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도, 채 상병 특검도…용산에 번번이 막히는 한동훈
여당 “2026년 의대 증원 보류” 제안 … 대통령실 ‘거부’
한 대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 내놓자 친윤 ‘반대’
윤-한 갈등 연장 … 한 대표, 굴복이냐 극복이냐 갈림길
63%란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지만, 용산 대통령실에 번번이 가로막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비대위원장 시절 촉발된 윤(윤석열)-한(한동훈) 갈등의 여진이 계속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숙일지, 윤 대통령을 극복할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관측이다.
◆절박감 속 내놓은 협상안 = 국민의힘은 최근 정부에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협상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매년 2000명씩 5년간 1만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공의 1만여명이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시스템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에 나온 협상안이었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27일 “이대로 가면 의료 시스템 붕괴가 불가피한만큼 여당으로선 합리적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여당안은 내년(2025년)에는 정부 계획대로 1497명을 증원해서 4610명을 뽑고, 2026년에는 증원을 보류해 원래 정원(3113명)만 뽑자는 것이다. 2027년에는 다시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해서 정원을 조정하자는 안”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부 입장과 정원 동결을 외치는 의료계의 입장을 절충하는 안으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여당안은 25일 열린 고위당정에서 논의된 건 아니고, 다른 채널을 통해 정부에 전달됐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측은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 협상안을 내놨지만, 대통령실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2026년 의대 증원도 이미 결정된 사안인만큼 여당안처럼 증원을 보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한 대표는 7.23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이하 제3자 특검법) 추진을 공약했지만, 대통령실과 친윤의 반대로 인해 당론 추진을 미루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6월 출마선언 자리에서 “(특검을 진행하는 게)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라며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친윤은 ‘특검=탄핵’으로 보면서 “어떤 식의 특검도 안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친한도, 친윤도 아닌 중도 성향 의원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특검 여부를 정하자”며 한 대표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소수계파인 친한을 업은 한 대표로선 특검법을 밀어붙이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친한 인사는 “공수처 수사 결과가 나오고 당내 여론이 압도적인 특검 찬성으로 흘러야 (한 대표가) 특검을 추진할 여건이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대통령실과 친윤의) 반대가 강한 상황에서는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뒤끝 작동 = 한 대표가 제시한 ‘제3자 특검법’과 의대 정원 협상안이 대통령실에 의해 잇따라 거부당하면서 한 대표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는 관측이다. 차기주자를 꿈꾸는 한 대표는 성공적인 당무 수행을 통해 국정운영 리더십을 인정받겠다는 생각이지만, 대통령실이 힘을 보태기는커녕 훼방을 놓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윤-한 갈등으로 인해 등을 진 윤 대통령의 뒤끝이 작동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대표로선 윤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협조를 구할지, 아니면 윤 대통령을 극복하면서 차기를 노릴지 선택해야할 시점이 점점 다가온다는 지적이다.
한 대표는 오는 30일 윤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갖는다. 한 대표가 만찬 회동을 통해 윤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 다만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대신 일체감을 택했을 때 차기 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면서 63%란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강행하면서 윤 대통령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재권력과의 정면충돌이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만들지는 못해도 막을 수는 있다’는 오랜 격언이 내려온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