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한국은행 구조개혁 고언 허투루 듣지 않아야

2024-09-03 13:00:01 게재

7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총재의 입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라고 평가했다. 그전 금통위 결정 때 “(방향전환을) 고민하는 상태”라고 했던 것에 비해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시기를 검토’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8월 22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는 또 다시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13번째 동결했다. 극심한 내수침체에 시달리는 자영업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의 실망이 컸을 것이며,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고금리를 내수침체의 핵심요인으로 꼽은 국책연구소들의 경제진단도 머쓱하게 만들었다.

여당 정책위의장 등 정치권이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말하고 대통령실까지 “내수를 진작한다는 측면에서 아쉽다”고 유감을 밝혀 이례적으로 금리인하 요구를 감추지 않았다. 통화정책이 경직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경기부진의 책임을 한은에 돌리려 한다는 의심까지 무릅썼다. 마치 한국은행이 동네북이라도 된 듯하다.

물론 7월에도 한국은행은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다”고 평가함으로써 8월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애써 낮추려 했었다.

물가안정 금융안정 두 정책 목표의 충돌

한국은행 총재가 밝힌 금통위의 고민은 명확하다. 미국 연준(Fed)의 금리인하 전망이 무르익고 있다는 점에서 물가만 떼어 놓고 보면 금리인하를 시도해 볼 만한 조건이지만, 고민의 핵심은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의 상승세에 있다. 가계부채 문제와 그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는 부동산가격 불안은 언제든지 자그마한 충격에도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여건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축으로 하는 부동산금융시장 불안은 여전히 악화일로다. 신협과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회사 부실자산이 폭증하고 있다. 60년 만에 최악이라고 한다. 일부 단위조합과 금고들의 강제 통폐합까지 논의되는 모양이다. 79개 저축은행 가운데 부실채권 비율이 10%를 넘어선 비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이미 뱅크런도 겪은 바 있다.

그런 가운데 8월 중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증가분은 8조3000억원을 넘겼다. 집값 광풍이 분 2021년 4월의 기록적인 증가분이 9조2266억원이었으니 한은이 긴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은 32조1000억원대였는데 그 가운데 은행재원으로 나간 저금리 정책대출(각종 특례대출, 디딤돌 매입대출, 버팀목 전세대출 등)이 22조3000억원(69.5%) 정도였다.

정부는 7월 계획되어 있었던 2단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제도 시행을 돌연 9월로 2개월 연기한 바 있다. DSR제도는 미래 금리변동의 위험을 미리 반영해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한도를 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다가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부동산 상승세가 지속되자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가산금리를 애초 계획보다 대폭 올리는 강수를 두었다. 이에 더해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며 은행에 주담대금리를 올리도록 압력을 가해 한달 사이에 20여차례나 대출금리를 올리도록 만들었다. 결국 보험사의 주담대 금리가 5대 시중은행보다 낮아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다시 은행에게 금리를 올리지 말고 비가격(비시장)적인 방식으로 대출규모 자체를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 보험사 대출금리까지 손대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조정을 통한 유동성관리라는 한국은행의 정책은 무력화된다. 가계부채 부실과 부동산금융 부실화로 인한 금융불균형과 불안에 대한 한국은행의 우려와 답답함은 8월 27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의 공동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보고서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은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왜 금리정책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를 밝혔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가지 정책목표가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위험도를 갖고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를 내리려니 금융불안의 위험이 커질 것이고, 그대로 있자니 내수침체의 위험이 심각하다. 이 상태에서 지난 8월의 금통위는 전자 즉, 금융불안 위험을 더 크게 판단했다.

연신 “주택가격 불안은 일시적”일 것이고 “주택공급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국토교통부를 필두로 하는 행정부의 상황인식과는 상당히 다른 판단이다.

정부 정책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경고

혹자는 한은이 웬 구조개혁, 그것도 부동산과 교육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는 한은의 구조개혁 요구는 한은의 금리결정이 갇혀있는 틀을 깨지 않으면 금리인하에 망설일 수밖에 없고 어떤 결정을 하든 백약이 무효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금리정책과 가계부채, 부동산 문제 그리고 교육쏠림 문제가 연결되어 있으며, 금리정책이 실효성을 가질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한은이 요구하는 구조개혁이다. 정부의 각 정책이 각자 따로 놀고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정부 내부로부터의 경고이며 고언(苦言)이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