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국회, 대의기관의 헌법적 책무 다하라

2024-06-18 13:00:01 게재

22대 국회가 문을 연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반쪽 국회’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법대로”를 외치며 단독으로 원구성과 국회 운영을 강행하고 있다.

민주당은 예고대로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후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채 상병 특검법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채 상병 1주기인 7월 19일까지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못박았다. 여권의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특검법도 재발의할 태세다. ‘김건희 청문회’도 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관례를 무시했다”며 ‘보이콧’ 중이다. 소속 의원들 뿐 아니라 장관 등 공무원들의 국회 상임위 출석을 막고 있다. 야당의 ‘입법 독주’를 부각시키며 여론의 역풍을 기대하는 눈치다. “대통령 거부권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거대 양당의 힘겨루기에 애꿎은 공무원들만 좌불안석이다. 공직사회는 양쪽 눈치를 보며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결재란 서명을 미루는 ‘복지부동’이 일상화됐다.

지난 21대 국회가 재연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0년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여야 합의가 안되자 18개 상임위를 모두 차지했다가 개원 1년 3개월 만에 원 구성이 정상화됐다. 지금은 여야가 바뀌었을 뿐이다.

권력싸움에 매몰돼서는 국민 외면

여야는 겉으론 국민을 위한다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권력 싸움이 더 커 보인다. 여야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목에 칼을 들이대니 정치가 돌아갈 리 만무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만났지만 그 뿐이었다. 여전히 윤 대통령이나 여권에게는 이 대표는 ‘피의자’다. 최근 이 대표가 ‘제3자뇌물’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되면서 이런 기류는 더 노골화됐다. 윤석열정부 들어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한 것은 5번째다. 이 대표는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다. 총선 패배 후 수세에 몰렸던 여당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일제히 “유죄나 다름없다”며 역공을 퍼붓고 있다. 야당의 단독 국회운영을 “이재명 방탄 국회”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이 대표는 엄연한 170석 의원을 가진 다수당 대표다. 지난 대선에서도 47.83%를 득표했다. 윤 대통령과는 불과 0.73%p 차이였다. 이 대표는 현재로선 여야 차기 대선주자들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다. 여권이 채 상병 수사외압, 김 여사 관련 논란 등에 대한 해법 없이 ‘이재명 리스크’만 외쳐서는 답이 없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탄핵’이나 ‘임기축소’ 등 강경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검사 판사 장관을 가리지 않고 맘에 들지 않으면 탄핵 주장을 쏟아낸다. 그야 말로 ‘탄핵 과잉’이다.

국회가 특정인이나 정치세력의 ‘방탄’이 돼서는 곤란하다. 지난 정부에서 다수당의 힘만 믿고 눈앞의 권력싸움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다 정권을 내준 경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5.4%p에 불과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저조하지만 양당의 지지율은 엇비슷한 이유도 야당이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여의도 방탄’ ‘용산 방탄’ 벗어나 본연의 임무 다하길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한국 정치는 국민들의 ‘슬기로운 선택’으로 균형을 이루며 지탱해 왔다. 주권자들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오만할 때는 매를 들고 잘할 때는 적극 밀어줬다. 반면 정치권은 미래보다는 과거, 봉사보다는 권력에 집착하는 퇴행을 답습하고 있다. 좌우 편향과 극단적인 편가르기라는 정치권의 풍토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가족간 친구간 심지어 부부간에도 정치 얘기하다가는 싸움이 날 정도다.

물론 미국 등 외국도 극단과 혐오 속에 정치불신이 확산됐다. 스페인 한 대학의 여론조사 결과, 정치적 양극화와 신뢰 하락으로 유럽인의 51%가 국회의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데 찬성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양보와 타협을 통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여당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과 시행령만으로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당장 불만스럽더라도 야당과 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는 게 여당 역할이다. 야당 역시 국회 본연의 임무와 사법리스크에 대한 대응을 분리해야 한다. 특검과 탄핵이 능사는 아니다. 국회는 ‘용산 방탄’ ‘여의도 방탄’을 벗어나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헌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차염진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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