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프랑스라는 거울에 비춰본 의료대란
근대 의료의 압축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료 시스템은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일본(84세)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기대수명(83세)은 상징적인 결과다.
국제적으로는 3개의 의료 시스템이 눈에 띈다. 자유시장에 근접한 미국은 의료혜택의 사회 불평등은 심각하나 첨단 의료는 세계 최고다. 사회주의적 의료 제도의 영국은 서비스는 저렴하고 평등하나 수술을 받으려고 몇달씩 대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 시장과 국가의 원칙을 적절하게 혼합한 성공적 모델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의료지출(12%)은 미국(16%)보다 낮고 영국(11%)과 비슷하나 기대수명은 82세로 미국(77세)이나 영국(80세)보다 높다. 미국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낳으며 영국처럼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대기시간이 열악한 상황은 아니다. 프랑스 의료의 거울에 한국을 비춰볼 만하다는 뜻이다.
한국 의료대란의 출발점은 의대 정원과 의사수다. 한국의 의사수는 14만명 정도이고 프랑스는 23만명 수준이다. 프랑스가 훨씬 많다. 의대 정원도 한국이 3000명, 프랑스는 2023년 현재 1만5000명 정도다. 한국은 더 적은 수의 의사로 프랑스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내니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한국의 의료지출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GDP 대비 10% 이내다.
의대 정원과 시스템에서 유연성 도입
한국의 효율성은 한국 의사들이 더 많이, 더 빨리, 더 오래, 더 비인간적으로 일해서 얻어낸 결과다. 왜 그럴까? 한국은 국가가 낮은 수가를 강제함으로써 의사의 소득을 통제한다. 그런데 비싼 등록금의 의대 교육은 개인이 부담한다. 의사가 열심히 일해 투자한 비용을 뽑아내는 모양새다. 반면 프랑스는 의대 교육이 무료다. 10년간 교육비용 20만유로(한화 3억원)를 국가가 부담한다. 의대 등록금은 1년에 260유로(39만원)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국민의 세금으로 키워낸 의사들이 여유롭게 일하고, 한국은 자비로 공부한 의사들이 과로로 기대소득을 채우는 시스템이다.
정부에 따르면 의사를 늘리면 의사들이 편해지고 좋은 데 왜 기어코 반대할까. 여기서도 프랑스는 좋은 거울이 된다.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2020년까지 50여년간 정부와 의사단체, 의대가 함께 결정하는 정원제를 운영했다. 다만 그 정확한 숫자를 매년 조정하는 유연한 제도였다. 1972년 8500명으로 시작한 의대 정원은 1993년 3500명까지 내려갔다가 2018년 8200명까지 다시 오르는 U자 흐름을 보였다.
2019년 의대 정원제를 철폐한 프랑스는 전국 의대가 자율적으로 키워내는 의사수를 정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했다. 유럽통합으로 의사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EU 의료시장이 형성돼 프랑스만의 정원이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의대 정원 축소를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이다. 유로화 출범을 앞두고 재정적자를 줄여야 했던 프랑스정부는 의사수 축소가 의료지출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의사수와 의료 지출은 비례한다는 증거다.
한국 의대 정원 논의는 필수의료 공백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프랑스는 한국만큼 필수의료 공백이 심하지는 않다. 프랑스 의사는 3개의 섹터에서 고를 수 있다. 국가가 정한 수가만 받는 섹터, 수가보다 더 받지만 크게 초월하지 않는 섹터, 완전히 자유롭게 의사와 환자가 합의한 가격이 적용되는 섹터다. 의대 정원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에 유연성을 도입해 문제를 점진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하는 방식이다.
정책 추진의 폭력성, 심히 우려스러워
한국의 의료대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정책 추진의 폭력성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특정 정원의 수치를 휘두르며 면허를 정지하겠다며 의사들을 협박하는 모습이나 사안의 복합성을 외면하고 집단으로 의사 때리기에 동참하는 사회는 모두 성숙한 자유 민주주의보다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가깝다.
인구정책의 참담한 실패에서 확인하듯 장기적 정책은 아무리 겸손하고 조심스러워도 과하지 않다. 게다가 의사와 국민을 감정적으로 대립하게 이끄는 정부의 태도는 심히 우려스럽다. 프랑스에서 보듯 의사와 함께 협의하면서 계획·운영하지 않는 의료의 미래는 없다.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맡기는 의사들에게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