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인간-동물

은행이 탄소배출? 커지는 재무건전성 우려

2024-02-26 13:00:02 게재

거래처 배출권 구매비 등 기업들 부담 한둘 아냐

환경·사회·투명경영, 논란에도 향후 나아갈 방향

환경이 새로운 시대 흐름 원동력이 되고 있다. 환경·사회·투명경영은 물론 동물복지까지 일반화하는 시대. 더 이상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조류 등 생물들의 움직임은 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에 따라 농장이 형성되는 등 파생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결국 환경을 화두로 경제 문화 복지 건강 등 다차원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대다.

“굴뚝 공장이 없는 금융회사라고 해서 온실가스배출량이 적다고 볼 수 없어요. 금융배출량(금융기관이 대출·투자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오히려 발전회사 보다 많은 양을 뿜어낼 수 있죠. 온실가스 회계처리 및 보고기준(GHG Protocol)에서 정의한 스코프(Scope·유효범위) 1 2 3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21일 온라인과 서울 은평구 진흥로 215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열린 ‘제 11회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온(ON)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월 열리는 이 세미나에서는 기업들이 환경·사회·투명경영을 위해 알아둬야 할 정보들을 제공한다. 지난 1월 참석자 수만 약 1000여명으로 기업들의 환경·사회·투명경영 고민은 상당하다.

철강 분야 중견기업 A업체 관계자는 “체코에 법인이 있기 때문에 2025년부터 유럽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한다”며 “게다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거래처의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발생하는 세금성 지출 절감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환경·사회·투명경영 전략이나 목표 진행 상황 등은 물론 △제품 및 서비스 △비즈니스 관계 △공급망 정보 등을 공개해야 하는 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제조업 중심 구조로 이행 손실 우려 커 = 21일 김진혁 신한은행 ESG기획실 수석은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손실 우려는 낮은 편이지만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파생되는 이행 손실 우려는 높다”며 “이들 손실 우려는 기업의 자산가치 하락과 고탄소산업의 수익성 하락 등으로 이어져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물리적 혹은 이행 손실 우려 등 기후 손실 우려로 인한 실물 경제 충격은 신용·유동성 손실 우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 손실 우려로 확산될 수 있다”며 “물리적 손실 우려와 이행 손실 우려는 각국의 기후·환경적 특성이나 산업 구조에 따라 좌우되거나 상충적일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손실 우려를 함께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리적 손실 우려는 이상기후가 증가하거나 장기 기후패턴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다. 이행 손실 우려는 탄소 감축 규제 시행 및 탈탄소 자금 흐름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상승 등 급격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이다.

21일 최흥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환경·사회·투명경영 명칭이 바뀔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며 “금리를 유리하게 조달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온실가스를 덜 뿜어내는 구조로 전환하는 속도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익성이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시대적 흐름이라는 얘기다.

김 수석은 “녹색금융협의체(NGFS)는 물리적·이행 리스크가 최소화하는 기후변화 대응 시나리오 ‘질서 있는 전환’을 제시한 바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에 더 많은 민간 자본이 유입되도록 녹색금융이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소 시간차가 있겠지만 중소기업도 환경·사회·투명경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EU 위주로 환경·사회·투명경영이 활성화하고 있지만 몇 년 안으로는 연쇄적으로 중소기업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녹색금융 중 하나로 지난해 도입된 녹색자산유동화증권이 있다. 신용도가 낮아 채권 발행 등 녹색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이 대상이다. 녹색사업을 희망하는 기업에게 회사채 발행금리를 최대 3억원(중소기업은 4%, 중견기업은 2% 이자 보전)까지 지원해 준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만 71개 기업이 녹색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21일 온라인과 서울 은평구 진흥로 215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제 11회 환경·사회·투명경영 온(ON)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 김아영 기자

◆외부 검토기관을 독립적으로 감독해야 =

사실 녹색금융은 최근 새롭게 도입된 개념은 아니다. 녹색성장을 내세운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해당 개념이 도입됐지만 민간시장에 정착하기도 전에 흐지부지 끝나버린 게 사실이다.

21일 이근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는 “이명박정부 시절과 최근 국제 추세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EU의 그린 택소노미(친환경 분류체계) 등 각종 규정들이 잇달아 나오는 만큼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친환경 분류체계는 어떤 에너지나 사업이 친환경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목록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EU의 그린 택소노미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바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분류해 친환경 산업에 투자가 많이 유치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친환경 위장(그린워싱) 논란을 최소화하려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환경 위장은 일반제품이 친환경 소재로 만든 것처럼 상품 설명을 속이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파트너변호사는 “EU의 그린 택소노미와 그린 본드(녹색 채권) 규정 적용은 시간이 흐를수록 엄격해 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도 이 영향을 1~2년 내에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에 좀 더 세밀하게 녹색채권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U의 그린 본드 규정에서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에서 외부 검토기관을 굉장히 엄격하고 독립적으로 규제하도록 감독 체제를 뒀다”며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적합성 판단 기준 중 보호 기준을 ‘이 기준을 지키겠다’ 식의 다짐 정도로 규정한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업이 녹색분류체계에 적합한지 여부는 △활동기준 △인정기준 △배제기준 △보호기준등 네 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보호기준은 해당 경제활동이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지 판단한다.

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 알쏭달쏭 환경용어 설명

●스코프 1 2 3 = 스코프1은 기업이 소유하고 관리 및 통제하는 발생원에서 생기는 온실가스다. △연료와 열을 만들어내는 열원(Heat Sources) 등 고정적인 연소(Stationary Combustion)와 △자동차 트럭 기차 등 기업이 소유하거나 임대한 모든 운송 수단을 운용하기 위한 이동 연소(Mobile Combustion) △공장의 매연 등 산업 공정과 현장에서 제조될 때 나오는 프로세스 방출(Process Emissions) 등이 해당한다.

스코프2는 기업에서 간접적으로 내뿜는 탄소다. 기업이 구매해 소비하는 전기 스팀 등에서 발생한다. 스코프3은 기업의 가치사슬 상에서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금융배출량 = 금융회사가 대출 투자 등의 금융을 제공함으로써 거래 상대방에게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탄소금융회계협회(PCAF) 방법론에 따라 산출한다.

탄소금융회계협회는 금융기관의 금융거래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공개하도록 탄소회계 표준을 제공하는 국제 민간 협의체다. 금융기관의 자산군을 △상장주식 및 회사채 △기업대출 및 비상장 주식 △상업용 부동산 등 6개로 구분해 각각의 측정 방법론을 제시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 =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할 경우 EU 제품과 동등하게 환경 관련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을 EU로 수출 시 상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배출량에 따른 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했다.

EU는 2025년 12월까지를 전환(준비) 기간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분기별로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당장 첫 의무 보고 시한은 3월 1일까지다. 정해진 첫 기한 내에 보고 등록을 마치지 않으면 벌금을 낼 수도 있다.

●탄소배출권제도 =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 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다.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면 기업들은 당연히 시설 개선 등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 진행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온실가스 추가 감축 비용이 배출권 가격보다 낮아야 직접 감축에 투자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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