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노소영에 1조3천억 줘라"

2024-05-31 13:00:18 게재

법원, 노태우비자금 SK 유입 인정 … 불법자금 현재이익 보호, 논란 일듯

최태원·노소영 이혼 2심 판결이 나오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주) 주식 등 모든 재산을 분할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에게 1조원 넘는 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 부장판사)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이 SK(주) 주식은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본 것과 달리 2심은 분할 대상으로 봤다. 서울고법은 두 사람의 재산 총액 4조115억원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 비율로 분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1심에 비해 약 20배 뛴 것으로, 국내 재벌가 이혼 소송 중 역대 최대 규모 재산분할 금액이다.

이같은 법원의 판단에는 위자료 산정에서 최 회장의 유책 행위가, 재산분할에서 노태우비자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먼저 위자료의 경우 최 회장의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관계가 결정적 근거로 됐다.

재판부는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SK이노베이션은 노 관장의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는 반면, 상당한 돈을 출연해 김 이사장과 티앤씨를 설립한 것과 대비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노 관장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별거 후 김 이사장과 생활하면서 최소 219억원 이상의 지출을 했고, 한남동에 주택을 지어 김 이사장에게 무상거주하게 하는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점을 봤을 때 1심 위자료 1억원은 너무 적다”고 밝혔다.

또 재산분할의 핵심 쟁점인 노 관장이 재산형성에 기여했는지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할과 영향이 큰 역할을 했다.

노 관장측은 1990년대 노 전 대통령이 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의 비자금을 전달했고, 이는 SK 사업자금으로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측은 태평양증권 인수나 이통동신사 사업진출에 사용한 자금은 그룹 계열사에서 모은 돈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과정에서 오랜 공식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지지 않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자금의 실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1991년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발행한 50억원짜리 6장, 총 300억원어치 약속어음을 언급하고 “300억원이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주식 인수를 비롯해 선경기업 경영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이를 비자금이라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노 관장측이 주장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의 SK 유입을 인정했다.

이같은 법원 판단은 불법한 자금도 현재의 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고 공소시효가 지난 불법한 자금은 그 기대 이익까지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기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추징금 납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재계에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이미 완납한 추징금 외에 추가적인 비자금이 있다면 과거 추징금이 ‘과소 추징’ 되었다는 논란과 함께 그 이익이 어디로 귀속되어야 하냐는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법원 판결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노 관장 대리인인 김기정 변호사는 이날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 주의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주신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고 반응했다. 그는 “무엇보다 거짓말이 난무했던 사건이었는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느라 애써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반면 최 회장측 대리인은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고 상고할 뜻을 밝혔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자금 유입 등과 관련해선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최 회장은 재판 기간 회사와 사회 구성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이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을 상대로 낸 부동산인도 소송의 첫 재판이 31일 열린다. 노 관장이 관장으로 있는 곳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앙법원 민사36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이날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부동산인도 등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부동산인도 소송은 부동산을 점유할 권리가 없으면서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법적인 절차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8일과 11월 22일 두 차례 조정기일을 열었으나 SK이노베이션측이 노 관장측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정식 재판으로 이어졌다. SK서린빌딩은 SK그룹 계열사들이 대거 입주해 있어 그룹의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는 이 건물 4층에 위치한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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