 굉장히 강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다.

■불출마, 언제부터 생각했나.

4년 전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당에서 나에게 지역구를 줬고 또 나를 따르는 지지자들이 있는데 그래서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더 열심히 했다. 내 가치를 지키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책임감이다. 국회의원은 리더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총선 공약 어떻게 준비하나

대선 공약과 총선 공약은 차이가 있다. 공약은 큰 거대 담론이나 국가의 방향성 그리고 현재 당장의 문제, 이 두 가지가 결합되는데 대선은 7 대 3으로 골격을 강화하고 작은 정책이 뒤따른다. 총선은 반대로 민생이나 직접적인 정책들이 6정도라면 거대담론은 4정도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결국 하나로 지배하게 된다. 지금 나와 있는 게 정권 심판론과 정권 지원론인데, 그럼에도 정책은 중요하다. 총선에서 얘기한 거는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국회 밖으로 나가서 혼자 공부하면서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둔 또 좋은 아이디어들을 한번 탐구해 보려고 한다.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되고 자료도 많이 봐야 된다. 국회의원 했던 게 좋은 경험이다. 정부 측 자료가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됐다. 어디 가면 어떤 자료가 있고 또 그걸 입수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법을 이렇게 만들면 되는구나’를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기업 CEO와 행정 리더십은 어떻게 연결이 될 것 같은가.

전체 운용 원리는 거의 비슷하다. 많은 조직이 군대, 일반 사단급 편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민간 기업들은 목표를 제시하고 사장이 직접 뛴다.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산다. 사기는 무슨 계획으로 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되는 것이다.

장관들 우리 행정부의 관료들이 수명이 너무 짧아서 장기적으로 일할 수 없는 게 행정부의 가장 큰 문제이고 두 번째 문제는 어떤 정책이나 어떤 방향에 대한 이해도가 밑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후 점검을 안 하다 보니까 많은 사고가 난다. 위에서 계속 점검도 하고 책임감을 주고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설명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전문 경영인 중엔 권위에 중독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리더답지 않은 리더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까 조직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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