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1회용 전자담배 퇴출 중…국내선 청소년 이용률 증가

2024-06-04 13:00:37 게재

일반담배 흡연 통로 … 환경 파괴 논란

가격 인상만으론 정책 효과 왜곡 가능성

미국 브랜드 ‘쥴(Juul)’의 국내 시장 철수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1회용 액상형 전자담배(1회용 전자담배)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1회용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청소년이 증가하자 세계 각국이 판매 금지 등 강력한 규제에 나서는 가운데 국내서도 이에 따른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 글로벌 담배 회사가 한국에서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1회용 전자담배 출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합성 니코틴은 담배에서 추출되는 천연 니코틴과 달리, 실험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뱃잎을 원료로 한 제품만 규제 대상이라 온라인은 물론 자판기 판매도 가능하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 ‘규제 공백’을 노렸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 액상형 전자담배가 진열돼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유통·판매에 추가 규제 필요 =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합성 니코틴 제품을 담배에 포함해 과세하고 제품 포장 등 유통방식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회사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합성 니코틴 제품 출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에선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론이 확산되자 정부도 합성 니코틴 제품을 담배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해성이나 금연 정책, 특히 청소년 이용률 증가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조급한 결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자칫 1회용 전자담배 시장을 양성화하는 결과만 낳아 정책 효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영국 EU 등 선진국들의 경우 ‘합성 니코틴’과 ‘천연 니코틴’을 구분하지 않고 규제하고 있다.

특히 1회용 전자담배의 경우 세금 인상 등의 가격정책에 그치지 않고 아예 판매를 금지하는 추세다.

◆선진국 앞다퉈 판매금지 = 실제로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19일(현지시간) 니코틴이 함유된 1회용 전자담배 출시를 금지하는 벨기에 정부 규정을 승인했다. 벨기에는 앞서 2022년 말 발표한 이른바 ‘담배 없는 세대’ 명칭의 중장기 금연 전략에 따라 2026년 1월부터 1회용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집행위 승인은 EU 회원국 개별적으로 담배 제품과 관련한 시장 개입 조처를 할 경우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규정에 따른 절차로, 판매 금지가 확정됐다는 의미다.

프랑스도 상원에서 1회용 액상 전자담배 금지 법안 심의에 들어갔다. 이 밖에 아일랜드 독일 폴란드도 유사한 입법을 준비하거나 추진 중이다.

유럽 각국이 1회용 액상 전자담배를 시장에서 퇴출하려는 것은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런 움직임은 비단 유럽에서만이 아니다.

미국은 2020년 과일 향이 나는 1회용 전자담배 ‘퍼프바’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10대 청소년의 흡연을 부추긴다는 이유다.

호주는 1회용 액상 전자담배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또 1회용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조·광고·공급을 금지하는 법안도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22년 ‘전자담배 감독 강화에 관한 고시’를 통해 “각종 과일 향이 첨가된 액상 전자담배의 생산·유통·판매 행위는 전면 금지되며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명시했다.

◆청소년 흡연 통로 역할 = 이런 배경에는 1회용 전자담배가 청소년들이 일반담배 흡연으로 넘어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우려감이 있다.

질병관리청의 ‘2023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중1~고3) 남학생의 1회용 액상 전자담배 사용률은 3.8%로 나타났다. 전년(4.5%)보다는 소폭 감소한 수치지만 2020년 2.7%, 2021년 3.7%였던 것을 고려하면 증가세다. 여학생의 경우 2022년 2.2%에서 지난해 2.4%로 증가세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세계 흡연실태보고서에서 전자담배와 유사 기구를 이용하는 아동은 담배 제품을 사용할 확률이 최대 3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회용 전자담배의 경우 일반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에 비해 냄새가 적고, 담배 같지 않은 디자인 때문에 청소년들이 몰래 휴대하며 흡연하기 편하다. 일반담배에 비해 어른에게 들킬 염려가 적다는 것이다.

◆성인 70% 제품 식별 못해 = 서울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전국 5개 광역시 만 20세에서 59세 사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일회용 액상담배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일회용 액상담배를 음료수, 화장품, 향수, 장난감 등으로 오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응답자의 약 60%가 ‘담배처럼 보이지 않는 디자인과 색상’을 꼽았다.

김태민 서울소비자공익네트워크 대표는 “성인 응답자의 약 30% 정도만이 1회용 전자담배를 담배로 인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과연 액상담배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이어 “해외에서는 이미 청소년 유인 문제로 인해 1회용 전자담배에 대한 수입 금지나 판매 금지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1회용 전자담배에 대해 포장 규제는 물론 청소년들이 쉽게 볼 수 있는 판매대에서 진열이나 프로모션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과일 맛이나 향을 가미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력한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1회용 전자담배는 가열 시 발생하는 화합물에 의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잦은 1회용 전자담배 사용은 심장과 호흡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더구나 일회용 액상담배는 포도맛, 딸기맛, 수박맛, 바나나맛 등 첨가제를 더한 제품이 많아 청소년들의 흡연 장벽을 낮추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1회용 전자담배나 가향담배 제품을 이용하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면서 “이 때문에 각국이 1회용 전자담배 판매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청소년 흡연 등 전체 시장의 큰 그림을 보지 않고 ‘합성 니코틴’에 과세하는 수준으로만 규제한다면 1회용 전자담배를 비롯한 액상담배 카테고리는 계속해서 청소년 흡연 관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1회용 전자담배 판매 자체를 규제하는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중금속이 생태계 위협 = 한편 일부에서는 일회용 액상담배의 경우 한번 쓰고 버리는 특성 때문에 환경오염의 새로운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회용 액상담배는 기기와 액상이 일체형으로 돼 있어 액상이 소진되면 전체를 폐기한다.

버려진 1회용 전자담배는 잔류 니코틴, 중금속, 리튬 배터리, 플라스틱, 포장재 등의 폐기물을 포함하고 있다. 독성 화학물질이 환경으로 유입될 경우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지난 2월에 열린 제10차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당사국 총회에서는 1회용 액상담배의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1회용 액상담배에 대한 금지와 함께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액상’ 자체에 대한 환경세 부가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매주 500만개비의 1회용 전자담배 관련 폐기물이 버려진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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