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북한의 중국 사절 홀대와 ‘불편한 동행’

2024-05-16 13:00:00 게재

북중 수교 75주년 및 ‘우호의 해’를 맞아 자오러지(趙樂際)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했다. 최근 북러 밀착에 대한 견제 목적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그러한 성과는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양측 논조에 온도 차이를 보였다.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인민일보는 자오 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에서 실무적인 상호이익과 공동이익 수호를 강조하고 “발전 연계 강화”를 희망했다고 밝혔지만 노동신문은 양측의 관심사 및 중요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만 보도했다.

중국은 일방적 시혜가 아닌 공동이익을 나누는 호혜관계의 틀 속에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DI) 전략을 북한에 적용한다는 시그널을 보냈지만 북한은 불편한 심기로 관련 내용 공표를 기피한 것으로 보인다.

호혜 협력과 공동이익 수호는 중국 주변국외교의 기본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중-북 사이에 특수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국가관계’ 적용을 둘러싼 미묘한 냉기가 묻어난다.

실제로 김정은의 자오 면담이 마지막날 귀국에 앞서 오찬과 함께 진행된 점도 냉담한 반응으로 읽힌다. 그것도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중국대표단을 단체 접견했다. 이는 실질적인 협력 논의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자오가 시진핑 주석의 5년 전 방북 이후 최고위급인 서열 3위의 특별대표임에도 지난해 7월 정전협정 70주년에 파견된 리홍중(李鴻忠) 특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의전을 반복한 것이다.

중국의 대북 관계는 전략적 관리가 우선

이는 2018년 9월 방북했던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김정은 바로 옆에서 사열을 받던 모습과 선명한 대비가 된다. 당시는 열병식 이외에 별도의 환영공연과 성대한 연회를 마련했었다. 아무튼 부자연스럽고 뭔가 잠복된 갈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2013년 7월 정전협정 60주년에 방북했던 리위안차오(李源朝) 국가부주석도 도착 당일 김정은과 공식면담을 갖고 열병식, 아리랑 공연, 축포 야회까지 김정은과 동행했다.

그런데 지난해 70주년에 참석한 리홍중 특사는 정치국원 동급임에도 크게 홀대를 받았다. 당시 방북한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첫날 김정은과 공식 면담은 물론 별도 단독회담과 오찬, 환영연회 등 환대를 받은 바 있다.

이어서 작년 9월 북한 창건 75주년에도 류궈중(劉國中) 부총리가 축하사절로 방북했지만 김정은 옆자리가 아닌 중앙에서 4번째에 배석해 열병식을 관람하는 냉담한 취급을 당했다.

이같은 홀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을 배려하고 우호관계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다. 동북아 정세 악화 방지와 북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행보다. 북중관계는 잠재된 불신과 갈등이 얽혀 있다. 빈번한 교류의 내막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이다. 경제지원은 꼭 필요한 만큼의 최소 수준을 유지한다.

양국 간 ‘불편한 동행’의 뿌리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중국과 공동 연대를 목표로 하지만 중국은 북한을 ‘관리’ 대상으로 인식한다. 중국은 북러 밀착에 대한 우려보다는 미중 관계와 경제안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정은의 신냉전 인식과 북중러 진영화 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북한이 과거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중-소 등거리외교, 대미 지렛대 외교를 구사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던 경험을 중국은 꿰뚫고 있다.

한중수교로 냉각되었던 북중관계가 김정일 집권 말기에 완전 회복되는 듯했지만, 김정은이 중국의 만류를 무시하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시진핑 정부와 신뢰가 무너졌다. 시진핑은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파격으로 평양에 경고를 보냈고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했다. 취임 7년 만에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누적된 불신은 남아있다.

중국의 대북 딜레마는 우리의 기회 공간

이 같은 딜레마에 중국은 실사구시로 접근한다. 당연한 듯 수반되던 고위급 방북의 선물 규모도 줄었다. 대안친선유리공장이나 신압록강대교 건설 지원과 같은 보따리 선물외교는 더 이상 없다.

고위급 교류 때마다 중국은 ‘전략적 소통’을 강조한다. 전략적 협력이 잘 안된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갈등과 협력의 동반자 사이의 ‘불편한 동행’ 프레임은 지속 작동될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중러 연대의 한 축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기회다. 북핵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는 중국의 협조가 여전히 필요하다.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한 세력균형이 우선이지만, 그래도 국가이익에는 실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신봉섭 광운대 초빙교수 전 중국 심양주재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