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쥐어짜봐’ ‘공장 세우면 너희 원망’

2024-09-26 13:00:06 게재

영풍 장형진 고문, 고려아연에 산업폐기물 처리 압박정황

경영권 분쟁 원인 변수로 … 영풍 “부당한 압력 없었다”

경영권 분쟁이 산업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공방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고려아연 측이 장형진 영풍 고문이 자사 경영진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정황을 제시해 주목된다.

26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9월 14일 장 고문은 고려아연 최고경영진을 호출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산업폐기물을 고려아연에서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고려아연 임원진들은 통합환경평가 기준 강화로 고려아연에서 석포제련소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할 경우 환경에 더해 안전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장 고문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폐기물 처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고 한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장 고문은 이 자리에서 ‘더 쥐어짜봐’ ‘네가 직접 연구실에다 해놓고 해라’는 등 강하게 압력을 행사했다. ‘이걸 알아둬야 한다’면서 ‘석포제련소가 (환경부로부터) 올해 어떤 (공장을) 세우라는 통보를 받는다면 나는 너희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장 고문은 또 반대하는 임원에게 ‘너 빠져라’라며 배제시키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는 게 고려아연측 얘기다.

당시 영풍 석포제련소는 수십만톤에 달하는 산업폐기물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석포제련소가 산업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자 환경부가 나서 특별점검을 실시했고 부지 내 지하수에서 기준치를 무려 33만배나 초과한 카드뮴이 검출돼 사회적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영풍이 고려아연에서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게 고려아연측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역시 강화된 통합환경허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고려아연 기술진은 특히 석포제련소의 산업폐기물은 오염도가 더 심각하고 유가금속 함유량이 낮아 처리가 쉽지 않은 문제가 있어 해당 산업폐기물을 처리할 경우 대기 배출규제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석포제련소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마저 환경 기준을 지킬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장 고문은 지속적으로 산업폐기물 처리를 요구했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장 고문은 그 해 9월 8일에도 최고경영진을 상대로 석포제련소 환경문제를 거론하며 고려아연에서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줄 것을 주문했다.

고려아연 이제중 부회장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도 장 고문의 산업폐기물 처리 요구를 언급하며 “남의 공장 폐기물을 우리가 받아서 폐기물 처리 공장이 될 수 없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고려아연은 산업폐기물 처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장 고문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이후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신사업을 반대하던 장 고문이 경영권 분쟁까지 일으켰다고 본다.

하지만 영풍은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고려아연이 일방적 증자로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게 된 것이지 산업폐기물 처리 문제로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영풍은 이 부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몇 년 전 고려아연과 ‘자로사이트 케이크’(아연 생산 잔재물) 처리에 대해 협의했으나 최종적으로 없던 일로 됐다”며 “2019년 석포제련소의 카드뮴 공장을 폐쇄하면서 한때 고려아연에 카드뮴 케이크를 판매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다른 외부 업체에 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 고문이 고려아연 최고경영진에게 산업폐기물 처리를 압박한 구체적 정황이 나오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영풍 관계자는 “장 고문이 압박했다면 고려아연에서 산업페기물 처리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부당한 압력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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