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고준위 방폐처리장 결실 맺을까

2024-08-02 13:00:02 게재

폐기물법 제정 20년 만인 올 연말 최종 결정 가능성 … 공사시작까진 10년 더 걸려

캐나다가 이르면 올해 말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매립지를 최종 선정한다. 2002년 핵연료 폐기물법을 제정한 지 22년 만이다.

캐나다핵폐기물관리기구(NWMO, Nuclear Waste Management Organization)는 2010년 5월부터 핵 폐기물 매립장 부지 선정을 위한 프로세스를 9단계로 나눠 진행해 왔다. 초기 22곳을 후보지로 올렸는데, 최근 2곳으로 압축됐다. 그 가운데 1곳은 7월 초 열린 주민투표에서 이미 방폐장 유치에 찬성의견을 모았다.

2022년 기준 캐나다의 원전 규모는 설비용량을 따져 미국(94기가와트·GW), 프랑스(61GW), 중국(52GW) 등에 이어 세계 7위(13GW)다. 한국은 24GW로 한 계단 앞선 6위다.

하지만 원전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사용후 핵연료 폐기물 영구처리장을 만든 곳은 핀란드가 유일하다. 그만큼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매립장 후보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최근 행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이그나스, 주민투표로 유치 찬성

온타리오주 북부 이그나스(Ignace) 주민특별위원회는 7월초 핵폐기물 영구저장소를 유치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CBC뉴스에 따르면 7월 초 실시한 지역 주민투표에 재적 유권자 1035명 중 640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49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지역은 캐나다 내에서 매니토바주 경계에 가깝고, 남쪽으로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가 있다. 북미 5대호 중 하나인 슈페리어 호수에서 약 400㎞가량 떨어졌다. 이그나스 주변 지역의 암반층은 두꺼운 화강암 암석의 지질학적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킴벌리 배그리 이그나스 주민 대표는 투표결과가 나온 뒤 “이그나스 주민들은 분명하게 의사를 드러냈다. 이제는 NWMO의 선정 절차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주민들은 남아 있는 부지선정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할 것과, 핵폐기물 처리장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앞으로도 숨김 없이 공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예정대로 올해 말 부지가 선정되면 건설공사는 약 10년 후인 2033년쯤 시작될 예정이며 시설은 2040년대 초에 가동을 시작한다. 지하 암반층 500m 아래 들어설 핵연료 폐기물 영구저장소 공사비는 약 260억 캐나다달러(약 26조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후보지 주민들이 찬성했다고 해서 핵폐기물 저장소가 이그나스로 낙점될 것이란 보장은 아직 없다. 현재 최종 후보에 올라 있는 다른 한 곳은 사우스 브루스(South Bruce)로 온타리오주 브루스 반도 국립공원 근처에 있다. 토버모리로 유명한 관광지의 길목이다. 후보지를 최종 결정할 NWMO 내부에서는 사우스 브루스에 약간 더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 브루스 인근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사용후 연료 임시보관소도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북부 썬더베이 주민들이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선정에 반발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김용호

인근 지역 주민 반발은 여전

이그나스 지역이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을 더 충족시켜야 한다. 인접한 와비군 레이크(Wabigoon Lake Ojibway Nation) 지역 원주민들의 동의다. 이그나스와 와비군 레이크는 17번국도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그나스 지역 주민들은 와비군 레이크의 투표 절차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지역에 핵연료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면 와비군 레이크에 대한 정부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NWMO는 여전히 와비군 레이크 주민들의 자발적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 주민대표들은 15세 이상 유권자들의 찬반투표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다.

이그나스와 가까운 매니토바주에서도 시민단체 등이 핵폐기물 영구처리장 부지 선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부지 선정 논란이 온타리오주를 넘어 매니토바주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후보지인 사우스 브루스 지방자치단체는 오는 10월 말쯤 주민투표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우스 부르스 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내년까지 이 문제에 대한 커뮤니티 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특히 수천년 전부터 캐나다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토착민 ‘퍼스트네이션(Ontario First Nation)’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관통해 고준위 핵폐기물이 이동하는 데 대해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시했다.

3만개 폐기물 40년 걸쳐 옮겨야

사우스 브루스 지역의 원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소진 오집웨이(Saugeen Ojibway Nation)’ 커뮤니티는 이전에도 원전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에 올랐었다. 그렉 나지원(Greg Nadjiwon) 주민 대표는 “매립지로 선정될 가능성은 물론 있겠지만 그것이 주민들도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우스 브루스 지역과 가까운 곳에는 브루스 원자력발전소가 있고, 원전 폐기물의 임시저장소도 있다. 나지원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방사성 물질이 주민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곳 주민들은 원전과 관련한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다. 2010년 방사능 오염물질이 남아 있는 16대의 원자력 증기 보일러를 5대호를 통해 운송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브루스 원자력발전소에서 선박에 싣고 휴런, 이리, 온타리오 호수를 지나 세인트 로렌스 강으로 가져간 후 대서양으로 빠져나가 유럽으로 이송한다는 것. 당시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계획이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연방정부도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캐나다 원주민사회와 미국의 반대에 직면했다.

나지원 대표는 “이런 경험에 비춰 고준위 방폐시설이 사우스 브루스에 들어선다면 주민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타리오 남부 등에 산재해 있는 원전에서 폐기물을 운송하는 과정에 원주민 거주지역을 여럿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민투표를 통해 후보지에 오른 이그나스에 사용후핵연료 처리장이 들어서더라도 임시저장 중인 브루스 발전소의 고준위 폐기물을 주민 반발 없이 빼내고 이동시킬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NWMO에 따르면 영구매립지가 완공되면 8곳의 임시보관소에서 보관 중인 약 3만개의 폐기물을 40년에 걸쳐 옮겨야 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운반 차량마다 수백㎞, 멀게는 1000㎞ 넘게 고준위 핵폐기물을 싣고 이동해야 한다.

정부의 설득 작전

온타리오 북부지역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우스 브루스 주민 여론은 나뉘어 있다. 이곳은 한때 농업으로 번성했던 곳이지만 현재는 젊은이들이 떠나고 쇠락했다.

찬성하는 쪽 논리는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다. 핵폐기물 저장소 공사 등으로 지역사회에 6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고, 1000여명에 불과한 마을인구도 2배로 늘어나는 등 정부의 보조금이 커뮤니티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캐나다 원자력산업계에서 제공한 지원금으로 도시기반시설이 훨씬 개선됐다는 여론도 작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돈 때문에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으며 후손 대대로 떠안아야 할지 모르는 불행을 물려줄 수 없다는 입장도 강경하다.

갈등은 투표방식을 둘러싸고도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도록 온라인 투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에서는 결과 조작과 같은 해킹 방지를 보장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원전업계는 핵 폐기물은 구리와 주철 등으로 만든 견고한 보관함에 밀봉돼 지하 500m 이상 깊이에 묻히며, 수십만년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 기술적 지질학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중이다.

캐나다 정치권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추진하는 NWMO에 사실상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캐나다가 핵연료 폐기물 처리장 건립 문제에 주민 합의를 끌어내고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