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장기 산업전략 왜 안나오나
윤석열정부는 출범 당시 120개 과제를 제시하면서 규제혁파와 첨단 전략산업 육성 등을 주요 산업정책 방향으로 삼았다.
또 2022년 말 산업대전환포럼을 구성해 산업정책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이후 정부의 산업정책의 대표적 브랜드로 ‘산업 대전환’이 부각됐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논의하는 방식이어서 여러 경제주체의 관심을 끌었다. 대한상의 등 4개 경제단체와 산업연구원 등 정부·연구기관 3곳이 300일간 논의했다. 지난해 9월 이들 단체와 기관들은 ‘산업 대전환을 위한 민간제언’을 정리해 정부에 전달했다. 투자·인력·생산성·기업성장·글로벌·신비즈니스 6개 항목의 46개 과제를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 진행은 감감무소식이다. 민간 목소리에 정부정책과 방향을 더해 이번 정부의 색깔을 드러낼 산업정책은 9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은 뛰어가는데 우리만 제자리걸음
세계 각국은 혁신과 기술진보를 통한 제조업 육성전략을 강력히 펼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기술 등 첨단기술을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적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칩과 과학법 등을 통해 미국 내 생산기반 유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 업체를 비롯, 여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시설투자를 확대하는 데는 미국정부의 세제혜택과 지원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독일은 범정부 차원의 포괄적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정책으로 하이테크 전략을 수립했다. 단순 기술개발 중심의 정책이 아닌 사회적 혁신을 포함한다. 독일은 이 전략을 통해 글로벌 혁신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제조 공정의 디지털화, 표준화, 데이터 보안과 인력양성 계획도 담았다.
중국도 2021년 제14차 5개년 계획과 함께 2035년 장기목표도 제시했다. 제조강국 도약을 위한 ‘중국제조2025’에 중국 제조업의 스마트화 전면추진 의지를 나타냈다. 일본은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기업과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부합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고 중소기업 지원 확대로 강소기업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을 기대하기는커녕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지 않을까하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성장공식인 ‘선진국 추격형 전략’과 ‘중간재 대중국 수출위주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을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활용하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수인력과 고효율 생산기술을 활용해 경쟁우위를 유지했던 것이 이미 힘을 잃고 있다.
특히 인구문제는 심각하다.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줄어들고 있고 총인구는 2031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인 고령화율은 4월 현재 19.4%로 세계에서 고령화속도가 가장 빠르다. 고령화는 숙련된 노동자의 퇴장을 말한다. 후세대로 숙련도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2~3년 사이 신축아파트 부실시공과 하자발생 체감도가 높아졌다. 신축아파트 하자 가운데 상당수가 마감불량이다. 스마트화와 디지털 전환이 늦은 부문부터 이같은 일이 시작된 것이다. 건설이나 서비스분야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 강세인 제조부문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정동력 더 잃기 전에 대표 산업정책 내와야
최근 한국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67개국 중 20위를 차지해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기업 효율성’ 분야가 33위에서 23위로 올라 종합 순위 상승을 이끌었다. 반면 ‘정부 효율성’ 분야는 38위에서 39위로 떨어졌다.
산업 대전환 논의는 한국경제가 저성장 위기를 벗어나 혁신과 진보를 이뤄나가는 새로운 성공공식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한팀을 이뤄 대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민간제언이 나온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정부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간에 장관이 바뀌어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등 뒷말도 무성하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동력을 잃은 것 같다”며 “민간기업 차원의 파편적 산발적 진행이 될 뿐이지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정책 브랜드로서 ‘산업 대전환’을 제시하고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 서둘러 산업정책의 청사진을 내와야 한다. 정권 중후반으로 갈수록 동력은 더 떨어지게 돼 있다. 당장 서둘러야 할 이유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