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찢어진 광복절행사’ 대통령경축사 유감

2024-08-16 13:00:01 게재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며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를 핵심 키워드 삼아 나름의 통일담론을 발표했으나 공허한 말잔치로 치장됐고 ‘통일 대한민국’이란 말에서 보듯이 흡수통일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노태우정부 이래 역대 보수·진보정부가 지켜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핵심가치인 남북간 대화와 평화공존 정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힘에 의한 평화, 남북대결에서의 승리만 추구하는 모습이다. 상대방인 북한이 ‘말도 섞기 싫다’며 두 국가론을 펴는 상황에서 ‘자유 통일’을 내세워 적대감만 키우는 모양새다.

‘자유’ 내세워 북한 압박 …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두 쪽 난 경축행사

윤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에는 일본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었다.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경축사에 일본에 관한 언급이 빠진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최근 빚어진 ‘친일논란’과 ‘쪼개진 경축식’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친일 뉴라이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항의하기 위해 광복회 등 37개 단체가 모인 독립운동단체연합과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들은 15일 같은 시각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자체 기념식을 열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 인사 10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입법부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부 경축식에 불참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광복절 경축식이 찢어져서 치러진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교과서왜곡에 분노한 국민들이 낸 성금으로 세웠다. 이런 상징적 기관의 수장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일 뉴라이트’ 행적을 보여 온 김형석을 임명한 것은 윤 대통령 ‘오기 인사’의 전형이다.

이 일이 직접적 도화선이 돼 폭발했지만 정부는 그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연구 국책기관의 수장들을 정체성이 정반대인 친일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로 차곡차곡 채워왔다. 노림수가 과연 무엇일까.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려는 일본과의 안보·경제 파트너십 형성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온 것이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다.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 역사왜곡이 불거지고 ‘독도는 일본 영토’란 억지주장이 나올 때마다 국민감정이 폭발하며 양국 관계는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 통로로 여겨지는 역사연구 기관들을 극우 친일색채 인사들로 장악케 해 사전제압하고 ‘과거사 흐리기’로 향후 국민의 친일비판 정신을 무디게 하려는 뜻이 짙어 보인다.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 서술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된 것 인양 국민을 속이고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해 굴종외교 논란을 빚거나 예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고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철거 시도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포진한 기득권세력의 역사뒤집기 시도는 집요하다.

‘과거사 지우기’로 한일 밀착 유도하고 ‘아시아판 나토’ 꿈꾸는 미국

미국은 ‘가치외교’란 명분으로 동북아에서 일본을 지역맹주로 내세우고 한국을 끌어들여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한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역대 정부를 압박해왔다. 인도·태평양 전략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 그림 완성에 필수적인 한일관계 개선에 가장 껄끄러운 장애물로 작용해온 것이 과거사 문제였는데 윤석열정부가 ‘과거사 지우기’에 앞장서며 실마리를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공조를 통해 ‘아시아판 나토(NATO)’의 밑돌을 놓으려는 미국의 의도대로 최근 한미일 3국은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그림 실현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일본은 컵의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는커녕 군사대국화를 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은 중국과 불화를 빚게 되고, 북·중·러 밀착이라는 국제정세 지각변동, 파열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정부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현명한 외교’로 풀어가며 국익을 챙기기는커녕 냉전의식에 찌들어 대북대결을 고취하고, 이를 통해 국내정치 폭망의 수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까지 더하며 갈수록 위험한 ‘한미일 군사공조’에 올인하는 도박을 하고 있다.

복구 불가능한 ‘안보 늪’에 빠져 나라를 통째로 거덜 내지 않는지 두 눈 부릅뜨고 정색하며 주시해야 한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