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헌재 재판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정보를 수집·처리하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감시능력은 현저히 증대된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정보의 노출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개인의 자기정보에 대한 결정의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기본권으로서 정립되었다. 지난 목요일에 헌법재판소가 중요한 결정들을 많이 쏟아냈는데 필자는 코로나 관련 이태원 기지국 접속자 정보수집사건에 대한 헌재결정에 눈길이 간다.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조항은 질병관리본부장 등으로 하여금,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의료기관, 법인이나 개인 등에 대하여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요청을 받은 국민은 이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020년 봄에 긴 연휴 이후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해당 감염자가 연휴기간 동안 이태원 소재 클럽 등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후 이태원 지역과 관련된 누적 확진자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장은 앞에서 말한 법조항에 근거해 해당기간 내 감염이 우려되는 이태원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의 기지국 접속자 정보를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자료요청 하였고, 전기통신사업자들은 기지국 접속자 정보로서 날짜별 이름 및 전화번호를 회신한 것이 문제가 된 사건이다.
광범위한 개인정보 침해 정당화한 결정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문제된 법조항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렸다. 문제된 법조항이 본인의 동의 없이 그 개인정보를 수집·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는 아니라고 판시한 것이다. 문제된 법조항은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수집을 감염병 예방 및 감염 전파의 차단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해 그 목적 및 대상을 제한하고 있고, 정보수집에 관한 사후통지 등 절차적 통제장치도 마련되어 있어 감염병 예방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제한이라는 점을 합헌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헌재결정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 법조항은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전화번호”등의 자료제공만 허용하고 있는데 3개 통신사업자들은 이태원 부근 기지국 접속자 정보로서 날짜별 이름 및 전화번호를 회신하였기 때문에 해당기간 안에 이태원 부근에 있던 약 1만명이 넘는 개인의 ‘위치정보’까지 수집한 셈이다. ‘위치정보’라는 중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또 다른 제한이므로 별도의 법률조항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법에 없는 ‘위치정보’ 수집은 위헌이다. 둘째, 헌재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과잉금지원칙의 한 세부원칙인 ‘피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 해당기간에 이태원을 방문한 일반 시민들까지 일률적으로 ‘감염병의심자’로 보면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광범위한 제한을 허용한 것이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제한’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헌재결정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의 중요성보다는 방역의 필요성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광범위한 개인정보 침해를 정당화한 결정이다.
인권감수성 충만한 헌재재판관 늘어야
이러한 헌재결정이, 그것도 만장일치 결정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 9명의 헌법재판관이 모두 현직판사 출신이라는 점도 한 이유라고 믿는다. 판사란 그 직업적 특성상 ‘실정법’을 무오류성을 지닌 완벽한 규범으로 전제하고 이를 구체적인 민·형사 사건들에 적용하는 일을 주로 해온 분들이다. 법률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인권친화적 관점에서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분들이 과연 평생을 판사로만 살아온 분들 중에 더 많은 것일까?
올해만 해도 소장을 포함해 4명의 헌법재판관들이 임기 만료로 교체될 예정이다. 실정법의 위헌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인권감수성 충만한 변호사 출신의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재판관으로 많이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