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밀도 차이와 정치인의 변신
물과 기름은 왜 섞이지 않을까. 바람은 왜 불까. 고체 액체 기체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흔하기 때문에 그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모두 자연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한번쯤은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앞서 열거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밀도’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제각각의 밀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밀도란 물질을 구별하는 중요한 특성으로 밀도의 차이에 따라 밀거나 당기는 등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하는 것이 바로 자연현상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밀도의 정의는 ‘단위 부피에 대한 질량값’이다. 우리 생활에서 밀도라는 말은 흔히 사용되지 않지만 우리 환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모두 이와 연관되어 있다. 공기 밀도가 높으면 고기압, 낮으면 저기압,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기 때문에 구름을 몰고 흘러가버리므로 고기압 지역은 날씨가 쾌청하다.
흔히 ‘해류’라 부르는 바닷물의 흐름은 취송류 밀도류 경사류 보류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경사류를 제외한 모든 원인은 밀도와 관련이 깊다. 취송류의 원인인 바람은 공기의 밀도로 발생하고, 밀도류의 원인은 염분의 밀도나 온도차에 의한 물의 밀도로 발생한다.
자연의 순환은 기본적으로 밀도 차이 때문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이유도 밀도 차이 때문이다. 즉 물의 밀도가 기름의 밀도보다 높아 기름이 물 위에 뜨는 것이다. 고체 액체 기체를 나누는 기준 또한 밀도차다. 일반적으로 고체는 분자들이 매우 빽빽하게 모여 있는 상태라 밀도가 높고, 액체는 고체에 비해 거리가 멀어 고체보다 밀도가 낮다. 기체상태의 분자들은 매우 자유롭고 거리가 멀다. 물론 물질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고체 액체 기체 순으로 밀도가 높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 자연현상과 달리 예외가 있는 물질이 바로 ‘물’이다. 물은 다음의 유일한 두가지 특성이 있다. 첫번째는 물의 밀도가 액체 고체 기체 순으로 고체인 얼음의 밀도는 액체인 물의 밀도보다 낮다. 물은 오각형 구조인데 얼면 수소결합에 의해 육각형 구조로 변하면서 부피가 약 9% 커지게 된다. 즉 밀도가 그만큼 낮아진다. 얼음이 물에 뜨는 원리가 여기서 설명된다. 두번째는 고체 액체 기체 세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물질은 오직 물 뿐이라는 것이다.
호수의 물이 어는 현상을 보면 물은 4℃가 되면 밀도가 가장 커져서 가장 무거운 상태가 되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게 되고 아래에 있던 따뜻한 물은 표면으로 올라온다. 올라온 물은 다시 4℃로 냉각되어 아래로 내려가고 따뜻한 물이 올라오는 반복적 순환을 하다 전체온도가 4℃가 되면 순환을 멈춘다. 이때 표면 온도가 0℃가 되면 표면부터 얼게 되는데, 만일 얼음이 물보다 밀도가 커서 호수의 바닥부터 얼게 된다면 호수의 물고기들은 모두 얼음속에 냉동될 것이다. 즉 물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물속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도 역시 날개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형태를 다르게 해 위아래 공기 흐름의 빠르기에 의한 압력차, 즉 밀도차에 의해 떠오를 수 있는 양력을 얻는 원리다.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에 살았던 수학자로 원주율이 3.14라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이다. 그는 왕관이 순금인지 다른 금속이 섞였는지를 알아내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고심하다가 물질은 무게가 같을지라도 밀도에 의해 부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목욕탕에서 떠올리고 알몸으로 뛰어나가며 ‘유레카’를 외쳤다는 사실로 유명하다. 그래서 같은 무게의 황금과 왕관을 물에 넣어 왕관의 부피가 큰 것을 발견하고 밀도가 작은 은이나 구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변신 물먹듯 하는 정치인의 밀도는 무엇
이렇듯 밀도는 물질을 구별하고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확실한 지표가 되지만 유독 사람에게는 적용이 어려운 듯하다. 수십년간 파란색이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는 등 적도 동지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 있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득실대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칼 슈미트가 외친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水深可知人心難知)’다는 옛 말은 그른 게 없다.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