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통합? 비뚤어진 역사인식에선 가당치 않다

2024-09-09 13:00:01 게재

감수성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역사적 감수성’이란 측면에서 보수정권들의 역사인식과 역사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지성과 보편은 물론 상식조차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극우성향의 집단과 친화적일지 모르지만 합리적 역사관을 갖는 국민일반과 합리적 중도층의 인식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한국정치에서 친일과 반일 프레임이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되고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일은 일상이다. 여야 모두 친일과 반일 프레임을 각자의 지지세를 동원하는데 악용하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이 여권더러 “친일매국노” “독도를 팔아먹는다”라고 비난하는 말도 역겹다. 여당 역시 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벗지 못한다. 여야의 공방에 대해 진지하게 논평하는 것이 남사스럽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사관과 역사의식에서 현 여권의 인식은 심각하고 참담할 정도다. 특히 윤석열정권에서 역사와 관련해 문제적 발언을 한 이들을 주요 직책에 기용하는 데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극우 태극기집회에서나 나올 법한 발언들을 예사로 쏟아놓는 인사들을 다른 곳도 아닌 역사 관련 단체의 장으로 임명하고 장관(급) 인사에 극우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인물들을 중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일이 그 발언을 소개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지만 “1948년 이전에는 광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인사나 “일제 강점기 때 우리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주장하는 반역사적·반민족적 언사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데 자괴감을 느낄 정도다.

역사적 진실 외면하는 자 공직임명 일상화

이명박정부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뉴라이트라는 일군의 경향들은 ‘식민지 체제하에서 근대화의 단초가 시작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물론, 1948년 8월 15일이 나라를 세운 건국절이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정부는 최근 건국절 논란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이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반역사성의 그늘이 넓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분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가 대두됐다. 수정주의는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조망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반면 한국전쟁에서 내재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는 수정주의가 우리의 역사를 지나치게 반민중 반민족 반민주의 역사로 보고 수탈과 착취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과거사 해석의 문제로 이어지고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의 이념적 경계선이 됐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민주 대 반민주, 민족 대 반민족, 친일 대 반일, 친미 대 반미, 친북 대 반북, 운동권과 86세대 등 한국현대사의 쟁점적이며 논쟁적 주제가 응축되어 있다. 현실 정치권력에 대한 지지 여부와도 밀접한 이슈들이다.

이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고 현실적으로 무조건 어느 한쪽을 강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극우성향의 태극기집회에서의 발언들의 비합리성과 퇴행적 역사인식의 문제를 집회참가자에게 설파한다고 설득될 일인가.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조차도 부인하고 역사적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자들이 공직에 등장하는 현실이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말 한마디로 인물에 대한 비판을 뭉개는 여권의 몰염치와 비상식을 개탄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다.

‘통합’이 이뤄지려면 전제되어야 할 것들

실제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민생’과 ‘통합’을 별 생각없이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통합이나 민생은 정치의 전부다. 경제적 민주화와 평등이라는 가치 이전에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 때에 대한 왜곡된 역사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통합이 가능할까. 일제의 혹독한 지배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국가안보실 차장의 발언을 묵과하면서 통합을 운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가. 친일 반일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을 무시(無時)로 해대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의 수장이 되고, 안보실의 책임자인 현실에서 통합은 애당초 언감생심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