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길 잃은 보수, 비상구가 안보인다

2024-07-09 13:00:02 게재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점입가경이다. 총선 참패 후 당 리더십을 정비하기 위한 전당대회지만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도, 양남(영남과 강남)과 70대 정당으로 전락한 당의 위기탈출에 대한 고민도, 보수혁신의 청사진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네 머네, 배신자네 아니네하며 진흙탕 싸움만 벌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논란’(문자를 읽고 답하지 않음)까지 불거지면서 전당대회는 ‘배신자론’과 ‘음모론’ ‘사퇴 연판장’이 난무하는 준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다.

애초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난 이가 바로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고 이미 심판받은 ‘윤심팔이’로 이에 맞장뜨겠다는 후보들을 보면서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최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예 망하기로 작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윤심타령에 ‘읽씹문자’ 논란까지 진흙탕 전대

어떻게 보면 지금 같은 ‘진흙탕 전당대회’는 애초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출마 자체가 내전의 씨앗을 뿌린 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의 미래권력이 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것도 ‘반윤 기치’를 들고 나서는 것은 현재권력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한 후보는 출마 일성으로 채 해병 특검 수용을 들고 나섰고, 국민에 배신하지 않는 정치 운운하며 윤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문자 읽씹’ 논란은 용산의 본격적인 전대개입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파장을 키운다. 한 후보가 문자 논란에 대해 “비정상적 전대 개입, 위험한 당무 개입”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이 “선거에 대통령실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발끈하고 나서면서 3차 ‘윤-한 갈등’으로까지 비화된 상황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문자 읽씹’ 공개가 정말 용산의 의도였다면 2탄 3탄의 또다른 지뢰가 준비됐을 수도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 경험을 토대로 예견한 것처럼 “대통령이 전대 후보들에게 몽둥이를 들어 다리를 부러뜨리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기대난망인 전당대회가 읽씹논란을 둘러싼 ‘진실게임’과 용산개입 ‘음모론’으로 깊은 갈등의 골만 남긴 ‘분당대회’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국민의힘은 지난 4.10총선 참패로 ‘총선 3연패’의 신기록을 썼고, 영남과 강남에서만 힘을 쓰는 지역당, 70대 이상 연령층의 지지를 받는 노인당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이 확대되고, 민주화 세례를 받은 세대의 고령층 진입으로 연령효과가 갈수록 희석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의 미래는 더 암담하다.

수십년 지배권력으로 군림하면서 이미 유전형질이 돼버린 ‘성찰부재DNA’, 상대 정당의 잘못을 자양분으로 유지하는 ‘자생력부재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못하면 대한민국 보수정당은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돼 멸종에 이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사회의 법칙이기도 하다.

솔직히 한 후보 출마가 상식적이지도 않고 정치문법에도 어긋난다고 보지만 그의 주장에는 대한민국 보수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배신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국민”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동안 대통령 권력이 잘못하는 줄 알면서도 여당 내부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던가. 아니 누가 반대의견 한마디 할라치면 ‘배신자’로 낙인찍어 고립시키고 연판장을 돌려 내쫓지 않았던가. 그러는 동안에 대한민국 보수정당은 서서히 퇴화돼 지금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는 좌우 날개가 모두 건강해야 더 높이 날아

국민의힘이 자기들만의 멱살잡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더불어민주당도 낯 뜨거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아부와 충성경쟁을 넘어 이제는 당 대표 수사검사까지 탄핵하겠다며 완력을 휘두른다. 설사 검찰수사가 못마땅하다고 해도 국민 눈 무서워서라도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법’인데 지금 야당은 아무 거리낌없이 비상식의 질주를 하고 있다. 야당의 이같은 폭주는 여당이 제대로 서지 못한 탓도 크다.

전대까지 남은 2주일, ‘배신자론’과 ‘음모론’ 대신 노선 정책 철학을 놓고 정책대결을 펼치라는 주문이 쇠귀에 경 읽기라는 건 안다. 그러면서도 빈소리 한마디 보태는 것은 보수가 건강해져야 진보도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 날개가 모두 건강해야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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