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서구는 왜 기후지경학을 앞세울까
지난해 캐나다 하와이 남부유럽에서 일어난 대규모 산불과 브라질 그리스 홍콩 리비아 대만에서의 홍수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아랍에미리트 중국 케냐 브라질에서의 홍수 등 기후재해에 관한 놀라운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1992년에 전세계 185개국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리우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 및 ‘생물종다양성협약’에 합의하고, 1990년을 기준으로 2008~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2%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은 50% 증가했고, 약 100만종의 식물과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인류는 코로나19 등 새로운 전염성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다.
국가별 이해관계 달라 ‘기후변화 국제협약’ 성과 미진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국제협약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미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단합된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모든 국가에 동등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국가의 지구물리학적 위치에 따라 위험의 정도가 다르고 오히려 유리한 국가도 존재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존재하는 관점의 차이와 신뢰 부족도 한몫을 한다.
2019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탐욕스러운 벌목꾼 목장주 농부 광부들이 세계 최대의 아마존 우림을 개발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태학살’을 했다”라고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보우소나루는 마크롱이 브라질을 마치 “식민지나 무인도”처럼 대한다고 분노했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두개의 서로 다른 지도, 즉 지구의 자연생태적 상태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지구물리학적 지도와 지구의 표면을 독립 영토 단위로 인위적으로 구분한 지정학적 지도가 충돌하고 있다. 마크롱은 전자를, 보우소나루는 후자를 대변한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최근 서구 선진국들은 지정학적 지도보다 지구물리학적 지도를 앞세워 국가의 주권은 특권뿐만 아니라 의무도 수반한다는 새로운 논리로 국가의 환경보호 의무를 주장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 논리를 기후 문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교묘한 술책이라고 비난한다.
당초 국제적으로 합의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선진국들이 의무적으로 수행하고 개발도상국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권장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문제가 급부상하자 선진국들은 각종 무역수단을 통하여 개발도상국들의 탄소배출 감축을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 등 탄소집약적 제품 수입 시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관세를 부과한다.
COP33 유치로 ‘기후악당’ 불명예 벗고 정책 혁신 계기로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저렴한 전력 공급의 혜택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혜택을 유지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은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주도하고,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는 글로벌중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며, 에너지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다. 또 미중경쟁으로 인한 지경학적 분열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
우선 2028년에 개최되는 제33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33)를 유치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지난해 말 COP28에서 세계 기후환경단체가 ‘기후 악당’들에게 수여하는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한 불명예를 회복하고 기후 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로 삼자.
임종식 지경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