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용산의 위기, 권력 아닌 정치로 풀어야

2024-10-15 13:00:01 게재

정치인은 여론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독재왕정이 아닌 바에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명태균씨도 ‘여론조사’라는 무기로 많은 정치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명씨는 지역기반이 취약한 김영선 전 의원을 도우면서 협력관계를 맺었고 김 전 의원의 국회 복귀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씨는 나름의 수완을 통해 경남을 넘어 중앙 정치권에 발을 넓혔고 결국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스토리다.

윤 대통령과 명씨가 만난 계기에 대해서는 말이 어긋난다. 김영선 전 의원은 자신이 소개했다고 하고, 대통령실은 이준석 의원이 데리고 와서 만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 의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어찌됐던 명씨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신뢰를 얻었고 그 이후 김 전 의원 공천 등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명태균 허풍? 무시하긴 여론 심각

명씨가 언론에 대고 “내가 입을 열면 대통령 하야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하는 마당에 그게 ‘선거 브로커의 허풍’으로 치부하기에는 제기된 의혹들이 심각하다. 명품백 사건처럼 일회성 해프닝은 아닌 게 다수 정치인의 해명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시한다고 악화된 여론을 설득하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그가 PNR(피플네트웍스 리서치)이란 ARS 조사업체에 의뢰했던 50번 조사 중 윤석열 후보가 49번이나 1위를 한 것도 특이하다. 이게 객관적 조사였는지, 명씨가 일각의 주장대로 여론조사 내용을 ‘일일보고’했는지 등 법적인 문제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했다고 한다. “지지도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시라. 또 대선에 나갈 것이 아니니 여론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국정을 이어가시라”는 취지였다. “술 문제로 시비가 있는데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드시라”는 덕담도 건넸다고 한다.

우연히 공개됐지만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이 지난 4월 총선 직후에도 서울에서 만찬을 했다. 당시에도 홍 시장은 비슷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김건희 여사 관련한 비난공세에 대해 “아내를 지키는 게 우리나라 정서에 맞다”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시장은 이후 5월 검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야권의 ‘김건희 여사 방탄용’ 비판에 대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라고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까지 들며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며 “비난을 듣더라도 사내답게 처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이 윤 대통령 듣기 좋으라고 한 말 같기도 하지만 영 틀린 얘기도 아니다. 과거 역대 대통령이 가족 문제나 지지율 하락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주변 참모들도 비슷하게 했을 법한 위로나 조언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실에서 당장의 여론이나 정파적 주장에 휘둘리면 포퓰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한미FTA 체결이나 작금의 의료개혁 문제도 당장 반대가 심하다고 섣불리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에 귀를 닫고 독불장군식으로 밀어붙여서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지기 십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면 당사자나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

윤 대통령이 홍 시장의 조언에 너무 충실했던 탓일까. 현실은 여권에 혹독하다. 야권의 공세는 그렇다하더라도 여권 내 정국해법에 대한 이견과 갈등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임기가 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악화된 여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 부부가 져야하는 상황까지 왔다.

윤석열-한동훈 독대, 권력 잣대로는 해법 안나와

다음주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독대’를 한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의정갈등과 야권의 특검법 공세 등 국정현안 뿐 아니라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해소 등에 대한 해법을 내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으로 해석하지만 권력이란 잣대로는 해답이 나올 리 없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권력은 유한하고 책임은 무한하다”고 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도 했다.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계속 강조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실행하느냐 말로만 그치느냐의 문제다. 차근차근 진심을 담아 노력하면 여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차염진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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