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사우스의 부상과 부(富)의 이동
올해 G7 정상회의 핵심의제로 … “세계 4대 경제대국 중 3국이 글로벌사우스 될 것”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온 세계가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놀랍게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푸틴 편에 섰다. 한때 제3세계로 불리던 글로벌사우스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자원과 시장, 노동력을 두루 갖춘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신냉전 시대의 캐스팅보트까지 거머쥐는 모양새다.
세계 GDP 40%, 인구 85% 차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글로벌사우스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How to locate the global south)’라는 기사를 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사우스는 세계GDP의 40%와 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한다”면서 “그 비중은 점점 늘고 있고, 그 야망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을 상대로 가장 큰 야망을 드러내는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력과 개도국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사우스의 리더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이외에 인도와 브라질, 튀르키예도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관찰했다. 인도는 아프리카 교역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에서도 5위에 올라 있다. 농업부국인 브라질은 식량안보를 내세우고 있다. 튀르키예 기업들은 동부 아프리카의 인프라 건설을 하고 있다.
포린폴리시(FP)는 최근호에서 ‘누가 글로벌사우스를 두려워하나?(Who’s Afraid of the Global South?)’ 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FP는 “글로벌사우스의 재등장은 미국 주도의 기존질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이는 또한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냉전시절에 세계는 미국 중심의 제1세계와 소련중심의 제2세계, 비동맹·개발도상국 세력인 제3세계로 구분됐다. 미국과 소련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제3세계 국가들을 서로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제3세계 국가들은 연대하기 시작했고 그 발언권은 커져만 갔다.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와 1964년 3월 유엔산하의 G77그룹 결성, 1974년 4월 유엔특별총회의 ‘신국제경제질서(NIEO) 결의안’등은 모두 점점 커지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입김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제2세계의 붕괴를 의미했다. 제1, 2, 3세계라는 말도 그 의미를 잃었다. 과거 미소 경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제3세계 국가들은 그 정치적 외교적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동-서 편가르기 거부
그러나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점차 다극체제로의 바뀌고 신냉전마저 도래하면서 제3세계는 글로벌사우스라는 이름으로 그 힘을 다시 얻기 시작했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미중 무역갈등이나 우크라이나전쟁, 중동분쟁 등의 와중에서 양자택일식 편가르기를 거부했다. 글로벌사우스를 향한 세계의 시선이 다시 뜨거워지게 된 배경이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왜곡된 세계경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글로벌사우스, 즉 제3세계 국가들은 1974년 5월 1일 소련과 중국 등 제2세계와 국제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산유국들의 지원을 업고 유엔의 NIEO결의안을 이끌어냈다. NIEO결의안은 세계경제 시스템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FP는 NIEO선언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기존 경제질서는 식민통치와 외세의 지배, 인종차별, 아파르트헤이트, 신식민주의 등으로 규정된다. 이는 개도국들의 완전한 해방과 발전에 크나큰 장애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발전을 위해서는 자주와 공정과 국제협력의 기반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NIEO결의안의 취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FP는 “(냉전 붕괴 이후 세계는) 공동번영의 새 시대가 아니라 잃어버린 수십년(lost decades)”이었다고 평가했다. 가난한 개도국들의 발전은 지체되고 불평등은 심화되기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0여년 동안 글로벌노스의 지배력은 되레 강고해졌다. 선진국들은 지적재산권과 특허권 등을 통해 기술을 독점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각종 무역협정과 소송제도들을 통해 세력을 키웠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관들은 무거운 부채를 빌미로 개도국들의 정책에 간섭하고 나섰다.
FP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글로벌노스는 글로벌사우스의 실패를 낳은 세계 정치·경제질서의 수호자일 뿐”이라면서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공동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고, 모두가 잘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인도와 남아공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상대로 지재권 규제를 느슨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코로나19 백신과 같은 필수 의약품에 대한 지재권을 한시적이라도 면제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WB 및 IMF를 상대로 부채탕감과 양허성 대출(concessional financing), 거버넌스 민주화, 퇴행적인 대출조건 폐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FP는 “글로벌사우스의 재등장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는 위협적이지만 세계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썼다. “글로벌사우스 파워의 재등장은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세기나 지연된 꿈을 실현할 기회다.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를 세울 기회다. 모두를 위해 정의롭고 평화롭고 번창하는 세계를 건설할 기회다.”
다국적 비영리 학술매체인 ‘컨버세이션’은 최근호에서 “세계은행(WB)에서 언급한 것처럼 21세기 진입 이후 북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의 ‘부의 이동(shift in wealth)’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컨버세이션은 이어 “2030년까지 세계 4대 경제대국 중 세 나라는 글로벌사우스에서 나올 것”이라면서 중국과 인도가 1, 2위를 차지하고 미국이 3위, 인도네시아가 4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컨버세이션은 또 구매력 기준 GDP로 평가하면 글로벌사우스 국가들로 이루어진 브릭스(BRICS)의 소득이 G7클럽을 앞질렀다고 밝혔다.
앞서 2019년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역시 컨버세이션과 유사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2030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중국과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가 1~4위를 차지하고 이어 터키 브라질 이집트 러시아 일본 독일이 5~10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글로벌사우스의 위상이 부각되면서 글로벌노스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큰 공을 들이고 있다. G7정상회의가 2년 연속으로 글로벌사우스를 핵심 의제로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로벌사우스는 한국에게도 중요한 과제
글로벌사우스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4월 발간한 ‘블록화 시대, 글로벌사우스 활용 전략’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블록화 가중 흐름 속에서 공급망 위험 관리 및 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글로벌사우스 국가와 교역 및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타깝게도 윤석열정부는 글로벌사우스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정부가 동남아와 인도를 겨냥해 공을 들였던 신남방정책은 사실상 폐기됐다. 글로벌사우스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러시아에는 등을 돌렸다. 가치외교라는 미명 아래 미국과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서방과 밀착하기 위한 노력만 기울였을 뿐이다.
윤석열정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119대 29라는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윤석열정부의 이념외교와 편중외교를 표로 심판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참담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G7정상회의에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글로벌사우스는 물론 글로벌노스로부터도 외면받는 형국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글로벌사우스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노스도 우리를 귀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