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홍진기 교수

2024-06-12 13:54:56 게재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독서로 키우는 상상력

호기심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홍진기 교수가 아닐까? 소고기 배양육 개발, 잇몸과 뼈의 재생 속도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치과용 차폐막, 나노 기술을 접목한 암 백신 개발 등 여러 분야로 뻗어나가는 연구가 그걸 증명한다. 수많은 아이디어 원천의 비밀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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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지은

홍진기 교수는

서울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MIT와 Koch Institute for Integrative Cancer Research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경희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중앙대 공과대학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바른바이오 대표를 맡고 있다. 230건이 넘는 논문을 출판했으며 143편의 특허를 냈다. 미국 CES 2024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Q. 먼저 과학과 공학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과학자가 관찰자, 분석가라면 공학자는 문제 해결사이자 디자이너입니다. 과학자가 ‘왜’를 탐구한다면 공학자는 ‘어떻게’ 이걸 되게 만들까를 고민해요. 과학자가 세상을 설명하는 사람이라면 공학자는 세상을 향상시키는 사람이죠. 변화가 더 빨라진 요즘, 공학자가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공학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금융 분야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이해한다면 보다 현명한 투자를 할 수 있겠죠?

Q. 화공생명공학과라면 역시 화학을 잘해야겠죠?

이번 기회에 오해를 풀고 가야겠네요. (웃음) 많은 학생이 화학을 좋아하면 우리 과를 떠올려요. 화학도 중요하지만 물리와 수학으로 소통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두 과목이 필수입니다.

Q. 학교 다닐 때 수학과 물리를 제일 무서워했던 저였는데 자꾸 멀어지는 기분이 드네요. (웃음) 덕분에 교수님의 연구 분야가 궁금해졌어요. 폭넓은 연구 분야에 놀라고, 연구 수에 두 번 놀랐거든요.

저는 한마디로 고분자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고분자란 유기 소재 중에서 분자량이 큰 분자를 말합니다. 고분자로 만든 대표적인 물품이 플라스틱이에요. 고분자 화학 구조를 만드는 방법과 재구조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질뿐더러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동시에 진행되는 게 많습니다. 동시에 궁금한 게 많으니까요. (웃음) 연구 주제는 주로 제가 탐구하고 싶은 데서 출발합니다. 저한테 몽상가 같은 기질이 있어요. 어릴 때도 생각하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마 그런 성격이 연구 분야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어요.

Q. 암 백신 개발도 그런 연구의 결과겠네요.

이번에 개발한 ‘인공 나노 수지상 세포’는 나노 입자 표면에 면역 세포의 일종인 수지상 세포(DC)에 덧씌워서 개발했어요. 꽃가루나 바이러스는 신체에 들어올 때 면역 반응을 발생시키는 일종의 항원으로 작용해요. 대식 세포가 항원을 먹고 남은 조각을 T세포에 제시하고, 이 T세포는 사이토카인이라는 화학 물질을 방출하면 다른 대식 세포가 활성화돼 항원을 몰아내면서 면역을 얻을 수 있어요. 이때 T세포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대식 세포를 항원 제시 세포라고 하는데 DC는 가장 핵심적인 항원 제시 세포예요. 선천적·후천적 면역을 모두 유도하기 때문이죠. 특히 이번에 개발한 암 백신은 고분자를 이용해서 다양한 항원을 탑재할 수 있는 구조예요. 암의 종류나 증상에 대응할 수 있는 항원을 붙여 맞춤형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어요. 새로운 암 백신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죠. 기존 DC 암 백신의 비용이나 효과의 한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암 항원 특이적 T세포를 표적화할 수 있어 최근 임상시험 중인 mRNA 암 백신의 단점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요. 고분자가 이렇게 유용하답니다. (웃음)

Q. 전 세계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은 소고기 배양육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세포를 소량 채취하고 대량으로 배양해 새롭게 만든 조직이에요. 소고기 배양육이 있다면 소를 도축하지 않고도 소고기를 먹을 수 있기에 광우병 같은 질병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식량 문제에도 도움을 줍니다. 특히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동물 사육에서 해방될 수 있어요. 작게 보면 고기 한 점이지만 기후변화와 지속 가능한 식량 안보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근에 각광받는 연구 분야이기도 합니다.

Q. 그저 ‘고기 한 점’이라고 생각했던 저를 반성하게 되네요. 그럼 배양육 연구는 어느 단계까지 발전됐나요?

그동안 세포 관련 연구는 의학 목적으로 많이 진행했는데 세포를 이렇게까지 많이 증식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건 식량으로 개발하는 만큼 생산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해요. 기술과 비용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니까 너무 어렵죠. 2013년 네덜란드의 마크 포스트 교수가 배양육으로 만든 햄버거 패티를 최초로 공개했는데 기술의 한계로 소고기 배양육은 아직 사업화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닭고기 배양육 판매가 허가된 국가는 싱가포르, 미국이에요. 저도 싱가포르 식당에 가서 닭튀김을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Q.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지지체로 곡식을 사용했다는 거예요.

배양육 제조에 꼭 필요한 기술이 좋은 세포, 세포를 키울 수 있는 지지체, 대량 생산 기술, 식품화 공정, 세포를 배양하는 배양액이에요. 그동안 세포를 키우려 여러 세포 배양 지지체를 활용해왔는데, 식품으로 개발하기에는 저마다 문제가 많았어요. 고민하다 ‘만약 먹을 수 있는 지지체를 사용해서 세포를 키우면 어떨까?’ 싶었죠. 세계 최초로 곡식을 지지체로 사용해 세포를 키워 배양육을 만들었고, 기술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개발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던 모양이에요. 덕분에 여러 국내외 기업과 기관은 물론 해외 국가와 연구 결과를 활용하는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Q. 연구의 실마리가 되는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가져오시나요?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상상력이에요. 요즘 같은 AI 시대엔 지식은 인공지능이 찾으면 됩니다. 결국 독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에게도 20대에 1천 권 정도 읽으면 뭘 해도 성공할 거라고 말해요. 대신 어디서 추천하는 책 말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미래에 수많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힘은 수많은 경험, 즉 독서가 길러줄 수 있고요. 독서의 중요성을 되짚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Q. 교수님은 어린 시절 어떤 책을 읽었나요?

공학자의 독서로 의외일 것 같은 철학책 <소피의 세계>를 꼽고 싶어요. 철학은 자연과 인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죠. 지금 같은 초융합, 초연결 시대에 더욱 필요하고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 독서는 또 다른 상상력과 사고력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드래곤볼>도 좋아했어요. ‘에네르기파’는 사실 파동 에너지(wave energy)이고, 재생이 되는 인물 ‘셀’은 줄기세포를 떠올리게 해요. 과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이에요.

Q. 많은 석학이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실상은 ‘문송합니다’예요. 대학에서도 인문학과를 통폐합하는 추세고요.

다시 바뀔 거예요. 지금은 모든 게 더 빠르게 연결·융합·디지털화되는 세상이에요. 심지어 AI의 등장으로 컴퓨터 알고리즘과 경쟁해야 하고요. 앞으로는 학문과 학습의 단순한 물리적 융합이 아닌, 사고의 화학적 융합이 중요한 ‘초극한 융합 시대’가 올 거예요. 좋은 공학자가 되기 위해 철학, 인문학을 함께 공부해야 할 겁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며 공학을 발전시키는 화공생명공학자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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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