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손들어준 대법원, 공사비 분쟁 해소되나
갈등 현장별로 대책 마련
물가상승분 일부지급 논의
민간공사 계약에서 물가상승분을 인정하지 않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 효력이 불공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공사비 갈등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법원은 계약준수를 강조하며 특약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해왔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건설사와 수급인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으로 판례가 변경됐다.
이에 따라 현재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는 건설현장은 발주처가 물가상승에 대한 공사비 인상을 일부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명시했어도 건설사의 인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공사중단 등에 대한 손해를 발주처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정 다툼까지 가지 않고 양측 협의로 공사비 협의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7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과 GS건설, 쌍용건설, 대보건설 등이 발주처와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다. 이중 공공공사를 하는 대보건설은 발주처와 공사비 인상에 따른 협의를 진행 중이고 민간공사는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소송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GS건설은 서울 북서울자이폴라리스 재개발조합에 공사비 추가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광주 광산구 쌍암동 주상복합 발주처인 롯데쇼핑과 공사비 분쟁이 발생했다.
쌍용건설은 KT 경기 판교 사옥 건설 공사비 증액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쌍용건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자 KT는 5월 공사비를 모두 지급했다며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2023년 11월 준공한 경기 안양 물류센터 재건축 사업에선 LF그룹과 DL건설이 40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놓고 갈등 중이다.
앞서 대법원은 4월 부산 소재 교회가 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시공사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부산고등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은 시공사가 착공 후 추가 공사비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도급 계약상의 특약 사항으로 발주처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외부 요인에 대한 부담을 시공사에 전가하는 방식이다.
부산고등법원은 “수급인(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춰지는 사이 철근 가격이 두배가량 상승했는데 이를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수급인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해당 물가 배제 특약을 건설산업기본법 조항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교회측은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 불속행 기각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을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공사비 갈등을 겪는 현장들은 해결 방안 찾기에 들어갔다. 공사비 인상으로 사업장이 중단된 한 건설현장 관계자는 “대법원 심리불속행으로 결정된 부산고등법원 판단이 모든 건설현장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별로 이를 기준으로 한 공사비 인상과 이를 어느 선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는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