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사범, 나이 어려지고 학력 높아졌다
10·20대, 2004년16.3%서 지난해 35.6% … 전문대졸 이상 11.3%에서 23.1%로 증가
인터넷·비대면에 소량 구입 가능해져 … ‘엄벌’ 중요하지만 ‘치료·회복 프로그램’ 절실
검찰이 300명이 가입한 대학 연합동아리를 중심으로 마약을 유통·투약한 14명을 적발, 이중 3명을 구속기소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 출신이었고,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의대와 약대 재입학과 로스쿨 진학 준비생도 있었다.
국내 마약류 사범 중 10대와 20대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마약이 퍼지고 있다. 여기에 고학력자도 증가하면서 마약류 사범의 고학력·저연령화 현상이 뚜렷하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3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2만7611명이었다.
마약류 사범을 학력 기준으로 나눠보면 보면 전문대 졸업자가 4.2%, 대학교 졸업자 17.7%, 대학원 이상 졸업자 1.2%로 집계됐다. 이는 2004년 전문대졸 2.7%, 대졸 8.0%, 대학원졸 0.6%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연령별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2004년 0.2%에 불과했던 10대 비율이 지난해는 5.3%로 증가했다. 또 20대 비율도 16.1%에서 30.3%로 2배가량 커졌다. 반면 30대의 경우 40.3%에서 24.2%로, 40대는 26.2%에서 14.2%로 감소했다.
◆ 무직 줄고 학생·회사원 늘어 = 고학력 저연령 마약류 사범 증가로 이들의 직업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먼저 2004년 전체 마약류 사범 중 37.5% 달했던 무직자 비율이 지난해에는 26.9%로 줄었다. 또 유흥업 종사자도 5.5%에서 1.3%로 감소했다.
반면 0.5%였던 학생은 4.9%로, 3.8%였던 회사원은 5.5%로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경찰의 마약류 사범 검거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마약사범 중 2%였던 10대 비율이 지난해에는 6.0%로 급증했다. 또 20대는 26.3%에서 31.9%로 증가했다. 반면 다른 연령대는 같은 기간 비중이 줄었다.
단순 수치로도 10대는 241명에서 1066명으로, 20대는 3211명에서 5689명으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은 10·20세대의 마약류 범죄가 훨씬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약 범죄는 암수율(신고되거나 검거되지 않은 범죄 비율)이 30배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재범률도 매우 높아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커지는 대목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범죄는 피해자가 있어 신고나 고발에 따른 수사가 대부분인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 없이 인지사건을 통한 검거가 대부분”이라며 “검거 인원도 크게 늘었지만 마약에 중독된 청년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통시장 변화가 주요 원인 =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온라인 시장 확대와 그에 따른 소량 구매 등을 꼽는다.
과거 한적한 장소에서 공급책과 중독자가 만나던 방식에서 인터넷 기반의 비대면 방식으로 변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마약 유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기반 마약거래는 주로 ‘던지기’ 수법으로 이뤄진다. 던지기 수법은 마약 판매상이 온라인으로 마약을 주문받아 유통책에게 전달하면, 유통책은 마약을 주거 밀집지역 등 판매상이 지시한 장소에 숨겨둔다. 이후 구매자가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 비대면으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해외직구도 증가하고 있다. 구매자들은 추적이 쉽지 않은 해외 사회적관계망(SNS) 등으로 해외 판매자에게 직접 주문한다. 해외에 주문한 마약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로 집으로 배달된다. 결제도 추적이 쉽지 않은 가상화폐로 이뤄진다. 특히 인터넷망이 잘 갖춰지고 국제택배와 우편 등 물류시스템이 발달한 한국은 신종 수법에 취약하다.
특히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접근할 수 있어 접속자 확인이 더 어려운 다크웹이나 거래내역 확인이 어려운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피자 한판 값으로 40분 만에 구매 = 이 같은 유통시장의 온라인·비대면 중심 재편은 상대적으로 인터넷에 친숙한 1020세대의 마약류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여기에 소량구매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10~20대 마약류 사범 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20대들이 주로 찾는 클럽을 통한 마약류 거래도 소량 구매가 가능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클럽 등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은 2021년 161명에서 2022년 454명, 2023년 686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엔 287명이 검거됐다.
이들이 전체 마약류 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1.5%에서 2022년 3.7%, 2023년 3.9%, 올 상반기 4.4%로 증가 추세다. 이는 2021년과 비교해 2년 새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구입한 마약을 투약했다 적발된 중학교 3학년 A양 사건이 이런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마약 구매를 목적으로 인터넷상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텔레그램 대화방에 초대됐다. 이곳에서 필로폰을 구매한 A양은 이튿날 한 주택가에 판매자가 놓아둔 마약을 챙겨 자택에서 같은 반 남학생 2명과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필로폰을 주문하고 실제 구매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0분에 불과했다. 특히 이들이 필로폰 0.05g(10회 투약분량)을 구입하는 데는 용돈 40만원으로 충분했다. 1회 투약 가격을 계산하면 2만4000원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피자 한 판 값 수준이다.
◆호기심서 시작해 공급책으로 = 더 큰 문제는 아예 공급책으로 나선 10·20세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회복 지향 마약정책을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김희준 변호사는 “10대 마약사범이 10년간 12배 급증했고 텔레그램 마약방, 가상화폐, 전자지갑 등을 이용해 마약을 구입하는 실정”이라며 “10대 마약사범은 단순 투약사범에서 마약공급, 밀수책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인천지검 강력범죄수사부(박성민 부장검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향정 혐의로 4개 마약 밀수 조직원 19명을 적발해 이중 총책인 20대 이 모씨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까지 캄보디아에서 필로폰 21㎏과 케타민 1.4㎏, 합성대마 2.3㎏ 등을 국내로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밀수입한 마약류는 시가 70억원 상당으로, 필로폰 21㎏은 71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적발된 이들 중 대부분은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마약류를 운반하는 이른바 ‘지게꾼’이었다. 고등학생을 비롯해 10대 4명도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연락해 1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범행에 가담했다.
마약의 경우 적은 양을 운반해도 큰돈을 벌 수 있는 만큼 10~20대를 끌어들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필로폰 1g은 태국에서 13달러(2022년 기준)에 거래되지만 같은 물량이 한국에 들어오면 30배 이상 높은 450달러에 판매된다.
◆법원, 처벌 수위 높여 = 사정이 이렇자 마약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마약범죄 양형기준에 ‘미성년자에 대한 매매·수수 등’ 유형과 ‘마약 가액 10억원 이상’ 구간을 신설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토록 양형 기준을 상향했다.
양형위는 “최근 마약류 확산세와 10대 마약범죄 증가 추세에 대한 사회적 우려, 미성년자 대상 마약 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 필요성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대량범에 대한 양형도 강화됐다. 양형위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는 ‘마약 가액 10억원 이상’에 해당하는 양형 유형을 신설하고, 이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 이상 징역부터 최대 무기징역을 권고하기로 했다.
‘마약 가액 10억원 이상’은 필로폰 약 10㎏, 헤로인 약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필로폰 10㎏의 경우 약 33만회를 투약할 수 있는 분량에 달한다.
◆“이벤트식 대응으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 = 이런 가운데 국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마약류와 각종 중독에 대해 처벌 위주의 대처보다는 치료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4개 치료보호기관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실적은 641명에 불과하다.
김희준 변호사는 “‘마약과의 전쟁’같은 이벤트식 대응으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면서 “치료 재활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이 미비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중독치료·재활 연속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중독과 도박중독은 뇌 보상회로 변화로 인해 유발되는, 효과적 치료가 가능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질병 치료 기술개발과 치료·재활인프라 설치와 지원이 매우 취약하다”면서 “질환으로서 중독치료·재활을 지원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으로 중독치료회복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